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식/교리문답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염불수행의 의미/ 염불수행의 역사

관리자 | 2007.09.05 10:16 | 조회 1406

      염불수행의 의미 염불에서 말하는 념이란 지킴(守)을 뜻합니다. 참 성품을 늘 드러나게 하고 끝없이 기르려면 그것을 지키어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염불에서 말하는 불이란 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깨달음이란 참 마음을 밝게 비춰서, 늘 깨어 있어 어둡지 않 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한결같은 무념으로 밝고 뚜렷하게 깨닫고 이렇듯 밝고 뚜렷하게 깨달으면 온갖 생각이 끊어지니 이것을 일러 참 염불이라 합니다.(보조스님의 <염불요문>중에서 염불이란 부처님의 명호를 소리내어 부르거나 상호를 관상 하거나 공덕을 의념함으로써 부처를 보고 부처를 이루며 불 국토에 왕생하는 수행법이다. 염불은 부처님 당시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는 수행법으로 가장 더욱 대중적으로 행해지는 수행법 중의 하나이다. 특히 정토불교에서는 염불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수행체계와 방법를 세워 발전시켰으므로 요즘은 염불하면 극락왕생을 떼 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정토신앙은 한마디로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지하여 극락정 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것이다. 극락정토는 아미타불이 교주(주불)이고 관세음보살과 대세지 보살이 좌우보처 보살이다. 그래서 아미타불을 주로 하고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보 조적인 염불로 한다. 이러한 정토신앙에 근거한 염불외에도 독자적인 관음신앙과 지장신앙에 기반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 염불이 많이 행해 지고 있다. 이와같이 염불이 불보살의 본원력에 의지하므로 타력신앙이 라고 생각되지만 자력이 없는 타력은 결코 있을 수 없으므로 자력과 타력이 동시에 갖추어지는 수행이다. 더구나 정토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정토에 나겠다는 생각만으로는 정토에 날 수 없으며 보리심을 발하고 일심으 로 염불행을 닦아야 한다. 정토가 서쪽으로 십만팔천만리 밖에 있다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부처와는 그만큼 거리가 있다는 것으로 실제로는 십선 과 팔정도를 닦으면 그 거리는 바로 사라지고 곧 정토에 왕생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서방극락정토에 계신다는 아미타부처님도 바로 우리 마음의 바탕으로서 우리 마음이 청정해지면 무량한 광명이 이 마음으로부터 밝게 빛날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믿음으로 염불을 하는 것이다. 지금은 다양한 염불법 중에서 칭명염불이 주가 되었는데, 염불 의 염이 억념, 작의 등의 의식작용을 의미하듯이 생각이 소리 와 결합되어 일념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염불이란 입으론 부처를 부르며 마음으론 본성을 찾는 일,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찾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무슨 이익 있으랴.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 법문은 윤회를 벗어 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되 분명하고 어지럽지 않도록 해야 하는 바, 이처럼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게 염불이다.<선가귀감> - 불교교리상식 -
      염불수행의 역사
      염불의 역사는 부처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함경에 보면 삼념, 오념, 육념, 10념 등의 염법이 있다. 즉, 염불, 염법, 염승, 염계, 염시, 염천, 염휴식, 염안반, 염신, 염사의 수행법이다. 이것은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며(여래 10호), 나무불을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승단을 생각하는 삼염법, 부처님의 계 율과 가장 깨끗하며 선한 공덕이 있는 하늘을 생각하는 오념법, 여기에 보시를 생각하는 것이 더해진 육수념이 있 다. 그리고 육수념에 마음의 조용함을 염하는 념휴식, 출입하는 숨을 세고 장단 등을 아는 념안반, 이 몸은 항상하지 않음을 생각하는 념신, 이 몸은 결국 죽는다는 염사 등을 더하여 십념이 되었다. 염불이 지금처럼 중요한 수행법의 하나로 지리잡게 된 것은 역시 정토신앙과 관련이 깊다. 정토신앙은 부처님의 본원에 의지하여 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신앙으로, 정토왕생의 방법으로 염불이 권장되기 때 문이다. 정토신앙은 기원 후 1~2세기에 걸쳐 대승불교 운동과 함께 출가교단은 물론 재가자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으 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정토신앙은 인도에서 서역·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 일본으로 전해졌다. 마명보살의 기신론, 용수보살의 십주비바사론과 지도론 또한 세친보살의 정토론 등에서도 염불은 부처님의 무량 공덕과 근본서원을 확신하는 수행이기 때문에 불·보살과 감응하고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 마치 순풍에 돛단배와 같이 수행하기 쉽고 성불하기 쉬운 이른바, 이왕이수의 행법임을 찬양하였다. 중국에서는 혜원, 담란, 지의, 도작, 선도, 자민, 지례, 주굉 등으로 이어지면 서 다양한 논의와 주장들이 있었으며 다른 종파와 결합하 여 쌍수하는 모습으로 정착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부터 정토신앙이 대중 속에 뿌리 내렸다. 원효, 자장, 의상스님 등 신라의 대표적인 스님들은 물론이 고 많은 학승들에 의해 정토삼부경에 대한 번역과 각종 주석서가 집필되어 정토교학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하였 다. 고려시대에도 대각, 보조, 태고, 나옹스님들에 의해 선종을 위시하여 화엄 법상 천태 밀교 등의 각 종파에서 폭넓게 받 아들여졌다. 그러나 독자적인 종파로는 성립하지 못하였고, 조선시대에 함허, 서산, 사명대사 등이 선과 염불을 융합한 선정일치의 견지에서 염불을 역설하여 지금도 염불은 승속을 막론하고 가장 대중적인 수행법으로 자리잡고 있다. 역사적인 예로보면 발징화상(發徵和尙)의 만일염불회가 있 다. 만일염불회의 동참대중은 승려 31인, 신도 1,828인이었다. 신라 경덕왕 17년(758)에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일만일 염불 정진을 시작, 29년 만인 병인년(786)에 만일이 되었다. 그 날 금빛찬란한 아미타불이 현신하여 염불대중을 차례로 극락으로 인도하였음을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다. 염불만일회가 처음 개설된 도량이 바로 금강산 건봉사이며 발징화상에 의하여 창도되었다. 건봉사의 염불만일회를 기 점으로하여 한국의 대소사찰에는 염불당이 들어서고 만일회 의 염불결사운동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현풍 도성암에서는 1624년 성범(成梵)화상의 주도로 일만 팔천일 염불회가 개설되기도 하였다. 근래들어 염불에 대한 불교인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만일염 불결사가 새롭게 계승되고 있다. 일본은 헤이안시대 말에서 가마쿠라시대로 들어오면서 법연 이 정토종을 개창하고 그의 제자인 친란은 정토진종을 개창 하였다. 또한 일편은 각지를 돌아다니며 춤추며 염불하는 법을 가르 쳐 종교적인 절정을 맛보게 했으며, 신기(神祇)신앙과 아미타 신앙을 융합하여 모든 것이 나무아미타불의 명호밖에 없다고 설하는 시종을 열었다. 이들 정토교의 교파는 그 후 각각 발달하여 일본불교의 큰 흐름을 형성하여 현재에 이른다. 현재 대표적인 정토교는 정 토진종과 서산정토종, 시종이 있다. - 불교교리상식 -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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