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가르침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4. 화엄

관리자 | 2006.03.14 05:16 | 조회 2605

4. 화엄

1) 화엄경의 해제 원래 경이름[經名]에는 그 경이 지니는 전체의 내용이 잘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경이름 풀이를 잘 하면 그 경의 반(半)은 해석 되었다고 일컬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화엄경』의 갖춘 이름인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해제를 먼저 살펴보자.
화엄경먼저 대(大)라고 하는 것은 크다는 뜻인데 단순히 작다고 하는 소(小)에 대한 상대적인 대가 아니라 절대적인 ‘대’로써,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는 의미의 극대(極大)를 말하고 있다. 이어서 ‘방(方)’이란 방정하다ㆍ바르다 뜻이고 ‘광(廣)’은 넓다는 의미이니까 합하여 ‘대방광’하면 시공(時空)을 초월하고 있다는 뜻이 되고, 거기에 불(佛)을 붙여 ‘대방광불’하면 시ㆍ공을 초월한 부처님이라는 뜻이 된다. 그 다음 ‘화엄(華嚴)’은 여러 가지 꽃으로 장엄하고, 꾸민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화’는 깨달음의 원인으로서의 수행에 비유한 것이고 ‘엄’은 수행의 결과로서 부처님을 아름답게 장엄하는 것, 즉 보살이 수행의 꽃으로써 부처님을 장엄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때 중요한 것은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들만을 뽑아서 장엄하는 것이 아니라, 길가에 무심히 피어있는 이름 모를 잡초들까지도 모두 다 포함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엄경』을 일명 『잡화경(雜華經)』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화엄경』의 산스크리트 원본은 산실되어 버리고 단지 「십지품(十地品)」과 「입법계품(入法界品)」만이 현존하고 있는데, 한역은 두 가지의 대본(大本), 즉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와 실차난타(實叉難陀)의 번역본이 있다. 전자는 번역된 권수가 60권이기 때문에 『60화엄』이라 부르기도 하고 또한 번역된 시대가 동진(東晋)이므로 『진경(晋經)』이라 부르는 반면, 후자는 권수가 80권이라서 『80화엄』 또는 당나라 때의 번역이기 때문에 『당경(唐經)』이라 부르고 있다. 그 외에도 반야(般若)가 번역한 『40화엄』이 있으나, 이것은 대본(大本)의 「입법계품」에 해당하는 부분적인 번역이다. 그리고 9세기 말에 번역된 티베트본인 『서장화엄경(西藏華嚴經)』도 현존하고 있다. 이렇게 판본이 몇 가지나 되다 보니 자연히 구성조직도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60화엄』은 칠처팔회(七處八會 : 일곱 장소에서 여덟 번의 법회) 34품으로 구성되어 있고 『80화엄』은 칠처구회(七處九會 : 일곱 장소에서 아홉 번의 법회) 39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크게 삼분(三分)하여 지상편(地上篇), 천상편(天上篇), 지상회귀편(地上回歸篇)으로 나누기도 한다. 『화엄경』은 처음부터 현재의 체제로 만들어진 경전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상을 같이 하는 여러 가지 단독 경전을 모아 집대성한 것이다. 그 시기는 대체로 4세기경으로 보고 있으며, 학자들은 그 장소를 서역(西域)의 우전국(于猊國)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 화엄종의 성립 화엄학이란 화엄사상에 근거하여 성립한 『화엄경』을 종(縱)으로 하고, 『화엄경』에 전념한 조사들의 견해를 횡(橫)으로 삼아서 만들어 놓은 큰 체계이다. 따라서 화엄조사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 화엄종의 성립과 한국 화엄종의 성립을 간단히 살펴보자. 먼저 중국화엄종의 초조(初祖)는 두순(杜順, 557~640)이다. 그의 사상적 입장을 전하고 있는 유일한 저작으로 인정되고 있는 『법계관문(法界觀門)』조차도 오늘날 진찬(眞撰)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저서가 많은 사람이 반드시 훌륭한 사상가는 아니듯이 저술이 전해지지 않는 것과 종교자로서의 비중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하겠다. 지엄(智儼, 602~668)은 두순의 법맥을 잇고, 화엄교학의 대성자 법장을 길러낸 과도기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것은 두순이 실천적이고 관행적(觀行的)이었던 성격에 비해 화엄학의 중요한 사상적인 문제의 소박한 원형이 거의 지엄의 사상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엄이 남긴 저술로는 『60화엄』에 대한 최초의 주석서인 『수현기(搜玄記)』를 비롯해서 『공목장(孔目章)』 등이 있다. 법장(法藏, 643~712)은 제3조로 알려져 있지만, 실질적으로 화엄교학을 체계화시킨 인물이다. 화엄종을 현수종(賢首宗)이라 부르는 것도 그의 호인 현수(賢首)에서 유래되고 있는 별칭이다. 그는 지엄 이상으로 유식(唯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었지만, 단순한 대응이 아니라 이것을 흡수 융합시킴으로써 자신의 화엄교학을 한 차원 높게 완성시켜 나갔다. 법장이 세운 오교십종판(五敎十宗判)은 물론이거니와 법계연기(法界緣起)ㆍ성기사상(性起思想)ㆍ육상원융(六相圓融) 등, 그 어느 것도 화엄의 지상성(至上性)을 드러내기 위한 교리들이다. 그의 화엄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저술 가운데, 화엄학의 개론서라고 할 수 있는 『오교장(五敎章)』과 『60화엄』의 주석서인 『탐현기(探玄記)』, 그리고 『기신론(起信論)』 주석의 백미라고 하는 『기신론의기(起信論義記)』 등이 유명하다. 징관(澄觀, 738~839)은 당나라 초기 때 전개된 학문불교가 중엽에는 실천불교로 변모해가는 바로 그 시대에 활약하던 인물로서 화엄과 선(禪)을 융합시키고자 노력한 스님이다. 종밀(宗密, 780~841)은 징관이 화엄 속에 선을 융합시키고자 한 반면, 그는 선(禪)과 교(敎)를 완전히 대등한 위치로 보고 교선일치(敎禪一致)를 주장하였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자장(慈藏)에 의해 처음으로 『화엄경』이 전래된 이래 통일신라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원효(元曉, 617~686), 의상(義湘, 625~702) 두 스님에 의해 화엄사상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원효는 어느 한 종파에 국한시킬 수 없을 만큼 불교전반에 걸쳐 사상적 폭이 크기 때문에 역시 해동초조(海東初祖)는 의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는 의상의 화엄사상이 잘 압축되어 드러나 있다. 고려시대에는 균여(均如, 923~973)가 『법계도원통기(法界圖圓通記)』를 위시하여 여러 편의 저술을 남겼고, 이어서 지눌(知訥, 1158~1210)은 『화엄절요(華嚴節要)』를 통하여 돈오점수(頓悟漸修)의 화엄선을 선양하였다. 조선조 초기는 김시습(金時習)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후기에는 연담 유일(蓮潭有一) 등 화엄조사들이 후학들을 위해 사기(私記)를 지었다. 3) 화엄교학의 중심 사상 『화엄경』은 부처님의 자내증(自內證)의 세계, 즉 깨달음의 세계를 그대로 묘사한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사리불이나 목련과 같은 훌륭한 제자까지도 벙어리와 귀머거리처럼 그 내용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그만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 방울의 거품을 보고서 바다 전체를 보았다고 한다거나 반대로 바닷물을 다 마신 후에야 그 맛을 알겠다고 한다면 이 또한 어리석은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와 같이 경전의 한 구절 한 구절의 낱말에 구애받지 않고 좀더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화엄경』 전체를 하나의 대 서사시(敍事詩)나 대 드라마로 이해한다면, 보다 좀 더 친근감이 있는 경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엄교학이라는 입장에서 살펴볼 때, 성기사상(性起思想)과 법계연기(法界緣起)가 화엄사상을 가장 극명하게 잘 드러내고 있으며, 십현연기(十玄緣起)와 육상원융(六相圓融)은 법계연기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법계연기는 우주만유의 낱낱 법이 자성(自性)을 가지고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법계를 사(事)와 이(理)로 구분하여 설명한 것이 사법계설(四法界說)이다. 첫째, 사법계(事法界)는 모든 현상적이고 차별적인 세계를 말한다. 둘째, 이법계(理法界)는 사법계를 성립시키는 본체적이고 평등한 세계를 가리킨다. 셋째,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는 이와 사, 즉 본체와 현상이 둘이 아닌 것임을 설명한다. 마치 파도와 물의 관계로 비유할 수 있다. 넷째,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는 현상계가 그대로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라는 것이다. 즉 중중무진(重重無盡)한 연기의 세계는 현상적으로 보면 개개의 사물들이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개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가 상관관계에 놓여 있다는 설명이다. 마치 바다의 섬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다 밑으로 보면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있는 것과도 같다는 뜻이다. 이를 인다라망(因陀羅網)에 비유하여 설명하기도 하는데, 소위 일즉다다즉일(一卽多多卽一)이라고 표현되는 사상이다. 다시 말하면 이름 모를 풀 한 포기에서 우주 전체의 모습을 보고 그 풀잎에 맺혀있는 한 방울의 작은 이슬에서 온 중생의 아픔을 느끼는 원리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은 화엄사상에만 국한되고 있는 이론이 아니라, 현대물리학에서도 충분히 입증이 되고 있어 더욱 공감이 간다. 예를 들면 우리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는 우리 몸을 복제할 수 있는 모든 정보가 다 들어있기 때문에 적어도 원리적으로는 세포 하나만 있으면 우리 몸 전체를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즉 세포 하나를 통해 몸 전체의 정보를 알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일즉일체(一卽一切)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 셈이다. 이를 사회생활속에 적용시켜보면 우리는 서로가 연관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소중하게 생각하여야 할 존재라는 것이 화엄사상의 기본 입장임을 알 수가 있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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