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경전비유설화─어떻게 원한을 갚아야 할까?

관리자 | 2006.04.30 09:30 | 조회 848
어떻게 원한을 갚아야 할까? 부처님이 코삼비의 구사라동산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 무렵 코삼비 비구들은 자주 다툼을 벌였다. 부처님은 비구들을 가르치기 위해 옛날 장수왕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 코살라국에는 장수왕이란 어진 왕이 있었다. 당시 이웃나라 카시국의 왕은 브라흐마닷타였는데 어느 날 군사를 일으켜 코살라를 쳐들어왔다. 장수왕은 브라흐마닷타가 침공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으므로 계략을 써서 적국의 왕을 사로잡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전쟁을 싫어한 장수왕은 적국의 왕을 항복문서만 받고 놓아주었다. 몇 년 뒤 브라흐마닷타는 패전의 수치를 갚기 위해 다시 쳐들어왔다. 장수왕은 브라흐마닷타의 전쟁포기 약속만을 믿고 대비하지 않고 있다가 군사를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 장수왕은 끊임없이 싸우고 또 싸워야하는 전쟁에 회의를 느꼈다. 왕은 더 이상의 싸움을 포기하고 아내와 함께 평민으로 변장하고 바라나시로 숨었다. 평민으로 변장한 장수왕은 시골로 다니면서 풍류를 즐기며 살았다. 사람들은 장수왕의 인품에 감탄해 ‘장수박사’라고 불렀다. 그 사이 아내는 아들을 낳았다. 왕은 아들의 이름을 ‘장생’이라 지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장수왕은 신분이 탄로나 브라흐마닷타에게 잡혀 사형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그럼에도 왕은 몰래 찾아온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참아야 한다. 원한을 품지 말고 자비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장생동자는 아버지의 유훈에 따라 어머니를 모시고 바라나시에 숨어살았다. 사람들은 그를 ‘장생박사’라고 부르면서 존경했다. 그의 명성은 브라흐마닷타에게까지 들어갔다. 왕은 장생을 불러 시종관으로 삼아 항상 곁에 두었다. 왕은 어느 날 장생과 둘이 사냥을 나갔다. 사냥에 열중하던 왕은 피곤해지자 나무 밑에서 장생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다. 장생은 옛일을 생각하고 복수를 하고자 칼을 뽑아들었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당부가 생각나 그만두었다. 마침 잠에서 깨어난 왕은 ‘내가 꿈을 꾸었었는데 장수왕의 아들이 나를 죽이려 했다’며 꿈 얘기를 했다. 장생은 왕 앞에 무릎을 꿇고 ‘나는 장수왕의 아들이며 조금 전에 원수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브라흐마닷타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장수왕이 다스리던 코살라국의 영토를 장생에게 돌려주었다. 또 자신의 딸을 그의 아내로 삼게 했다. 장수왕의 원한은 이렇게 해서 행복한 결말을 맺게 되었다.” 여기까지 말한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이렇게 일러주었다. “서로 싸우지 말라. 만일 싸움을 싸움으로 막으려 하면 끝이 없다. 오직 참는 것만이 싸움을 끝낼 수 있나니 참는 것이야말로 존귀한 법이니라.” -중아함 17권 72경 〈장수왕본기경(長壽王本起經)〉- “참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느니라” ‘불구대천(不俱戴天)’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머리에 하늘을 함께 이고 살수 없는 사람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하늘을 함께 이지 못할 정도라면 그와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원한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부모를 죽인 원수나 아내를 빼앗아간 불한당이나 내 인생의 항로에 결정적인 불이익을 준 사람이 있다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이 경에 등장하는 장생왕자와 브라흐마닷타의 관계도 그렇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부모를 죽인 원수에게조차도 원한을 갚으려하기보다는 용서하라고 말씀한다. 작은 이해관계로 의가 상하고, 사소한 감정으로 사이가 벌어지기 쉬운 인간으로서는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감정이 내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싶은 것이 중생이다. 오, 부처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래도 부처님의 대답은 한결 같다.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불자가 원한을 갚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 용화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4-07 14:09)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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