불교역사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대승불교

관리자 | 2006.03.14 05:00 | 조회 1548

1. 대승불교의 원류

대승(大乘, maha-ya-na)이란, 깨달음을 향해 가는 커다란 탈것, 혹은 운반하는 방도를 의미하는데, 그런 뜻을 품고서 노력하면 출가와 재가를 불문하고 붓다와 동일한 깨달음에 도달한다고 가르치는 데서 그 명칭이 유래되었다. 대승불교란 일반적으로 기원전 1세기경부터 발흥한 새로운 불교운동을 가리킨다. 대승경전을 신봉하고 그 교의에 따라 실천하는 불교수행의 한 체계로서, 현재 남방 불교권을 제외한 중국, 우리나라, 일본 등의 한역(漢譯) 문화권과 티베트계 문화권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대승불교의 발원과 시기, 그 직접적인 동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료한 정설이 없다. 수많은 설명 중 어느 것도 만족할 만한 것은 없다고 할 만큼 명확하지 않다. 일설에서는 인도에서 대승의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50년경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아쇼카 왕의 재위 시기에 대승불교운동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대승불교의 원류에 대한 설명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부파불교의 발전 양상에서 등장하게 된 운동이라는 설로서, 대중부와 경량부 등 여러 부파의 교리 및 활동이 대승불교의 성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둘째로 불탑신앙의 전개와 더불어서 대승불교가 발전한 것이라는 설로서, 붓다의 유골을 모신 불탑을 중심으로 모여서 붓다의 덕을 찬양하고, 그 힘으로 복과 공덕을 쌓기를 기원하고 있었던 재가 신자를 모체로 하며, 그들에게 붓다의 전기를 이야기하고 가르침을 베풀어 주는 법사들을 지도자로 하여 발흥했다고 한다. 셋째로 대승경전을 비롯한 불전(佛典)문학의 등장과 함께 한다는 설이다. 새로운 운동이 주장하는 바를 널리 퍼뜨리는 법사들은 붓다의 덕을 찬탄하는 새로운 경전을 작성했는데, 그것이 대승경전이다. 초기의 대승경전은 불탑숭배를 설하고, 붓다 앞에서의 참회와 예배를 권하며, 보시 등의 이타행을 설하고 있다. 그러나 운동의 전개에 따라 경전 그 자체의 공덕을 고양하고 그에 대한 숭배를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대승경전이 대승불교 그 자체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대승불교의 독자적인 교리는 비약적으로 발달했으나 교단으로서는 독자적인 율장이 없는 점 등 그 모습을 명확히 추정하기는 쉽지 않다. 이상과 같이 대승불교의 성립에 대한 여러 가지 학설들을 요약하여 말하기를, 인간이 붓다를 믿어 온 역사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이 붓다가 되어 간 역사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점은 고타마 붓다 자신이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자신의 사상을 몸소 실천하고 성취했던 것처럼, 보편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와 같이 붓다가 될 수 있다는 길을 재차 확인하고 실천하는 길을 모색하는 과정의 역사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2. 대승의 사상과 실천

대승불교는 기존의 붓다관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정립하였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을 끌었다. 대승에서는 신앙의 대상인 붓다의 본원(本願)과 정토(淨土)를 설하고 자비를 찬탄하며, 불신론(佛身論)을 그 중심에 두었다. 대승의 불신론은 진리 그 자체로서의 붓다, 즉 법신(法身)과 중생제도를 위한 붓다의 시현, 즉 색신(色身)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시방삼세(十方三世)에 수많은 붓다들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특히 삼신불(三身佛)이라 하여 불신을 3종으로 구분하였는데, 그 내용은 경우에 따라 다양한 조합으로써 설명된다. 1) 자성신(自性身), 수용신(受用身), 변화신(變化身). 2) 법신(法身), 보신(報身), 응신(應身). 3)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 4) 진신(眞身), 보신(報身), 응신(應身). 5) 법신(法身), 지신(智身), 대비신(大悲身). 6) 법신(法身), 응신(應身), 화신(化身). 그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삼신불은 법신불, 보신불, 화신불 3불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보신은 아미타불, 법신은 비로자나불, 화신은 석가모니불을 꼽는다. 하지만 그 외에도 경전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다양한 쌍을 이룬 3불상이 봉안되기도 한다. 옛부터 브라마, 비슈누, 쉬바라는 3신(神)을 숭배하는 인도의 신앙적 전통의 영향으로 불교에서도 3신불을 숭배하는 신앙이 생겨났으며,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찰에서도 3신불을 봉안하게 된 것이라 한다. 그리고 대승불교에서는 이러한 신앙적 실천의 주체로서의 보살을 강조했다. 보살이란 보디삿트바(bodhisattva)라는 말을 음역한 것으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중생’이라는 뜻이다. 보살은 원래 성불하기 이전의 붓다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하고 입문한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승화시켰다. 여기에는 대승의 구도자에게 붓다를 닮으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와 같이 기존의 아라한이라는 이상을 보살로서 대신한 대승에서는 중생 모두가 해탈을 이룰 때까지 스스로 열반에 들기를 거부하고 중생들 속에서 함께 수행하며 그들의 해탈을 위해 진력한다고 강조했다. 대승의 주창자들은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는 불성이 있기 때문에, 집착과 아집으로 인해서 가려진 불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부단한 수행을 쌓아야 한다고 설했다. 그들은 보살행(菩薩行)이라는 실천 덕목을 설하였는데, 여러 종류의 파라미타(pa-ramita-)는 말 그대로 피안에 도달하기 위해서 닦아야 할 수행법들을 총칭한다. 파라미타는 정(定)과 혜(慧)의 2파라미타를 비롯하여, 4파라미타, 6파라미타, 7파라미타, 10파라미타, 32파라미타 등 수없이 많은 조목들이 대승경전에 소개되어 있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6파라미타이다. 6파라미타는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 등으로서 불도수행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들이다. 경전에서 말하기를, 6파라미타는 모든 부처를 낳은 어머니이며 모든 부처가 의지하는 보배라고 말할 만큼 깨달음을 성취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한다. 10파라미타는 6파라미타에 방편(方便), 원(願), 역(力), 지(智) 등 네 가지를 더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파라미타 사상에 근거한 가장 이상적인 대보살들로서 문수(文殊), 보현(普賢), 관음(觀音) 등의 여러 보살들이 대승경전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파라미타를 실천하는 보살들의 수행에는 그 정도에 따른 단계가 있다는 사상도 정립되었는데, 바로 10지(地) 등의 보살 계위이다. 10지는 보살이 수행하여 성불하기까지 총 52단계의 수행이 있는데, 그 중에서 제41부터 제50단계까지를 10지라 한다. 10지는 차례대로 초지(初地), 2지, 3지 등으로 부르기도 하고, 제1 환희지(歡喜地), 제2 이구지(離垢地), 제3 명지(明地), 제4 염지(焰地), 제5 난승지(難勝地), 제6 현전지(現前地), 제7 원행지(遠行地), 제8 부동지(不動地), 제9 선혜지(善慧地), 제10 법운지(法雲地)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10지에 이르러서야 보살은 비로소 불성(佛性)을 보며 중생을 구제하고 지혜를 갖추기 때문에, 10성(聖)이라는 성인의 칭호를 받는다. 이러한 10지 보살사상은 파라미타의 덕목들과 함께 대승불교를 발전시키는 핵심사상으로 자리 잡았다. 대승불교의 실천이 기반이 되었던 진리관은 생사 즉 열반(生死卽涅槃)이라고 설하는 공성(空性) 사상이 근간을 이룬다. 보살은 무주처(無住處) 열반을 이상으로 하여 이타행을 실천하며, 미혹과 깨달음의 동일한 근거로서의 마음에 대해서도 공성에 의해 본질이 해명되어, 여래장(如來藏)이라든가 유심(唯心) 또는 유식(唯識)의 이론을 낳았다. 또한 붓다의 깨달음을 원점으로 하여 제법(諸法)의 연기가 곧 진여(眞如)이며 법계(法界)라고 하며, 그 특색을 공(空) 내지 공성(空性)이라 파악하여, 반야바라밀에 의해 이것을 체득하는 것을 깨달음으로 삼는다. 이러한 사상을 토대로 한 대승불교에서는 그 이전 교단의 가르침이 스스로 아라한이 되어 열반하는 것을 최상 목표로 했던 것은 다른 중생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편협한 가르침이라는 뜻에서 소승(小乘, hI-naya-na)이라고 폄칭하였다.

3. 대승경전

대승불교의 발전과정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붓다의 가르침을 재정비하여 다양한 경전들을 성립시키고 그에 대한 수많은 논서를 편찬했다는 점이다. 대승을 신봉하는 이들은 이러한 경전과 논서를 중심으로 사상을 정립하고 흐름을 확대해 나갔다. 대승경전은 거의 7, 8세기경까지 오랜 시일에 걸쳐서 편찬되었기 때문에 그 수를 헤아리기도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현재 전해지는 한역(漢譯) 경전을 중심으로 볼 때 약 1,200부에 이르며, 티베트어 번역본으로는 약 1,900부에 이를 만큼 방대하다. 대부분의 대승경전은 프라크리트어를 포함한 광의의 산스크리트어로 이루어졌지만, 그 중 대다수의 경전이 현재는 전하지 않으며, 그 일부만 원전이 전해지고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형성된 다양한 대승경전을 시대적으로 구분할 때 다음과 같이 세 시기로 구분한다. 초기 : 1세기경까지로서, 용수(龍樹) 이전에 해당한다. 중기 : 용수 이후 세친(世親)까지, 2~5세기경까지를 말한다. 후기 : 세친 이후, 6세기부터 밀교, 즉 금강승의 성립기인 7세기경까지를 말한다. 이러한 세 단계의 발전을 거치면서 수많은 경전과 논서를 통해서 대승의 사상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대승의 경전들을 내용면에서 구분해 보면, 반야부, 법화부, 화엄부, 보적부, 열반부, 대집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주요 내용으로는 붓다와 보살의 지혜를 찬탄하고, 삼매의 수행과 가치를 강조하며, 대보살과 불제자, 재가 불자들의 실천수행, 법공(法空)과 법신진여사상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전의 편찬에서 그치지 않고, 논서를 통해서 그에 대한 치밀한 논의를 펼침으로써 각자의 논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승경전이 아함부 경전과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아함부에서 고타마 붓다의 권위를 빌어서 경전을 서술했던 것과는 달리, 법사들 스스로 대승의 교리를 체계화하는 데 치중했으며 붓다의 권위에만 전적으로 기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대승이 부파불교 또는 원시불교와는 독립적으로 그 사상을 정립하게 된 계기를 만든 것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4. 대승교단의 성쇠

대승불교가 널리 퍼지게 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주인공들은 바로 설법사(說法師)들이었다. 대승의 시대에 법사들은 스스로 보살도를 수행하면서 대중을 향해 법을 설하고, 대중들은 그 법문을 베껴 쓰고 외우며 널리 펴는 것이 공덕을 쌓는 길이었다. 법사들은 일반적으로 보살이라 불렸으며, 그들은 정법의 수호자이자 교법의 정통적인 전수자로서 그 역할을 다하였다. 1세기경부터 불교 전법사들은 힌두쿠쉬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포교하기 시작했지만, 인도불교교단은 굽타 왕조의 성립 이후에는 차츰 쇠퇴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하였다. 굽타 왕조는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확립하고 사회질서의 토대가 되는 브라만교를 국교로 정하였다. 그에 따라 브라만교, 즉 힌두교는 급속히 세력을 펼쳐 갔으며, 동시에 불교의 사회적 기반은 약화되었다. 불교교단에서는 중관, 유식학파와 불교논리학파 등의 학문적 성과는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민중들 사이에서는 힌두교가 중심 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힌두교의 지배적 위치는 불교를 비롯한 다른 인도 종교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로 인하여 대승불교교단도 변화를 피할 수 없었다. 더구나 대승을 따르던 재가자들도 인도 일반의 민간신앙과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서 다라니와 무드라, 만다라 등을 신앙방식으로 채용하여 여러 의식을 통해서 실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양상은 인도불교의 또 다른 발전 양상, 즉 밀교를 성립시키기에 이른다.
탄트라 밀교그림1 탄트라 밀교그림2
인도불교가 국경을 넘어서 드넓게 포교되었던 것과 반비례하여 인도 내에서는 그 세력이 약화되었고 내용면에서도 변용될 수밖에 없었던 연유에 대해서 갖가지 요인들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첫째로 꼽는 이유는 대승의 교의가 발전을 거듭할수록 보살 수행보다는 불법(佛法)에 대한 논의 자체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임으로써 재가자 중심에서 다시 출가자 중심으로 전환되었고, 또한 전문화됨으로써 사실상 민중의 생활과 괴리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인도국경을 넘어 전파된 대승의 교의는 각 나라의 사상과 결합하여 발전적 수용을 가져왔으나, 정작 인도에서는 소승불교가 그러했던 것처럼 대승불교 또한 쇠멸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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