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부처님이야기─삶에 대한 회의(3)

관리자 | 2006.04.12 11:53 | 조회 1179
     삶에 대한 회의 슛도다나왕은 태자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가리지를 않았다. 태자에게는 어떤 괴로움이나 불편도 주지 않으려고 했다. 부처님은 뒷날 태자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호사스런 나날을 보냈었다. 아버지의 왕궁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빛깔의 연꽃이 피어 있었다. 그런 것들은 모두가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나는 카시 지방에서 나는 향밖에는 쓰지 않았다. 내가 입던 옷감도 역시 카시산이었다. 내가 밖으로 나갈 때는 언제나 양산을 들어주는 시종이 따랐다. 게다가 나는 겨울과 여름과 장마철에 따라 그때그때 편리하도록 꾸며진 궁전을 세 채나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장마철에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태자 시절이 얼마나 호사스러웠던가를 넉넉히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한번 깊이 품은 인생에 대한 회의는 그런 호사와 즐거움으로도 어떻게 메꾸어질 수 없었다. 쾌락이 지나간 다음에 스며드는 허전함을 맛볼 때마다 태자의 회의는 더욱 깊어질 뿐이었다. 출가한 사문(沙門)을 만난 뒤부터 태자는 더욱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왕은 태자의 관심을 다른 데로 쏠리게 하기 위해 이제부터는 태자에게 심오한 학문을 가르치기로 했다. 슛도다나왕은 나라에서 가장 학식이 뛰어난 비슈바미트라라는 학자를 모셔다 태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태자에게 글을 가르치던 첫날, 그 스승은 태자의 총명을 보고 놀랐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왕자들을 가르쳐 보았지만 싯다르타처럼 뛰어난 천재는 일찍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자는 인도의 가장 오래된 고전인 베다 성전을 줄줄 욀 만큼 기억력도 비상했다. 스승 비슈바미트라가 알고 있는 깊은 학문도 오래지 않아 거의 다 배우게 됐다. 싯다르타의 학문은 나날이 깊어 갔다. 슛도다나왕은 스승을 불러 나라의 임금으로서 필요한 제왕(帝王)의 길도 가르쳐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크샨키데바라는 군사학의 대가를 불러 무예와 병법도 가르쳤다. 태자는 다른 학문에 못지않게 무예와 병법에도 뛰어난 소질을 갖추고 있었다. 그에게는 처음 배우는 지식이라 모두가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므로 새것을 알고 싶어하는 소년다운 호기심으로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스승으로부터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왕은 몹시 기뻐했다. 이 세상에서 견줄 데 없이 총명한 태자가 다른 길을 걸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자기 왕위를 이어받아 카필라를 잘 다스려 주기만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러나 부왕의 안심은 오래 가지 못했다. 글을 배워 지식이 넓어져 감에 따라 태자는 회의가 없어지기는커녕 더욱 깊어져 가는 것이었다. 깊은 학문을 쌓은 태자는 학문이란 한낱 지식을 넓혀줄 뿐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무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어째서 늙고, 병들어 죽어 가는가? 무엇 때문에 태어나는 것일까? 이런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책에서도 어떠한 학문에서도 해답을 주고 있지 않았다. 태자는 이와 같은 인생의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학문을 끝까지 좋아할 수가 없었다. 어디엔가 자신의 의문을 풀어 줄 수 있는 길이 있을 것만같이 생각되었다. 이제 싯다르타는 스승으로부터 더 이상 배울 만한 새로운 학문이 없음을 알았다. 스승도 역시 그 이상 가르쳐 줄 것이 없다고 떠나가 버렸다. 결국 태자는 또다시 깊은 명상에 잠기게 되었다. 다시 불안해진 슛도다나왕은 어떻게 하면 태자의 마음을 궁중에 붙잡아 둘 수 있을까 하고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아름다운 아가씨와 결혼을 시키는 일이다. 아름다운 여성이 태자의 아내가 되어 곁에 있으면 명상에 잠길 겨를도 출가하여 사문이 되려는 생각도 없어지고 말 것이라고 믿었다. 결 혼 싯다르타가 열 아홉 살이 되자 부왕은 서둘러 태자비를 물색하기로 했다. 태자는 결혼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부왕의 간곡한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다. 한편 부왕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부왕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가문 좋고 아름답고 슬기로운 규수를 물색한 끝에 같은 사캬족 대신의 딸 야쇼다라를 태자비로 정했지만, 싯다르타에게는 결혼이라는 것이 전혀 남의 일 같아서 좀처럼 실감이 들지 않았다. 태자는 결혼한 다음에도 여전히 사색에 잠기거나 침울한 생각에 빠질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슬기로운 야쇼다라는 보다 상냥하게 태자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 정성을 다했다. 그러나 행복해야만 할 싯다르타는 날이 갈수록 무엇엔가 마음을 잃은 듯 침울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잦았다. 수많은 궁녀들이 그의 둘레에 몰려들어 춤과 노래로 위로하려 했지만 그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은 생각만은 아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싯다르타 역시 쾌락의 재미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쾌락 뒤의 공허를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이 언제까지나 영원히 살 수 있고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행복하다면, 그도 역시 마음놓고 쾌락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태자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인생의 덧없음을 몸소 겪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싯다르타의 눈을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로 돌리게 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살아 있다고 하지만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죽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젊고 아름다운 사람을 볼 때마다 싯다르타의 눈에는 그가 늙었을 때의 추해진 모습이 문득 떠오르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그런 생각을 잠재우려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는 혼자서 인생의 근원적인 병을 앓고 있었다. 아내인 야쇼다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가 뒷날 부처님이 되었을 때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이 병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앓는 사람을 보면 누구나 싫어서 피해 버린다. 그러나 나는 지금 앓고 있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앓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병든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또 어리석은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신이 늙어가고 있음을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늙은 사람을 보면 싫어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노인을 싫어하지 않는다. 」 싯다르타는 그때 젊음 속에서도 늙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병들어 앓다가 죽어 가는 모습도 보았다. 괴로움을 짊어지고 시시각각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깊은 사색 속에서 역력히 보았던 것이다. 태자의 기억 속에는 또다시 전에 성문 밖에서 만났던 사문의 모습이 떠올랐다. 문득 그 사문을 다시 만나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 무렵 싯다르타는 야쇼다라가 곁에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자주 명상에 잠겼었다. 결혼 생활도 태자의 마음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싯다르타의 나이 스물 아홉이 되었다. 야쇼다라와 결혼한 지도 벌써 십년이 지났다. 어느 날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결혼 때문에 출가가 십년은 늦어 졌구나. 이러다가는 몇 해가 더 늦어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지금 자꾸 늙으며 죽음으로 점점 가까이 가고 있는데….」 싯다르타의 마음은 갑자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살다 죽는다면 아무런 보람도 없으리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그에 앞에는 하나의 길이 훤히 열렸다. 그 순간 싯다르타는 혼자서 외쳤다. 「그렇다! 나도 출가 사문의 길을 찾아 나서자. 」 마침내 싯다르타의 마음에 출가 결심이 서게 되었다. 이제는 누가 뭐라고 말린다 할지라도 자기는 출가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굳게 결심했다.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니 지금까지 괴로웠던 번민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 이미 출가를 결심한 싯다르타는 이제 남은 것은 시기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 자기가 떠나버린 뒤의 일들을 생각하니 한가닥 불안이 잇따랐다. 「부왕의 실망이 얼마나 클 것인가. 다행히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에게서 태어난 동생이 있으니 왕위를 계승하는 문제는 걱정이 없다. 그러나 내가 출가해 버린 걸 아신 부왕은 얼마나 애통해 할 것인가. 그리고 아내 야쇼다라는 또 얼마나 슬퍼할 것인가. 」 이런 생각 때문에 싯다르타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후일 부처님은 이때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아직 젊은 청년으로서 머리는 검고 청춘의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 앞에는 영화로운 임금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영원한 진리를 찾아 부모와 아내가 눈물로써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인생의 봄을 등졌던 것이다. 나는 왕궁을 빠져나와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은 후 출가 사문의 길을 떠났었다. 」 그때 싯다르타의 심경을 짐작케 하는 말이다. 한편 슛도다나왕은 아시타 선인의 예언이 다만 예언으로 끝나 주기를 바랐다. 자기의 왕위를 이어받아 훌륭한 임금이 되어 주기만을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태자의 이름을, 모든 소원을 이루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싯다르타라고 지은 것도 그러한 왕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랐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할 것을 결심한 태자는 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부왕 앞에 나타났다. 『저는 아무래도 사문의 길을 가야겠습니다. 저에게 출가를 허락해 주십시오. 』 이 말을 듣는 순간 왕은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아들의 뜻을 돌려보려고 했다. 『사랑하는 태자, 무슨 소원이든지 다 들어 줄 터이니 제발 출가할 뜻만은 버려다오. 』 『그러시다면 저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 『오, 그 소원이란 대체 무엇이냐? 』 『이 소원만 이루어 주신다면 저는 출가의 뜻을 버리겠습니다. 』 슛도다나왕의 얼굴에는 밝은 빛이 스쳤다. 『어서 그 소원을 말해 보아라. 』 왕의 표정과는 달리 싯다르타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나직하면서도 힘있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제 소원은 죽음을 뛰어넘는 일입니다. 늙고 죽어가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다면 저는 이 자리에서 출가의 뜻을 버리겠습니다. 』 이 말에 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나 태자의 너무도 진지하고 슬픈 표정을 보자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모든 소원을 다 들어주겠다던 왕도 그러한 태자의 소원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국왕인 자신도 늙음과 죽음 앞에서만은 너무도 무력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 것이다. 마음의 준비도 굳게 되었고 왕에게도 출가의 결심을 알린 뒤라 싯다르타는 이제 왕궁을 떠날 기회만을 찾고 있었다. 태자는 아내 야쇼다라와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에게는 출가의 결심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미리 알려 줌으로써 연약한 여인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 이 무렵 궁전 안에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야쇼다라가 아들을 낳은 것이다. 슛도다나왕은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곧 분부를 내려 큰 잔치를 베풀고 왕손의 탄생을 축하하도록 했다. 그런데 정작 이 경사를 기뻐해야할 싯다르타는 이날 따라 그 자취가 보이지 않았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릴 무렵에야 그는 궁전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날도 숲속에 들어가 온종일 혼자 명상에 잠기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궁전 앞에 이르러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즐거워하는 광경을 보자 비로소 궁중에 경사가 일어난 줄을 알았다. 자기에게 아들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싯다르타는 「오, 라훌라! 」하고 탄식했다. 라훌라는 장애(障碍)라는 뜻이다. 자기의 갈 길을 막는 존재라는 말이다. 그를 얽어 맬 인정이 또 하나 태어났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얼마나 괴로웠기에 자기 아들의 탄생을 보고 라훌라라고 했을까. 이때 태자가 탄식한 말은 그대로 어린아이의 이름이 되고 말았다.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라훌라라고 탄식을 했지만 한편 이제야말로 기회가 왔다고 결심했다. 왜냐하면 그때 인도의 풍습으로는 대를 이을 후계자가 있어야 출가가 떳떳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 용화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4-07 14:09)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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