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식/교리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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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성염불을 해야하는가?

관리자 | 2008.08.17 05:05 | 조회 1475
      염불 소리에 숨겨진 비밀 - 왜 고성염불을 해야하는가?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칭명(稱名)과 부처님을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염불(念佛)은 원래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칭명과 염불을 구별하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염불이라고 하면, 아미타불의 본원력(本願力)에 의지하여 오직 일심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는 것을 말한다. 이 염불수행은 원래 정토종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선사상(禪思想)과 결합하여 새로운 염불관(念佛觀)이 형성되었다. 즉 선과 정토가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적 접목으로 선가(禪家)에서는 자성미타(自性彌陀)와 유심정토(唯心淨土)를 부르짖게 되었다. 이러한 염불관을 조선시대의 청허 선사(淸虛禪師)도 그대로 계승하였다. 청허 선사는 그의 저서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윤회를 벗어나는 첩경이다. 그러므로 염불하는 자가 마음으로는 아미타불의 경계를
      생각하여서 잊지 말며, 입으로는 아미타불의 명호를
      칭송하여서 분명하게 흩어지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서로 상응하는 것을 염불이라고 이름한다.”라고 했다. 이어서 “아미타불은 시방삼세에 제일인 부처님의 명호이다. 이는 인행시(因行時)에 법장(法藏) 비구로서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앞에서 48대원을 세우면서 ‘내가 부처를 이룰 때에 시방에 한량없는 세계의 인천들이 나의 명호를 열번만 불러도 반드시 나의 극락세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전통에 의해 선을 표방하고 있던 한국의 사찰에서도 조석으로 장엄염불을 염송했다. 이 장엄염불 가운데 고성염불십종공덕이 나온다. 큰 소리로 염불하면 열가지 공덕을 얻을수 있다는 말이다. 열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는 능히 잠을 없애주는 공덕이있다. 수면(睡眠)은 잠이다. 불교에서는 수면을 본능적 번뇌의 일면으로 보고 있다. 즉 수면은 업력의 소산에 의한 습관인 것이다. 그러므로 수면이 지나치면 불성 계발의 장애물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염불을 하면 수면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밝은 각성이 고조되고 수면이 적어짐으로써 정신 활동을 고조할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고성염불의 첫 번째 공덕이다. 둘째는 천마가 놀래고 두려워하는 공덕이 있다. 마(魔)는 마라-빠삐마라는 범어의 줄인 음역이다. ‘마라’는 ‘죽이는 것’, ‘죽게끔 하는 것’을 말하고, ‘빠삐마’는 ‘악(惡)’이라 번역한다. 그러므로 마라-빠삐마는 생명을 죽게 하고 악을 조장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선가(禪家)에서는 ‘마라’를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번뇌로 보고 있다. 큰 소리로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얻는다. 이 때에는 온갖 번뇌가 사라진다. 즉 마음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번뇌, 즉 마라가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일러 ‘천마가 놀래고 두려워한다’고 표현한 것이다. 셋째는 염불 소리가 온 시방에 두루 퍼지는 공덕이 있다. 일체의 염불은 묘음(妙音)이다. 따라서 염불의 소리는 자신의 수많은 신경과 세포에 진자(震子) 운동을 시킬 뿐만 아니라, 공간을 진동시켜 기를 맑게 해주고 다른 사람에게도 음파의 전달로 감동을 주고 마음을 가라앉게 해준다. 넷째는 삼도의 고통을 쉬게 하는 공덕이 있다. 삼도(三途)란 지옥·아귀·축생을 말한다. 삼도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이것이 표출될 때 괴로움으로 가득 차게 된다. 하지만 염불은 불을 끄고 화를 가라앉히고 응어리를 삭게 하는 소염제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마음으로 생각하고 큰 소리로 외우면 참회와 서원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삼도의 고통이 사라지게 된다. 다섯째는 다른 소리가 들어오지 않는 공덕이 있다. 염불 시에는 입으로는 큰 소리로 칭명하지만 귀로는 자신의 소리를 관(觀)하게 된다. 그러면 외부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마음이 집중된다. 이러한 원리로 큰 소리로 염불하면 그 사람의 귀에는 염불 소리밖에 다른 소리가 들어오지 않는다. 여섯째는 염불하는 마음이 흩어지지 않는 공덕이 있다. 큰 소리로 염불하면 염심(念心)이 흩어지지 않는다. 생각 생각이 떠나지 않는 마음(念念不離心)’, ‘ 생각 생각이 이어지는 마음(念念相續心)’이 염불이다. 앞서 말한 바깥 소리〔外聲〕가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일도경(一道境)에 든다면 그는 반드시 염심이 흩어지지 않아 삼매(三昧)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일곱째는 용맹 정진하는 공덕이 있다. 일념으로 염불을 꾸준히 매일매일 반복하다 보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마음이 생겨 더욱 정진하고자 하는 용기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용맹정진으로 궁극의 목적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여덟째는 모든 부처님이 기뻐하시는 공덕이 있다. 부처님을 일념으로 생각하며 그 명호를 부르는데 어찌 불보살이 기뻐하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이 일심으로 부처님을 칭명하면 모든 부처님이 기뻐하시겠지만, 실제는 염불하는 자신의 마음이 순일(純一)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느끼게 된다. 염불을 하는 동안에는 자기 자신이 곧 부처가 되기 때문이다. 아홉째는 삼매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공덕이 있다. 삼매는 무명이 없어지고 맑고 밝은 마음이 또렷또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삼매는 세 가지가 어두워진다는 것이다. 즉 탐(貪)·진(嗔)·치(癡) 삼독심(三毒心)이 잠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탐심이 자면 베푸는 마음이 생기고, 진심(嗔心)이 자면 자비심이 생기고, 치심(癡心)이 자면 선정과 지혜가 생긴다. 열째는 정토(淨土)에 가서 태어나는 공덕이 있다. 염불 수행자가 목숨을 마친 뒤 정토에 태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염불 수행자는 아미타불의 본원력(本願力)에 의해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앙은 타력적이다. 그러나 불교의 자력신앙과 타력신앙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설한 방법의 차이에 불과할 뿐, 이 둘은 같은 것이다. 오직 일념으로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그 이치를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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