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경전비유설화─청춘의 아름다움은 어디로 갔나

관리자 | 2007.01.23 07:54 | 조회 1158

청춘의 아름다움은 어디로 갔나


부처님이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제자들은 아침탁발을 나갔다가 시간이 너무 일러 외도들이 있는 곳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외도들은 비구들이 오는 것을 보자 ‘부처님의 가르침과 우리의 도(道)가 별로 다른 것이 없다’고 했다.
비구들은 탁발을 마치고 돌아와 이 사실을 부처님께 아뢰고 과연 그런지를 여쭈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들은 욕심과 육체와 느낌에 집착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가져올 화(禍)를 알고 있으므로 그것에 집착하기 말라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그것은 집착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탐욕은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다섯가지 감각기관이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의 대상을 만나면 생긴다. 그러나 여기에 집착하면 근심이 생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을 해서 재물을 얻었다고 하자. 그는 고생 끝에 얻은 재물을 왕이나 도둑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그런데 땅에 묻으려니 뒤에 잊어버릴까 걱정이고, 이자를 놓자니 받지 못할까 걱정이고, 그냥 놔두자니 집안에 나쁜 자식이 태어나 탕진할까 걱정을 한다. 그러니 욕심은 큰 걱정이 되는 것이다. 육체는 어리거나 젊었을 때는 매우 아름답다. 그래서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사람을 보면 사랑하고 기뻐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 집착하면 근심이 생긴다.

예를 들어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이라 하더라도 나이가 80세 90세 100세가 되면 몸뚱이는 낡은 수레처럼 이가 빠지고 등이 굽고 숨이 가빠진다. 즐거움 사라질까 걱정 괴로움 계속될까 근심 평온속 언제 고통올까 이 모든 집착없게 수행 그것만 해도 걱정인데 중병에 걸려 누워서 대소변을 받아내면 더 걱정일 것이다. 그녀는 아름답던 몸이 무너져 무덤으로 간다. 그 시체는 까마귀와 독수리가 와서 쪼아 먹거나 벌레가 와서 파먹는다.

짐승이 와서 반쯤 파먹다가 떠나면 창자와 피와 더러운 것이 드러난다. 나중에는 그것마저 없어지고 뼈만 하얗게 남는다. 그 뼈는 다시 흩어져 나뭇가지처럼 굴러다닌다. 그러다가 끝내는 그것마저 썩어서 흙이 된다.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육체가 저렇게 변한 것을 보게 되면 즐거움이 도리어 괴로움이 되고 만다. 이것을 알게 될 때 얼마나 걱정스럽겠는가.

느낌이란 어떤 상태에 대해 즐거움과 괴로움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집착하면 근심이 생긴다. 예를 들어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은 즐거운 듯하지만 그 즐거움을 잃을까 걱정이 되고, 맛이 없는 음식을 먹고 괴로운 느낌이 되면 그런 느낌이 계속될까 걱정이 된다.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상태에서는 언제 괴로움이 찾아올까 걱정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은 욕심과 육신과 느낌에 집착하면 그것이 큰 걱정이 되고 괴로움이 되는 줄 알고 그 집착을 버려야 한다. 그대들은 항상 이렇게 생각하고 고요한 곳에서 고요하게 명상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증일아함경〉 12권 삼보품(三寶品) 제9경


TV를 보면서 새삼 놀라는 것은 새로운 미인들의 출현이다.
어느 용궁에 숨어 있다가 왔을까 싶게 아름다운 미인의 등장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이 세상에 미인이 없어 쳐다볼 일이 없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반대로 월궁의 항아(姮娥)보다 아름답던 옛날의 미인들은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하면 왠지 쓸쓸한 생각이 든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화려한 청춘을 뽐내던 여배우들도 아줌마 역할만 맡는다. 얼마쯤 뒤에는 다시 어머니 역할, 그 다음은 할머니 역할로 넘어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는 소식도 없이 사라진다.
아, 슬프고 부질없는 인생이여.

             홍사성 불교방송 상무 * 용화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4-0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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