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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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인도불교

관리자 | 2006.03.14 05:01 | 조회 2241
현대 인도불교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1. 신불교 운동
인도에서 다시 불교가 부흥한 것은 20세기 중반에 들어서 신불교 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신불교 운동을 주창했던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Dr. Bhimrao Ramji Ambedkar, 1891~1956년)는 마하라슈트라 주의 암바바데(Ambavade)에서 태어났다. 그는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에 해당하는 마하르(Mahar) 카스트 출신이었다. 마하르 카스트란 거리 청소나 소각 등을 담당하던 소위 ‘불가촉 천민’에 속하는 집단을 말한다.

힌두 사회에서, 불가촉 천민은 다만 탄생함으로써 존재로 인정될 뿐이었고, 사회적으로는 상층의 힌두계급과는 간접적으로도 접촉할 수 없을 만큼 열등한 신분을 지닌 집단이었다. 실제로 상층계급은 불가촉 천민의 그림자조차 닿기를 꺼려하는 것이 인도의 현실이다. 하지만 암베드카르는 정통적인 불교의 교리에 따라서 사회적인 신분차별은 부당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암베드카르가 1956년 10월 14일에 마하라슈트라 주의 나그푸르 시에서 불교에 귀의하는 개종식을 주도했던 첫째 동기도 바로 불교의 인간평등사상에 있었다. 그 당시 집단 개종식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80만 명에 이르렀는데, 그 대부분은 하층계급에 속했다. 그 중 50만 명 정도가 불교로 개종했다고 전하는데,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개종했던 것은 유례에 없는 일로서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아 있다.

암베드카르는 개종식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22가지 서약을 선포하였다.

1) 나는 브라만, 비슈누, 마하데바의 신을 인정하지 않고 예배하지 않는다.
2) 나는 라마와 크리슈나의 신을 인정하지 않고 예배하지 않는다.
3) 나는 가우리, 가나파티, 그 외 힌두교의 여러 남신, 여신을 인정하지 않고 예배하지 않는다.
4) ‘신은 화신으로 나타난다’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5) ‘붓다가 비슈누의 화신’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전승은 오류이다.
6) 나는 조령제(祖靈祭)를 행하지 않는다.
7) 나는 불교에 반하는 어떠한 말과 행위도 하지 않는다.
8) 나는 어떤 의식도 브라만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9) 나는 전 인류는 평등하다는 주장을 인정한다.
10) 나는 평등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11) 나는 8정도(正道)를 준수한다.
12) 나는 10바라밀을 준수한다.
13) 나는 일체 중생에 대한 연민의 마음으로 불살생을 준수한다.
14) 나는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
15) 나는 헛된 말을 하지 않는다.
16) 나는 삿된 음행을 범하지 않는다.
17)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18) 나는 불교의 지혜, 지계, 삼매에 따라 생활하고자 노력한다.
19) 나는 인간을 불평등하게 취급하는 힌두교를 버리고 불교를 받아들인다.
20) 불교만이 참된 종교라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21) 나는 이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인정한다.
22) 나는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신성하게 맹세한다.

이와 같은 서약을 외친 암베드카르가 “나와 함께 불교로 귀의할 사람은 일어서시오”라고 말하자 회의장의 참석자 전원이 일어나서 서약을 반복하고 개종하였다고 전한다.

신불교 운동을 주도했던 암베드카르의 궁극적 목적은 불가촉 천민이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향유하는 데 있었다. 슈드라의 신분이나 여성으로서는 신에게 가까이 갈 수 없다고 규정하는 힌두교의 불평등을 비판하고, 불교의 평등주의를 고양시킨 암베드카르의 주창은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를 따라서 개종한 하층민들의 불교를 지칭하는 말로서 신불교(Neo-Buddhism)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겼지만, 이는 고타마 붓다의 사상과 다르다는 뜻은 아니었다.

암베드카르는 “현대사회에서 수용할 만한 종교는 오직 불교뿐이다. 만약 현대사회가 불교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멸망을 면치 못할 것이다. 다른 어떠한 종교도 붓다의 가르침 이상으로 지적이고 과학적인 현대인의 마음에 파고들지 못할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개종식을 마친 암베드카르는 행사를 마치자마자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개최되는 세계불교도연맹의 개회식에 참석하여 연설하고 나서, 불교 유적지를 순례한 후 뭄바이로 돌아왔다. 그런데 1956년 12월 6일 아침, 그는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의 타계로 인해 하층민들 사이에서 열렬했던 불교로의 개종이 멈출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오히려 나그푸르, 푸나, 아메다바드, 아그라 등지에서 집단적 개종은 계속되었고, 그의 영향력은 생전보다도 사후에 더 크게 발휘되었다.

현재, 신불교 교도들은 암베드카르의 이름인 빔라오(Bhimrao)를 따서 ‘비맘 샤라남 갓차미(Bhimam saranㆍam gacchami)’라고 귀경게의 목록에 편입시켰다. 불ㆍ법ㆍ승 3보에의 귀의만이 아니라 암베드카르에게도 귀의한다는 4보 귀의로 바뀐 것이다.

인도의 불교도들은 암베드카르가 보살과 같다고 여긴다. 인도불교도의 개종에 큰 역할을 했던 그의 공적을 인정한 결과이다. 현재 마하라슈트라 주를 중심으로 암베드카르의 유업을 잇고 있으며 불교로의 개종은 확산되어 가는 추세이다.

2. 현대 인도불교의 부흥
불교의 발상지 인도에서는 근년에 들어서 불교신자가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암베드카르의 신불교 운동은 불교 자체의 부흥이라기보다는 불교를 통해 천민들의 사회적 지위를 개혁하고자 했던 사회운동이었다는 평가를 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인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불교 개종식을 비롯한 불교집회는 인도뿐만 아니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2001년 11월 4일에는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서 ‘전 인도 불가촉민 연합회’의 의장인 람 라즈(Ram Raj)가 주도하는 집단 개종집회가 열렸다. 이 때 운집했던 100만 명에 달하는 하층민들이 불교로 개종하고자 했으나 그 중 8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경찰의 제지를 받고 집회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 집회에서 “우리는 더 이상 힌두의 신들에게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라는 선언이 낭독됨으로써 암베드카르의 신불교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힌두교도와의 충돌을 우려한 정부 측의 강압적인 대응으로 인하여 개종의식이 순조롭게 성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인도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인도불교청년회’, ‘불교도발전협회’ 등 여러 불교단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집회와 의식, 축제 등을 거행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타르프라데쉬 주의 상카시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석가족의 후손들이 매년 음력 9월 보름에 개최하는 상카시아불교대축제의 경우는 2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행사로서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을 널리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서 인도에 불교사원을 세우기 위한 각종 모금 행사가 펼쳐지고 있으며, 해외 불교도의 도움을 간절히 요청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최근 인도의 불교부흥에는 또 다른 요인이 덧붙여진다. 바로 티베트인들의 유입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티베트지역을 중국이 점령한 뒤 거세지는 박해를 피하고자 티베트인들은 국경을 넘기 시작했으며, 1959년에는 약 10만 명의 티베트인들이 인도로 피난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로도 이어지고 있는 티베트불교도들의 인도 이주는 사실상 인도불교의 재확산에 도화선을 당기는 역할을 하였으며, 암베드카르의 신불교 운동보다도 훨씬 더 강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실제 현실이라고 본다.

고향에서 추방당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티베트불교의 스승들은 인도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 불교사상을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도는 티베트불교의 직접적인 수혜자로서 새로운 인도불교사를 쓰고 있는 중이다.

흔히 인도에서 지속적이고 살아 있는 불교로서의 전통은 끊겼다고는 말해 왔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이제 불교의 산실에서 재생하는 기미가 확연하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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