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문화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6.부도와 승탑(僧塔)

관리자 | 2006.03.14 05:37 | 조회 1243

6.부도와 승탑(僧塔)

불교에서는 세 가지 성스러운 보배인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를 숭배하고 있다. 그 가운데 승보(僧寶)로 공경받는 많은 고승들은 백성의 스승인 국사(國師)와 국왕의 스승인 왕사(王師)의 칭호를 받았고, 이들은 교화는 물론 불법 탐구에도 정진해서 외국에까지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이리하여 덕망 높은 스님이 일생을 마치면 평소에 스님을 받들던 제자와 신도들이 스승의 묘탑(墓塔)인 승탑(僧塔)과 탑비(塔碑)를 세웠다.

갑사부도 고달사지부도
또한 승탑과 탑비는 왕명으로 탑호(塔號)를 받았다. 탑비의 비문은 당대 제일의 문장가가 글을 짓고 명필가가 글을 써서, 명공이 비석에 행적을 새겼다. 이같이 지극한 정성으로 세워진 승탑과 탑비는 특히 신라 하대부터 장엄하게 조형되어 우리나라 석조미술의 진면목을 이루었다. 승탑은 탑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인도에서 사리불, 목건련 등 성제자(聖弟子)들의 묘탑으로 조성되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부도(浮屠)’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부도는 ‘붓다(Buddha)’의 음역이라고 하며, 원래는 부처를 가리키는 것이었으나 나중에는 고승을 부처님처럼 존경해서 부도라 일컬었다. 나아가 고승의 묘탑이 곧 불탑과 대등한 부도라는 뜻으로 굳어진 듯하다. 우리나라 승탑은 절 외곽에 따로 마련한 탑원(塔園)에 탑비와 함께 안치되어 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승탑들은 대부분 통일신라 하대 이후에 조성된 것들로, 이 시기의 승탑은 중국에서 크게 일어난 선종불교(禪宗佛敎)의 전래와 관련이 있다. 당시에는 상당한 지위와 덕망을 갖춘 고승에 한해 승탑이 조성되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승탑 중 가장 먼저 조성된 것은 신라 선종산문(禪宗山門)의 하나였던 가지산문(迦智山門)의 시조 도의 국사(道義國師)의 탑으로 알려진 강원도 양양의 진전사지 부도(浮屠)이다. 통일신라 하대부터 고려 전기까지 유행한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승탑은 계속 후대로 이어져 조선시대까지 계승되는데, 기본 형식은 변함 없지만 기단과 탑신의 조각은 승탑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승탑은 조선시대 전까지는 대부분 불탑과는 다른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극히 일부의 승탑만이 석탑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시대 후기 이후로는 석종형 승탑(石鍾形僧塔)과 석탑형 승탑(石塔形僧塔)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조선시대 후기에는 간단한 석종형 승탑이 크게 유행했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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