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문화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4.불전(佛殿)의 조성

관리자 | 2006.03.14 05:37 | 조회 1038

4.불전(佛殿)의 조성

(1) 기초공사
불전의 건축공정에서는 우선 불전과 부속건물이 들어설 수 있는 터를 잡아 터닦기를 한 다음 건물을 세우기 위해 기단을 쌓는다. 이 때 기단은 막돌 쌓기, 바른 돌 쌓기, 허튼층 쌓기, 바른층 쌓기 등의 축조법으로 이루어지는데 축조법의 선택에 따라 구성미가 다양하게 드러나게 된다.
터 다지기와 기단 쌓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건물을 짓게 되는데 고전적인 방식에서는 질서정연한 석조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후로는 석조 기단을 석축기단으로 대체하거나 기단을 간략하게 하고 바로 낮은 토단 위에 기초공사를 하고 주춧돌을 놓기도 했다.
주춧돌도 고려시대까지는 방형 또는 원형의 주춧돌을 사용했으며 특히 조선시대 후기 이후로는 ‘덤벙주초’라 하는 자연석 주춧돌을 대강 다듬어 쓰는 방식이 유행했다.

(2) 기둥과 지붕
기둥은 대체로 둥근 기둥을 썼으며 통일신라 이후에는 기둥의 중간부가 두툼해지는 이른바 배흘림기둥이 선보이기도 했다. 현재 통일신라시대의 기둥이 남아 있는 건물은 없으나 당시의 승탑(부도)에서 배흘림 기둥이 뚜렷이 나타나는 것으로 증명이 된다. 이러한 기둥 양식이 다시 페르시아, 중앙 아시아, 중국 등지를 거쳐 신라에 전래됐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기둥이 탄탄해보이는 시각적 효과가 있다. 기둥을 세운 다음에는 기둥과 기둥을 위쪽 부분에서 꿰뚫고 연결하는 창방(昌枋, 넓적한 도리)이 결구되고, 각 기둥 위에는 커다란 주두(柱頭)가 놓이며 그 위로 지붕을 떠받는 부재(部材)들이 놓인다. 지붕은 여러 부재들을 대규모로 결합한 구성물이므로 중량과 부피가 상당하다. 뿐만 아니라 지붕을 구성하는 각 부재들은 역학적으로 치밀하게 짜맞추어져 지붕의 모양을 이루고, 동시에 육중한 지붕의 무게가 공평하고 안전하게 기둥으로 전달되도록 되어 있다.

(3) 공포의 구조

무량사 극락전 백흥암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인간과 모든 생명의 한계 상황인 죽음을 물리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법당입니다. 이 부처님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주불이기 때문에 이분을 모신 법당을 극락전이라 한 것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은 또한 무한한 빛이요 생명의 부처님이어서 무량광불(無量光佛), 혹은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 불리기에 극락전은 무량수전, 무량광전으로도 일컬어집니다. 이 밖에 아미타전, 미타전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습니다.
정토세계의 주불(主佛) 아미타부처님의 협시보살로서 좌측에 있는 분이 관세음보살이고 우측에 있는 분이 대세지보살입니다. 여기서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대세지보살은 지혜를 각각 상징합니다.
주두 위에서 지붕을 안전하게 떠받치는 첫번째 부재들의 뭉치를 공포(蛋包)라고 하는데 여러 개의 첨차(察遮)와 소루(小累)로 구성된다. 첨차는 처마 밑에서 지붕의 무게를 받아내는 여러 겹의 받침부재이며 소루는 이 받침부재들 사이에서 서로의 틈을 괴어주는 작고 납작하며 네모난 부재들이다. 주심포식(柱心包式) 건물은 기둥 위에만 공포를 놓는 형식이고, 다포식(多包式) 건물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사이에도 공포를 놓는 발달된 형식이다. 현재 남아 있는 고려시대 건축물로는 수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등으로 주심포식 건물이 더 많이 남아 있으나, 조선시대에는 다포식이 중요한 건물에 주로 사용되었다.

(4) 대들보, 도리, 서까래
공포의 구조를 이루는 첨차는 지붕 대부분의 무게를 지탱하는 대들보[大樑]와 도리(道里)를 받게 되고, 대들보는 지붕 전체를 가로받치게 된다. 도리는 서까래를 가로받쳐주는 긴 부재다. 그 가운데 지붕 내부의 맨 위쪽 한가운데를 받는 것을 종도리(宗道里), 중간 부분을 받는 것을 중도리(中道里), 기둥 안쪽을 받치는 것을 내목도리(內目道里), 기둥 위에서 서까래를 받는 것을 주심도리(柱心道里), 기둥 바깥쪽에서 받는 것을 외목도리(外目道里)라고 한다. 서까래는 지붕꼴을 이루는 뼈대로서 통나무를 세로로 벌여 구성하며, 통상 지붕 위에서 처마 끝까지는 두 개의 통나무를 엇걸기로 연결해서 한 골의 서까래를 이룬다. 또한 처마 끝을 길게 내어 햇볕이나 빗물을 차단하고, 아울러 처마의 맵시를 더하기 위해서는 한 토막씩의 서까래를 덧대는 덧서까래[附椽]를 설치하기도 한다. 처마의 네 귀는 서까래가 부챗살처럼 퍼지면서 살짝 위로 들려 지붕 모양에 곡선미를 줌으로써 더욱 우아하게 보인다.

(5) 기와
서까래 위에는 산자를 얹고 진흙과 짚을 버무려 덮은 뒤에 기와를 얹어 지붕을 마무리한다. 이 때 덮는 기와는 대부분 두 종류다. 그 가운데 지붕 바닥에 놓여 기왓골을 이루는 넙적기와를 ‘암키와’라 하고, 암키와와 암키와 사이를 덮는 길쭉한 기와를 ‘수키와’라 한다. 그리고 지붕의 가장자리인 처마 끝을 마감하는 기와를 ‘막새기와’라 하는데, 여기에도 ‘암막새’와 ‘수막새’기와가 사용된다. 특히 막새기와에는 연꽃무늬, 당초무늬 등 여러 가지 장식무늬가 새겨지므로 무늬를 보고 기와 제작시기를 밝혀내기도 한다.

(6) 바닥과 창호
건물 내부의 바닥에는 전돌 또는 마루를 깔게 된다.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원래 중앙에 설치되고 좌우에는 살창만이 있었는데, 조선시대 이후로는 건물 앞면에 온통 창호(窓戶)를 달아 건물 내부가 밝아졌다. 창호는 띠살, 빗살, 꽃살 등으로 장식한다. 뒤에는 창문들을 좌우로 접히고 위로 들리도록 해서, 건물 내부가 훤히 개방되는 문달기 방식이 발전한다. 한편 앞쪽 전체에 창호문을 달면서, 가운데 칸은 부처님을 위한 상징적인 출입 통로가 되고, 실질적으로 신도들은 좌우 벽채의 앞쪽 출입문을 이용하게 되었다. 문은 뒷벽에도 설치된다. 뒷벽 중앙에는 출입문을 설치하고 양 옆면에는 창호를 내는데, 예부터 건물 사방에 사문팔창(四門八窓)을 내던 조영법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대가 흐를수록 뒷벽의 창과 문의 사용례가 줄어들어 오늘날에는 그 자취만 남아 있다.

(7) 불단(佛壇), 단청(丹靑)
불단은 불전 내부의 중간부 약간 뒤쪽에 설치된다. 불단 위에는 불상을 안치하고 불상 뒤에는 후불탱화를 건다. 마지막으로 불전 내외부의 벽채와 천장에 화려한 단청과 벽화 장식을 조성함으로써 건물이 완공된다. 기둥이나 천장 등과 같은 부재에 용, 연꽃 등 도안적인 그림을 그려 장엄하는 것을 단청(丹靑)이라고도 한다. 단청은 전각을 아름답고 숭고한 분위기로 장엄하는 구실을 하지만, 채색과 기름을 덧입혀 목재를 보호하고 조악한 면을 감추는 기능도 겸하고 있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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