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역사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밀교

관리자 | 2006.03.14 05:01 | 조회 1685
밀교

                    탄트라 밀교그림1                                        탄트라 밀교그림2

1. 성립 배경
마우리야 왕조 때 아쇼카 왕의 두터운 보호를 받고 성장하기 시작했던 불교교단은 인도 내외로 확장되기에 이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점차 인도의 토착종교와 힌두교 등과 혼합되어 새로운 경향을 띠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바로 밀교이다.

마우리야 왕조에 버금 가는 통일국가를 이루었던 굽타 왕조 때부터 지배층의 종교로서 확고하게 자리 매김한 힌두교는 사회 전반의 기본 질서로서 그 골격을 형성하였다. 그런데 8세기 중엽에 파탈리푸트라를 수도로 하여 성립한 팔라 왕조의 여러 왕들은 불교를 보호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당시 동인도와 벵갈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융성했던 불교는 기존의 대승불교와는 차별화된 교의 내용으로 보다 더 힌두교에 근접한 탄트라불교의 양상을 띠고 있었다. 이와 같이 힌두교와 습합된 탄트라 불교를 대승과 구별하여 금강승이라 하였다.

금강승, 즉 밀교는 인도불교의 최종 발전 단계로서 대승불교의 인도적 변용이라 볼 수 있으나, 밀교교단에서는 자신들의 교의야말로 금강처럼 견고하고 유일 최상의 진리라는 뜻에서 그와 같이 명명한 것이라 한다.

밀교의 교의는 힌두교의 의례와 교의 내용을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채용함으로써 불교 고유의 특징을 상실함과 동시에 힌두교에 동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하지만 밀교의 성립 계기를 단순히 힌두교와의 습합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이미 대승경전에서 강조되기 시작하였던 다라니 등의 주력(呪力)은 밀교의 뿌리로서 인정되며, 더 나아가 인도사상의 일반적 토양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밀교의 배경으로서 거론되는 주요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주인 고타마 붓다의 역사적 실체가 퇴색되었다는 점이다. 부파시대와 대승불교를 거치면서 성립된 다불(多佛)사상, 삼신불설 등은 고타마 붓다를 역사적인 인물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 결과 수많은 불보살들의 등장함으로써 인도 전래의 신들에게 접근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급기야 힌두교의 만신전 속으로 고타마 붓다가 편입되기에 이르렀다.

둘째, 출가의식을 거친 자들도 다시 재가자와 같은 위치로 돌아갈 만큼 교단의 기강이 해이해졌으며, 이는 교단의 지적 활동을 쇠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셋째, 밀교교단에서 출가비구는 주술사(siddha) 내지 마법사(vajra-ca-rya)로서의 역할까지 수행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힌두교의 쉬바교 또는 비슈누교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탄트라(tantra)는 ‘규정하다, 집행하다, 유지하다, 부양하다’라는 뜻을 지닌 산스크리트어 ‘탄트리(tantrㆍ)’에서 파생된 말로서, ‘의식(儀式), 의례, 원칙, 밀교, 경사(經憲), 자손, 가족, 의류, 주문(呪文), 약(藥), 통치 방법, 군대’ 등의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인도에서는 불교뿐만 아니라 힌두교나 자이나교 등에서도 밀교적인 색채, 즉 비의적(秘儀的)이고 의례적인 경향이 강한 교의가 담겨 있는 문헌을 가리켜 탄트라로 부른다.

이와 같이 밀교가 발전하는데 중심 역할을 하였던 곳은 마가다지역의 사원들이었는데 8세기경에 건립되어 융성하다가 13세기 초엽에 무슬림에 의해 파괴되어 해체되고 말았다. 그 때까지는 인도에 명목상이나마 불교교단이 존속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이후 민중의 불교신앙은 사실상 힌두교와 전혀 구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힌두교와 습합된 불교는 현재 네팔에 남아 있다. 네팔에서는 불교가 힌두교의 한 종파에 불과하다고 할 만큼 양자의 구별은 쉽지 않을 정도이다.

2. 교의와 수행법
일반적으로 대중을 향해 널리 개방되어 있으며 세계관 내지 종교적 이상에 도달하는 방법을 명료한 언어로 설하는 통상의 불교를 현교(顯敎)라고 하는 반면에, 비공개적인 교의와 의례를 사자상승(師資相承)에 의해 전수하는 비밀불교를 밀교라고 구분한다.

이러한 특성에 비추어 볼 때, 밀교의 범위를 명확히 구분짓기란 쉽지 않다. 다만 통상적 구분에 따르자면, 그 범위는 ‘탄트라’라고 이름하는 문헌을 중심으로 하여 그에 따라 의례를 행하는 신앙집단을 총칭한다.

현존하는 불교의 문헌 중에서 ‘탄트라’라는 명칭을 지닌 최초의 것으로는 『초회금강정경(初會金剛頂經)』, 일명 일체여래진실섭경(一切如來眞實攝經)이라 불리는 문헌 중의 본분(本分)에 대한 부록에 해당하는 교리분이다. 이 경전에서는 일반적인 구성이라 할 수 있는 ‘서분, 본분, 유통분’이라는 수미일관된 원전 형식이 완비되어 있지 않으며, 개개의 교의 또는 실천, 행법 등에 대한 비교적 짧은 문단이 각각 ‘탄트라’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밀교교단 내부에서는 7세기경에 성립되어 밀교의 2대 경전으로 꼽히는 『대일경(大日經)』과 『금강정경(金剛頂經)』의 경우와 같이 문헌 명칭 상으로는 수트라를 채용함으로써 현교의 경전처럼 쓰이기도 한다. 따라서 명칭상의 탄트라라는 말에 국한하기보다는 그 내용에 따라 밀교 경전과 범위가 정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밀교의 주요 교의는 대일 여래, 즉 대비로자나불(大毘盧遮那佛)을 중심으로 하여 붓다의 대비(大悲)와 지혜를 상징하는 태장계(胎藏界)와 금강계(金剛界)라는 양계(兩界) 만다라를 통해서, 불성을 지닌 중생이 성불하기 위한 과정과 의례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성불하기 위해서는 붓다의 법신(法身)과 한 몸이 되는 요가, 즉 유가(瑜伽)를 중요시하는데 그에 대해서는 『비밀집회 탄트라』에서 상세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초기 밀교는 흔히 잡밀(雜密)이라 하여 다양하고 잡다한 방식의 의례가 혼합되어 있는 상태였으나, 점차로 교의가 정립되어 순밀(純密)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러한 밀교의 발달 과정은 일반적으로 다음 4단계로 정리한다.

첫째, 소작(所作) 탄트라(kriya--tantra) 단계로서 잡밀경전들이 해당한다.

둘째, 행(行) 탄트라(carya--tantra) 단계로서 순밀을 형성하는 양부(兩部) 대경(大經) 중에서 『대일경』 및 대일경 계통의 경전들이 해당한다.

셋째, 유가(瑜伽) 탄트라(yoga-tantra) 단계로서 『금강정경』 및 금강정경 계통의 경전들이 해당한다.

넷째, 무상유가(無上瑜伽) 탄트라(anuttarayoga-tantra) 단계로서 예외적인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널리 전승된 적이 없으며, 다만 티베트에서 성행했다. 이는 다시 방편(方便) 부(父) 탄트라, 반야(般若) 모(母) 탄트라, 불이(不二) 탄트라 등으로 세분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밀교의 교의에 따른 수행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삼밀(三密) 수행법이다. 이는 법신불인 대일 여래가 설하는 세 가지의 비밀스런 법문(法門)으로서 불교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꼽는 세 가지 업, 즉 신(身), 구(口), 의(意)라는 세 가지 통로로써 짓게 되는 업을 기반으로 하여 수행을 쌓음으로써 성불(成佛)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밀수행법은 밀교 전반에 걸쳐서 강조되는 행법으로서, 7세기경에 인도에서 정립되어 점차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다.

요컨대 삼밀수행이란 입으로는 진언을 암송하고, 손으로는 다양한 수인(手印, mudra-)을 짓고, 마음으로는 불보살의 도상(圖像)을 염상(念想)하는 수행법을 말하는데, 이를 각각 구밀(口密), 신밀(身密), 의밀(意密)이라 한다. 밀교에서는 이와 같은 삼밀을 동시에 수행하라고 권장하였다.

그리고 밀교에서는 세속적인 무명(無明)과 초월적인 명(明)의 이원성을 극복하여 해소시킴으로써 즉신성불(卽身成佛)의 이상을 추구하였다. 더 나아가 가장 세속적인 성적 합일을 초월적인 깨달음으로 환원시키고자 했던 밀교의 의도는 종교적인 목적과 세속적인 소망을 동시에 달성하는 데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불교 자체의 쇠멸을 초래하고 말았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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