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식/교리문답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간경수행의 의미와 원리

관리자 | 2007.08.15 10:43 | 조회 1161

간경수행의 의미 !! 간경은 경전을 읽고 듣고 옮겨쓰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두루 익힘으로써, 수행자로 하여금 마음 에서 허물이 생기는 것을 막아줄 뿐 아니라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수행법이다. 즉, 간경은 경전을 통해 불법을 공부하는 것으로, 생각으로 만 부처님의 말씀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통해 그 말씀이 몸과 마음에 배도록 하는 수행인 것이다. 따라서 간경수행자는 진리를 익혀, 안으로는 끊임없이 마음 을 향하고 밖으로는 끊임없이 행실을 가다듬도록 해야 한다. 이에 선가구감에서는 “경을 보면서 마음 속을 향해 공부하지 않는다면, 만 권의 글을 모두 보아도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경을 보면서 마음으로 살피지 않는다면 어디 이익이 없는 데만 그치겠는가? 필경 사견과 아만을 키우고 마음을 번거롭게 하는 마구니가 될 것이다. 육조께서는 법달이 문구 외우는데만 급급하여 헐떡거릴 뿐 번뇌와 망상의 분별심을 쉬지 못함을 보시고 참 독경이란 경 의 뜻이 마음 가운데 명백하게 드러나 있는 것을 말하며 이렇 게 마음을 밝히어 성품을 보는 것을 보살이라 하였다. 또한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면 이것이 경을 굴리는 것 이지만,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지 못하면 이것은 경에 게 굴림을 받는 것이하 하였다. 마음이 미하면 법화가 굴리고 마음을 깨달으면 법화를 굴리나니 오래 읽어도 밝히지 못하면 경 뜻과 원수 되리라. 생각이 있으면 생각이 삿되니 유무를 다 안따지면 백우거(일불승) 길이 놀리라. 수행을 위한 간경을 특히 전경(轉經)이라고 하여 법을 굴린 다고 하는데, 경전을 읽고 그 뜻을 마음으로 깨달으면 경을 굴리는 것이 되는 것이다. 지식을 쫒아 헐떡이는 마음을 쉬고 사구게 하나라도 마음 가운데 깊이 새기고 몸소 실천하여 깊은 뜻을 스스로 체득하여야 참다운 간경수행이라 할 것이다. - 불교교리상식 - 간경수행의 원리 !! 모든 불교수행의 목적이 깨달음에 있듯이 간경수행의 목적 도 불법의 이치를 깨달아 성불하는데 있다. 그러나 진리란 말로써 전해질 수 없거니와 언설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거늘 어떻게 언어를 통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러나 경전은 일반적인 글이 아니다. 바로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것이니 부처님은 언설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자리를 다시 중생의 근기에 맞게 언설로 표현한 분이다. 그러므로 모든 깨달은 분 중에서 가장 위대한 분이 바로 부처 님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경전 속에서 부처님의 마음을 알아 내는 것이 간경수행의 원리이다. 문 : 많이 듣고 널리 읽으며 배워 익히고 기억해 가지며, 또한 글뜻을 따라 궁구하는 등으로 어찌 견성할 수 있으리오. 답 : 만일 말을 따라 견해를 내고 글과 함께 알음알이를 지으며, 언전(言詮)에 집착하여 지취(旨趣)를 잊고 교(敎)를 좇아 마음 을 미해 손가락과 달을 분간치 못한다면 곧 성품을 보기 어려 우려니와, 그렇지 않고 말을 인하여 도를 깨닫고 교를 빌려서 종지(宗旨) 를 밝히며, 지혜롭게 언전에 들어 깊이 부처님의 뜻을 탐구한다 면 실로 다문(多聞)에 나아가 보장(寶藏)을 이루며 적학(積學) 으로써 또한 지혜의 바다를 삼을 것이니, 범부로 좇아 성인에 듦이 모두가 현학(玄學)의 힘을 인함이요, 위태한 곳에 처하여 평안함을 얻음이 다 묘음(妙旨)의 공(功) 으로 도운 것이다. 말이란 도에 드는 계단이요, 교는 사정(邪正)을 가려내는 먹줄 이니, 그러므로 <화엄경>에 이르기를 “중생을 제도하여 열반 에 머물게 하려 한다면 반드시 무장애해탈지를 떠나지 말 것이 니, 이 무장애해탈지는 일체법여실각(一切法如實覺)을 떠나지 않았으며, 일체법여실각은 무행무생행혜광을 떠나지 않았고, 무행무생행혜광은 선선교결정관찰지(禪善巧決定觀察智)를 떠 나지 않았으며, 선선교결정관찰지는 선교다문(善巧多聞)을 떠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살이 이와 같이 관찰해서 요지(了知)한다면 정법(正法)을 더 욱 배로 하여 부지런히 닦아 익힘을 구할 것이니, 종일을 언제 나 법문 듣기를, 법에 기뻐하기를, 법을 즐기기를, 법에 의지하 기를, 법에 따르기를, 법을 알기를, 법에 순하기를, 법에 도달 하기를, 법에 머물기를, 법을 실행하기를 발원할 것이다. 보살은 이와 같이 부지런히 불법을 구해서 있는 바 온갖 재물을 아낌이 없고 또한 따로 귀중하고 얻기 어려운 물건이 있음을 보지 않으며, 다만 오직 불법을 선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할까 근심하는 것이다” 하였다. 또 <법화경>에서 “만일 근기가 날카롭고 지혜가 명료한 사람에 게라면 다문강식(多聞强識)이라도 그를 위해 설할 수 있으리 라”하신 말씀을 論에 해설하기를 “지혜가 있으나 다문함이 없으 면 곧 실상을 알지 못할 것이니, 비유하면 캄캄한 곳에서 눈은 있으되 볼 수 없는 것과 같고, 다문하나 지혜가 없다면 또한 실상을 알지 못하리니, 흡사 밝은 데서 다시 등불까지 있으 나 눈이 없어 못보는 것과 같다. 또한 많이 듣기도 하고 겸하여 지혜도 맹리(猛利)하면 곧 가르친 바를 능히 받아 지닐 수 있으 려니와, 그러나 들음도 없고 지혜도 없다면 이를 일러 사람몸이 소와 같다고 하는 것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원교(圓敎)의 이품(二品)엔 선관(禪觀)에 겸하여 독 송하기를 권하였으니, 이것은 위(位)에 거하여 물러나지 않으 면 비로소 듣는 법에 싫어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로 듣는다면 관력(觀力)을 돕게 되고 바로 배우면 종지(宗旨)의 공(功)을 이루는 것인데, 일부러 소나 양 같은 눈을 지어서 방향을 가리지 못하고 또한 어리석고 고지식한 마음에 처하여 숙맥(菽麥)을 분간치 못해서야 되겠는가. <만선동귀집, 제2장> 간경수행을 통해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가. 그 핵심은 경전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다. 경전을 지식을 쌓 는 수단으로 대하느냐 부처님이 직접 나에게 설법하고 계신다 고 생각하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경전을 지식을 쌓는 수단으로 여긴다면 경전을 보는 것이 오 히려 아만을 쌓고 무수한 시비분별을 일으키는 또하나의 장 애가 될 뿐이다. 그러나 부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한말씀 한말씀을 허투로 듣지 않으며 언제나 마음으로 잊지 않고 생 각하여 몸으로 익히는 중에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긴 까닭 이 무엇일까.하고 부처님의 참뜻을 이해하고자 하는 한가닥 진실한 의문을 가슴에 담고 몸과 입과 생각으로 언제나 오로 지 하다보면 문득 부처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와 닿는 날이 올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깨달아 가다보면 드디어 모든 이치가 밝아지 고 번뇌업장이 눈 녹듯 사라지고 밝은 지혜가 솟아날 것이 다. 따라서 팔만사천 법문이 모두 통달하여 모르는 것이 없이 다 알아지고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일시에 만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간경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증득하는 원리이다. - 불교교리상식 -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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