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부처님이야기─대열반에 들다(23)

관리자 | 2007.04.09 10:28 | 조회 1040
대열반에 들다 "아란아, 머리를 북쪽으로 하고 얼굴을 서쪽으로 향하게 해다오. 왜냐하면 내 법은 널리 퍼져 북쪽 지방에서 오래 머물 것이다." 이때 부처님은 승가리를 네 단으로 접어 오른쪽 옆구리를 고이시고 마치 사자처럼 다리를 포개고 누우셨다. 사라수의 모든 귀신들이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꽃 공양을 올렸다. "아란아, 사라수의 신들이 때아닌 꽃으로 내게 공양했다. 그러나 그것은 여래를 공양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어떤 것을 여래를 공양하는 것이라 합니까?" "아란아, 사람들이 스스로 법을 받아 법답게 행동하는 것을 여래를 공양하는 것이라고 한다." 고 하시면서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부처가 사라쌍수 사이에 고요한 마음으로 누워 있으니, 나무 신들이 청정한 마음으로 꽃비를 내리네. 아란이 나에게 물었나니, 어떤 것을 참된 공양이라 말하는가? 법을 법답게 받아 법답게 실천하여 깨달음의 꽃이 필 때 공양이라 하노라. 수레바퀴만한 아름다운 꽃을 부처에게 뿌린다해도 그것만으론 공양이라 할 수 없나니 5온 18계 12입처(五蘊十八界十二處)에 '나'없음을 깨닫는 것 이것을 최상의 공양이라 말한다. 너희들 비구들아. 게으르지 말라. 나는 게으르지 않음으로 스스로 바른 깨달음을 얻었다. 한량없이 많은 선행(善行)도 역시 게으르지 않음으로 얻을 수 있다. 일체 만물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란 없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다." 이렇게 하여 부처님의 한평생이 대단원을 거두시게 되었다. 이날이 음력 2월 보름날 한밤중이었다. 우리는 이날을 열반재일이라 말한다. 부처님께서 대열반에 드시고서도 7일이 되도록 다비(화장)를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다비를 할려고 해도 불이 붙여지지를 않았다.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기자 천안제일 아나율(아니룻다) 존자가 말하였다. "부처님의 상수제자 대가섭이 500명을 거느리고 지금 파파국에서 오는 길이다. 부처님을 다비하기 전에 뵙고자하기 때문에 불이 붙지 않는 것이다." 구시나가라를 향하여 오는 대가섭이 길에서 니건타의 한 제자를 만났다. 그는 만다라꽃을 들고 있었다. 대가섭은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오고 있는가?" "구시나가라성에서 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스승을 알고 있겠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스승님의 안부는 어떠하시던가?" "이미 대열반에 드신 지 7일이 되었습니다. 이 꽃은 바로 그 곳에서 얻은 것입니다." 대가섭을 비롯한 모든 비구들이 슬픔에 빠져 울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비탄에 빠져 울고 있는데 석가족 출신의 비구인 발란타가 대중을 향하여 말했다. "모든 비구들아, 슬퍼하지 마라. 부처님이 계실 때는 법과 계율이 엄중하여 '이것이 법이 아니라. 이것은 옳지 않다. 이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항상 잔소리가 많았지만 이제 그 늙은이가 가셨으니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되었으므로 기쁘지 않느냐? 이제 부터 나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것이다." 대가섭은 깜짝 놀랐으나 지체하지 않고 대중과 함께 급히 구시나가라의 사라숲으로 달려갔다. 대가섭은 다비하기 전에 부처님의 사리(舍利)를 볼 수 있느냐고 아란에게 물었으나 이미 다비준비를 모두 마쳤으므로 뵐 수가 없다고 거절하였다. 세 번씩이나 간청하였으나 같은 이유로 거절하였다. 이때 대가섭이 다비준비가 되어 있는곳으로 다가갔다. 다비 준비가 되어 있는 관속에서 부처님의 두 발이 밖으로 나왔다. 가섭이 부처님 발아래 예배를 마치고 다비에 들어갔다. 그렇게도 불을 붙일 수가 없던 나무가 오히려 너무 강하게 타올라 걱정이 되었다. 관밖으로 부처님께서 발을 내민 것은 선가(禪家)에서는 부처님께서 말씀없이 대가섭에게 마음을 전한 것이라 하여 '곽시쌍부'(槨示雙趺)라고 부른다. 이때 파파국의 말라유족들이 부처님의 사리(유골)를 모셔다가 자기들 땅에 탑을 세우고 공양해야 한다고 군사와 사신을 보내어 구시나가라 성주에게 말했다. "거룩하신 부처님께서 이곳에 오셔서 대열반에 드셨다고 들었다. 그분은 우리들의 스승이셨다. 존경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여기와서 그 사리의 분배를 요구하니 우리 본국에도 탑을 세울 수 있게 하시오." 그러나 구시나가라 성주는 이를 거절하였다. "진실로 당신들의 말은 옳다. 그러나 세존은 이 땅에 오셔서 대열반에 드셨다. 그러므로 이 땅의 백성들이 마땅이 공양올려야 할 것이다. 멀리서 오느라 수고하였으나 사리의 분배는 할 수가 없다." 사리의 분배를 요청하러 차라파국의 발리족, 나마가국의 구리족, 비리제국의 바라문족, 카필라국의 석가족, 베사리국의 리차비족, 마가다국의 아사세왕도 구시나가라성으로 군사를 이끌고 왔다. 마가다국의 아사세왕은 향성(香姓:dona) 바라문을 통하여 말을 전했다. "우리는 이웃나라에 있으면서 의리를 지키고 서로 화목하여 아직 다툰 일이 없었다. 우리는 부처님께서 그대의 나라에서 대열반에 드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직 위없이 높으신 어른은 우리가 하늘처럼 받드는 어른이셨다. 그러므로 멀리와서 사리의 분배를 요청하는 것은 나의 나라에도 탑을 세워 공양하고자 함이다. 그렇게 하면 그대 나라와 보물을 같이 나누리라." 그러나 구시나가라성의 말라유족들은 향성에게 거절의 뜻을 밝혔다. 이때 여러나라의 왕들이 모여서 의논하였다. "우리들은 평화로운 회의로서 멀리와 머리숙여 절하면서 겸손한 말로 분배를 청했는데, 만일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군사가 여기 있으니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으리라. 만약 의롭게 얻지 못한다면 힘으로 빼앗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구시나가라성에서도 회의를 하고 대답하였다. "그대들이 수고롭게 멀리서 와 욕되게 머리숙여 예배하며 말하지만 부처님께서 남기신 사리는 감히 허락할 수 없다. 당신들이 군사를 동원한다면 우리 또한 군사가 있으니 목숨 다해 싸울 것이니 두려울 것이 없다." 곧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았다. 부처님의 사리를 얻기 위하여 피흘리는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으므로 향성 바라문이 모두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오랫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입으로 가르침을 외우며 마음으로 자비로운 가르침에 감복하는 것은 모든 중생들이 항상 안락하게 하시려 하였기 때문입니다. 어찌 부처님의 사리를 얻기 위하여 전쟁을 벌여 서로 죽일 수가 있겠는가?" 부처님께서 사리를 남기심도 널리 이익케하고자 하심이니 사리를 있는대로 나누어 가져야 한다. 이러한 제의에 따라 사리를 골고루 8등분으로 나누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그 일을 향성 바라문이 하였다. 이렇게 하여 8나라가 사리를 분배하여 갔고, 향성 바라문은 사리를 담았던 항아리를 가지고 갔으며, 필발촌 사람들은 화장터의 잿더미를 가지고 갔고, 생존시의 머리털을 가지고 탑을 세우기도 하니, 11개의 탑이 되었다. 그러므로 대열반에 드시고 나서 다시 제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경전 편찬작업을 하였다. 대가섭을 상수제자로 하여 아란이 경을 암송하고, 우바리존자가 율을 암송하는 형식으로 결집(結集)하였다. 이것이 최초의 경전편찬이며 결집(結集)이라 부른다. 이때 마가다국의 아사세왕의 도움을 받아 제일결집이 이루어졌다. 처음으로 결집된 경전을 흔히 아함경이라 한다. 아함이란 아가마(Agama)의 음역으로 '전통의 교의'(敎義) 또는 '가까이 다가가는 것' 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에 접근해가는 교의를 뜻하고 있다. 한역된 것으로 장아함경 22권, 중아함경 60권(222경), 잡아함경 50권(1362경), 증일아함경 51권이 있다. 그리고 잡아함경의 별역본이 있다. 별역본은 16권(364경)이 전해오고 있다. -불교근본교설 中 부처님생애,  마침- * 용화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4-07 14:09)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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