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부처님이야기─네 개의 문(2)

관리자 | 2006.04.12 11:50 | 조회 1041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어머니를 일찍 여윈 태자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깊은 사랑을 받았다. 이모인 마하파자파티는 그 뒤 왕자와 공주를 낳았지만 싯다르타에 대한 사랑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태자는 지나치게 총명하였고 무슨 일에고 열심이었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았다. 그에게는 보통 사람으로는 미칠 수 없는 어떤 비범한 힘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왕은 이따금 태자의 얼굴에서 쓸쓸하고 그늘진 표정을 보았고 그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이 세상을 떠나간 어머니를 그리워해서인가 싶으면 태자가 더욱 애처롭게 여겨졌다. 태자가 열 두 살 되던 해 봄, 슛도다나왕은 많은 신하를 거느리고 들에 나가 <농민의 날> 행사를 참관하게 되었다. 농업국인 카필라에서는 왕이 그 해 봄에 첫삽을 흙에 꽂음으로써 밭갈이가 시작되는 것이다. 어린 태자 싯다르타도 그 행사를 보기 위해 부왕을 따라 농부들이 사는 마을에까지 내려갔었다. 왕궁밖에 나가 구경해 보는 전원 풍경은 그지없이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농부들이 땀을 흘리며 일하는 것을 보자 그들의 처지가 자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생각했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고된 일을 하고 있는 농부들을 본 싯다르타의 어린 마음이 어두워졌다. 이렇게 조용히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쟁기 끝에 파헤쳐진 흙 속에서 벌레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 난데없이 새 한 마리가 날아들더니 그 벌레를 쪼아 물고 공중으로 날아갔다. 이 같은 광경을 보게 된 어린 싯다르타는 마음에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곳에 더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방금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서 일행을 떠나 숲으로 발길을 옮겼다. 숲속 깊숙이 들어가 큰 나무 아래 앉았다. 어린 태자의 가슴에는 형언할 수 없는 여러 갈래의 문제가 한꺼번에 뒤얽혔다. 태자의 눈에는 아직도 또렷하게 어른거리고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 뙤약볕 아래서 땀을 흘리며 일하던 농부들, 흙 속에서 나와 꿈틀거리던 벌레, 그 벌레를 물고 사라진 날짐승…. 이런 일들이 하나같이 어린 태자의 마음을 어둡게 했다. 「어째서 살아 있는 것들은 서로 먹고 먹히며 괴로운 삶을 이어가야만 할까? 무슨 이유로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괴로움으로 비쳤다. 산다는 것 자체가 어쩐지 괴로움만 같았다. 무슨 일에고 한번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 끝까지 파고드는 것이 소년 싯다르타의 성미였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다른 일은 모두 잊어버렸다. 행사가 끝나 왕을 모시고 궁중으로 돌아가려던 신하들은 그제서야 어린 태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태자를 잃어버린 왕과 신하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방으로 흩어져 여기저기 찾아 헤매던 끝에 큰 나무 아래 앉아 깊은 명상에 잠겨 있는 태자를 보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거룩하고 평화스러워 왕은 반가운 중에도 차마 불러 일으킬 수가 없었다. 왕은 조심스레 아들 곁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싯다르타, 이제 해도 저물었으니 그만 일어나 궁으로 돌아가자.』 태자는 그때서야 비로소 왕의 얼굴을 쳐다보고 나무 아래서 일어섰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그저 담담해 보일 뿐이었다. 이 일을 겪고 난 부왕의 마음은 무겁고 답답했다.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 명상에 잠긴 아들의 모습에서 문득 성자의 상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게도 생각됐지만 태자와 자기와는 먼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까왔다. 왕은 그동안 까맣게 잊었던 아시타 선인의 예언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린 동안에 어떻게든지 싯다르타의 마음을 돌이켜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지 않으면 태자는 영영 자기 곁을 떠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옛날부터 인도의 수행자들은 흰눈을 머리에 이고 하늘 높이 솟아 있는 히말라야를 멀리 바라보면서 명상에 잠기기를 즐겨 했다. 그들은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해 우거진 숲속과 나무 그늘 아래서 깊은 명상에 잠기거나 혹은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인도 사람들은 이와 같은 숲속의 수행자와 사상가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숭배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생계를 꾸려 나가다가도 틈만 있으면 숲속을 찾아가 성자들의 말씀을 들었다. 그러다가 아들이 나이가 차서 집안 일을 돌보게 되면 그들은 가정을 떠나 숲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들은 여생을 숲속의 수행자나 성자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 뜻있고 슬기로운 생활이라고 여겼다. 인도의 종교와 사상은 이처럼 히말라야가 바라보이는 대자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네 개의 문 싯다르타는 숲속에서 명상에 잠겼다가 돌아온 뒤부터 남의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서 홀로 깊은 생각에 잠기는 일이 잦았다. 싯다르타가 깊은 생각에 잠기는 일이 자주 일어날수록 슛도다나왕의 마음은 점점 어두워졌다. 왕은 그를 즐겁게 하여 홀로 사색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항상 마음을 썼다. 대신의 자녀들 중 같은 또래를 곁에 머물게 하여 그를 즐겁게 해 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싯다르타는 홀로 있고 싶어했다. 오랫동안 궁전 속에만 있던 싯다르타는 어느 날 문득 궁전밖에 나가 바람이나 쏘였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 뜻을 부왕에게 말씀드리자 왕은 기꺼이 허락해 주었다. 왕은 곧 화려한 수레를 마련하게 하는 한편 신하들에게 분부하여 태자가 이르는 곳마다 값진 향을 뿌리고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여 태자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도록 일렀다. 싯다르타를 태운 수레가 동쪽 성문을 막 벗어났을 때였다. 머리는 마른 풀처럼 빛이 바래고 몸은 그가 짚은 지팡이처럼 바짝 마른 노인이 숨을 헐떡거리면서 저쪽에서 오고 있었다. 화려한 궁중에서만 자란 태자는 일찍이 그와 같이 참혹한 노인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시종에게 물었다. 『왜 저 사람은 저토록 비참한 모양을 하고 있느냐?』 시종은 대답했다. 『사람이 늙으면 저렇게 됩니다 점점 나이를 먹으면 기운이 빠지고 숨이 차 헐떡거리게 되고, 눈이 어두워져 앞을 잘 못보게 되며, 이가 빠져 굳은 것은 먹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렇게 초라하게 되고 맙니다.』 이 말을 들은 태자의 마음에는 어두운 그늘이 스며 들었다. 「사람이 늙으면 누구나 저렇게 된다?」 싯다르타는 침통하게 혼잣말을 했다. 「그렇다면 나도 결국은 저와 같은 늙은이가 되겠구나!」 시종은 자신도 모르게 태자의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면 태자이건 시종이건 신분의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저런 노인의 모양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시종의 말을 듣고 난 태자는 한동안 멍하니 먼 하늘가를 바라보다가 힘없는 소리로, 『수레를 왕궁으로 돌려라!』 하고 일렀다. 모처럼의 소풍길에서 되돌아선 태자의 마음에는 또 한 점의 어둠이 덮히게 된 것이다. 싯다르타의 번민하는 모습을 본 부왕은 아시타 선인의 예언대로 싯다르타가 혹시 출가를 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걱정을 했다. 그리하여 태자의 생활이 전보다 한층 더 호화롭고 기쁨에 차도록 마음을 썼다. 그 뒤 어느 날 태자는 또 답답한 궁중을 벗어나 자연을 즐기려고 했다. 왕은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려, 이번에는 길가에 궂은 것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도록 단단히 당부를 해 놓았다. 수레는 남쪽 성문 밖으로 나갔다. 얼마쯤 가다 보니 길가에 누더기를 뒤집어 쓴채 쓰러져 신음하는 사람이 있었다. 얼굴은 파리하고 팔다리는 뼈만 앙상했다. 싯다르타는 수레를 멈추게 하고 시종에게 물었다. 『저이는 웬 사람인가?』 시종은 지난번 일도 있고 해서 꺼림칙한 생각이 들었지만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사람은 지금 병에 걸려 앓고 있습니다. 이 육신을 가진 사람은 한평생을 사는 동안 전혀 앓지 않고 지낼 수는 없습니다. 앓는다는 것은 몹시 괴로운 일입니다. 저 사람은 지금 아픔을 못이겨 신음하고 있는 중입니다.』 태자는 그 자리에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람은 왜 병에 걸려 고통을 받아야만 할까? 늙음의 고통이나 질병의 고통은 왜 생기는 것일까? 그러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그날도 태자는 도중에서 돌아오고 말았다. 날씨는 맑게 개어 화창했지만 태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병들어 빛이 바래 보였다. 또 어느 날 싯다르타는 서쪽 성문을 벗어나 들로 나갔다. 수레를 끌고 달리는 말처럼 오늘만은 어쩐지 그의 마음도 가벼웠다. 태자의 수레가 들길을 지나 인적이 드문 고요한 숲에 이르렀다. 바로 그때, 죽은 시체를 앞세우고 슬피 울며 지나가는 행렬과 마주치게 되었다. 깜짝 놀란 싯다르타는 시종에게 물었다. 『저건 무엇이냐?』 시체인 줄 뻔히 알고 있는 시종은 태자의 반응이 두려워 입을 열지 못했다. 태자는 성급하게 다시 물었다. 『죽은 사람이올시다. 죽음이란 생명이 끊어지고 영혼이 육체에서 떠나가는 것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이별을 가져다 주는 가장 슬픈 일입니다.』 싯다르타는 자기 자신의 죽음을 본 것처럼 가슴이 내려앉았다. 지금 자기는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 죽음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해가 기운 뒤에야 수레가 돌아오는 걸 보고 부왕은 흐뭇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수레가 가까이 다다랐을 때 싯다르타의 얼굴은 비참하게 그늘져 있었다. 이날부터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욱 잦게 되었다. 며칠 뒤 싯다르타는 북쪽문을 거쳐 밖으로 나갔다. 북쪽 정문을 나서자 우람한 수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숲속으로 난 오솔길로 텁수룩한 머리에 다 해진 누더기를 걸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옷은 비록 남루하지만 걸음걸이는 의젓했고 얼굴에는 거룩한 기품이 감돌며 눈매가 빛났다. 수레 가까이 온 그 사람은 태자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도 의젓했으므로 태자는 자신도 모르게 수레에서 내려 그에게 머리를 숙였다. 『당신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 사람은 낭랑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나는 출가 사문이오.』 출가 사문(出家沙門)이란 세상의 모든 일을 버리고 집을 나와 도를 닦는 수행자를 말한다. 싯다르타는 다시 물었다. 『출가한 사문에게는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나는 일찍이 세상에서 늙음의 질병과 죽음의 질병과 죽음의 고통을 자신과 이웃을 통해 맛보았소. 그리고 모든 것이 덧없다는 것을 알았소. 그래서 부모와 형제를 이별하고 집을 떠나, 고요한 곳에서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수도를 했소. 내가 가는 길은 세속에 물들지 않는 평안의 길이오. 나는 이제 그 길에 이르러 영원한 평안을 얻었소.』 이 말을 남기고 사문은 태자의 곁을 떠나 휘적휘적 가버렸다. 사문의 말을 듣고 난 싯다르타의 가슴에는 시원한 강물이 흐르는 듯했다. 그의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맺혔다. 사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태자의 마음에 무엇인가 굳은 결심이 생겼다.    * 용화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4-07 14:09)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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