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부처님이야기─카필라국의 멸망(20)

관리자 | 2007.04.09 10:24 | 조회 1814
카필라국의 멸망 부처님께서 가장 슬퍼했던 일의 하나는 자기의 고국이었던 카필라국의 멸망이었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에 코살라국의 파사익왕은 석가족의 처녀를 왕비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자기 부족에 대해 자부심이 강하여 교만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코살라국의 파사익왕의 요청에 석가족의 처녀를 보낼 수 없다고 결정하였다. 그렇지만 당시 대국이었던 코살라국의 요청을 정면으로 반대할 수가 없어 부처님의 사촌이었던 마하남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의 딸을 분장하여 석가족의 처녀처럼 파사익왕에게 출가시켰다. 이 하녀의 딸과 파사익왕 사이에 태어난 사람이 유리태자였다. 유리태자의 나이 8살되던 해에 외가인 카필라성에 왔다. 카필라국에서는 새로 궁전을 지어 부처님을 모시고 낙성식을 화려하게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오시기 전에 유리태자가 새로 지은 궁전에 들어가 장난을 하자 화가난 석가족 사람들이 노비의 소생이라 버릇이 없다고 내쫓아 버렸다. 이때서야 자기가 석가족의 노비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유리태자는 울분을 참으며 코살라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언제고 이러한 굴욕적인 일에 앙갚음할 것을 결심하고 있었다. 드디어 유리왕은 군사를 일으켜 석가족의 정벌에 나섰다. 석가족을 정벌하기 위하여 출병하였다는 소식을 들으신 부처님은 코살라국 병사들이 오는 길목에 있는 잎사귀도 없는 한 고목나무밑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유리왕이 부처님께 물었다. "세존이시여, 잎이 무성한 나무 숲을 놓아두고 말라버린 고목나무 밑에 계십니까?" "일가친척의 그늘이 다른 그늘보다 낫기 때문이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유리왕은 물러갔다. 그러나 외도 범지의 말을 듣고 있던 유리왕은 외도의 충동으로 2차, 3차로 침범해 왔으나 꼭같이 부처님께서 막았으므로 전쟁없이 물러갔다. 그러나 부처님은 속세에 맺어진 원결을 더이상은 막을 수가 없다고 물러나셨다. 이러한 사정을 알게된 신통제일의 제자 목련이 자신의 신통력으로 유리왕을 막으려 하였으나 부처님은 오히려 만류하였다. 눈앞에 벌어지는 싸움이야 일시적으로 막을 수가 있으나 깊이 맺혀있는 원한 관계는 신통력이라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설사 하늘을 땅으로 만들고 다시 땅을 뒤집어 하늘을 만들 수 있다해도 구원겁에 꽁꽁묶인 인연이야 어찌 없어지겠느냐." 군사력이 강한 코살국의 유리왕은 4차로 카필라성을 침입하였다. 유리왕은 카필라성의 석가족을 무기로 죽이지도 말고 성난 코끼리가 밟아 죽이도록 하였다. 그러면서 예쁘고 잘 생긴 석가족 처녀 500명은 죽이지 말고 자기 나라로 데려가게 하라고 명령하였다. 그 당시 카필라성의 왕이었던 마하남이 석가족의 비참한 최후를 차마 볼 수가 없어 유리왕에게 간청하였다. "내가 저 연못의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동안만이라도 석가족이 마음 놓고 피할 수 있도록 해주시오." 유리왕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허락하였다. 그리고 물속으로 나올 때까지 석가족을 죽이지 말고 도망하게 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물속에 들어간 마하남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유리왕이 군사를 시켜 연못의 물을 퍼내고보니 마하남은 물속에 들어가서 머리카락을 나무 뿌리에 묶어 물위로 떠오르지 않게 하고 죽어 있었다. 이것을 본 유리왕은 군사를 돌려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성밖 니그로다 숲에 이르러 죽이지 않고 데리고 가던 500명의 석가족 처녀중에 한 사람을 욕보이려 하자 '내 어찌 노비의 소생과 놀아날 수 있느냐'고 모욕적인 언사를 퍼우으며 완강히 거부하자,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유리왕은 그 자리에서 석가족 처녀 500명을 손과 발을 잘라 죽였다. 피로한 몸으로 유리왕이 코살라국의 사위성으로 돌아오니 왕궁의 한 쪽에서 흥겨운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저것은 무슨 노래 소리인지 알아보라." "기타태자(유리왕의 동생)의 궁전에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그 쪽으로 말머리를 돌려라." 왕이 접근하여 오자 궁의 문지기가 기타 태자에게 알리거든 들어가라고 길을 막았다. 유리왕은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문지기의 목을 잘라 죽였다. 화가난 유리왕이 문밖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노래를 그치지 않다가 두려움에 질린 기생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그때서야 문밖으로 나온 기타왕자가 유리왕을 보고 말했다. "어서오십시오. 들어오셔서 잠시 쉬어가시지요." "너는 어째서 내가 석가족과 싸우러 간 것을 모르고 있었느냐?" "들어서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옆에서 도와주지 않고 어찌하여 기생들과 놀이만 하고 있었느냐?" "나는 뭇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짓은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유리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 기타왕자의 목을 쳤다. 그러나 기타태자는 기원정사를 지을 때 숲을 헌납하기도 하였을 뿐 아니라 악행을 멀리하고 선행을 쌓은 공덕으로 비록 살해는 당했으나 33천에 태어나게 되었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유리왕을 받들기를 거부하다가 손발이 잘려 죽어간 석가족의 여인들은 죽는 순간까지 모두가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죽었다. 이때 부처님은 코살라국의 사위성 근처에 있는 기원정사에 있었다. 그러나 비참하게 죽어가면서 목메이며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천이통(天耳通)으로 들으시게 되었다. 죽어가는 여인네들이 부처님을 향하여 이러한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지 않았다고 원망하는 것이었다. 부처님은 많은 비구들을 데리고 사위성을 떠나 카필라성의 니그로다 숲으로 돌아왔다. "너희 비구들아, 모두 와서 카필라성의 최후의 모습과 석가족 여인들의 죽어간 모습을 보아라." 이 니그로다 숲은 부처님이 탄생하신 곳이요, 자신이 도를 이루고 고향에 돌아와 정반왕을 교화하고 석가족 청년들을 출가시켰으며, 동생들과 아들을 출가하게 한 인연이 깊은 곳이었는데, 지금 다시 자기 일가친척들이 비참하게 죽어간 모습을 보게되어 비통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때 부처님은 버려진 시체들을 덮어주시고 음식을 준비하여 죽은 석가족 여인들을 위하여 위로의 법문을 해주셨다. "만난 것은 반드시 헤어지는 법이다. 모든 석가족의 여인들아, 들어라. 이몸(오온)이 있었으므로 이러한 고통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윤회의 몸을 받지 말아야 한다. 태어남이 있어 늙음과 병듬과 죽음이있고 근심걱정 번뇌망상 고통과 괴로움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착을 버리고 육도 윤회를 벗어나라. 이러한 고통은 다시 없을 것이다." 라고 하시면서 인과법(因果法)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신통력으로 관찰하여 보니 모든 여인들이 원망을 버리고 법안을 얻어 천상에 태어났음을 아시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일체의 모든 존재는 영원함이 없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는다. 그러므로 태어남이 없으면 괴로운 죽음이 없게 된다. 이것이 최상의 즐거움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을 향해, "이곳에서 내가 법을 설하던 곳이 있으나 이제는 사람들이 없어 텅빈 폐허가 되었으니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으리라. 비구들아, 앞으로 7일안에 유리왕과 그를 따른 군사들이 죽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7일내에 죽게될 것이라고 선언하신 말을 전해들은 유리왕은 국경의 방비를 철저히 하고 화재나 물난리가 나지 않도록 온나라에 경계령을 내렸다. 허튼소리를 결코 하지 않는 부처님의 말씀이었기에 유리왕은 근심과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6일이 지나자 석가족을 정벌하라고 게속 충동질하였던 외도 범지가 유리왕을 찾아와서 말했다. "왕이여, 두려워하실 것 없습니다. 벌서 엿새가 지났어도 아무 일도 없었으니, 오늘은 기분을 달래기 위하여 군사와 미녀들을 데리고 아지라강으로 가시어 놀이나 하지요." 왕은 범지의 말대로 강가로 나가서 낮 동안을 보내도 아무 일이 없게 되자 그날 밤을 강가에서 야영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밤중에 때아닌 폭풍과 폭우가 쏟아져 유리왕과 많은 군사들이 물에 빠져 죽게 되었다. * 용화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4-07 14:09)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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