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식/교리문답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포교를 위한 불교기초상식(2)

관리자 | 2007.02.08 09:55 | 조회 1123
<부처님의 일대 약기(一代略記)>-1 *탄생 ·기원전 623년 북인도 가비라국(迦毘羅國) 국왕 정반왕(淨飯王)과 모후 마야부인(摩耶夫人) 사이의 태자(太子)로 룸비니 동산(鹽毘尼 花園) 무우수 아래에서 4월 8일 탄생하시었다. ·종족은 석가(釋伽), 성은 구담(瞿曇), 이름은 실달(悉達), 곧 ‘실달태자’이시다 ·태자는 32상(相) 과 80종호(種好)를 갖추신 세상에서 가장 수승(殊勝)한 분이다 ·태자는 태어나면서 바로 4방을 7보씩 걷고나서 한 손가락으로는 하늘을 가르키고 또 한 손가락으로는 땅을 가르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 우주 사이에 나보다 높은 이가 없다)라고 외쳤다. ·불교에서는 4월 8일을 부처님의 ‘성탄일’로하여 기념한다 *결혼:(十九세 때) ·태자가 19세때 이웃나라 천비성(天臂城)선각왕(善覺王)의 따님 야수다라(耶輸陀羅)를 비(妃)로 맞이하여 결혼하시다. ·태자비를 맞이 한지 10년이 되던 해에 마침내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라아후라)(羅睦目羅)라고 하시었다. ‘라아후라’를 번역하면 장애(障礙) 계박(繫博)이라는 뜻이다. *출가:(二十九세 때)2월 8일<출가일> ·태자는 홀연 전에 4문(동·서·남·북)을 유관(遊觀)하다가 노인과 병인과 상여(喪輿)와 수도사문(修道沙門)을 보시고 인생이 더욱 무상(無常)함을 깊이 상념하고 출가수도를 결심하시었다. ·태자는 29세 되던 해 2월 8일 밤중에 마부 차익(車匿)을 깨워 백마건척(白馬牴陟)을 타고 드디어 궁성을 넘어 출가하시여 고행수도(苦行修道) 길에 오르시었다. ·태자께서 출생직후 설산에서 수도하는 아사타선(阿私陀仙人)이 <태자께서 장성하시여서 왕국에 계시면 4해를 통치하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실 것이요 만일 출가 수도하시면 세상을 구제하시는 대각성존(大覺聖尊)이 되실 것입니다.>라고 예언한 바 있었는데 태자는 마침내 대각(大覺)을 이루어 세상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고행수도 ·태자가 설산에 들어가서 머리를 깎고 수도행자(修道行子)가 되니 번뇌(煩惱)의 악마가 더욱 치성(熾盛)하였다. ·태자는 처음 ‘비사리국(毘舍離國)과 ’마갈타(摩竭陀)제국을 두루 다니면서 ‘발가발’(跋伽婆)선인(仙人)을 만나보시고 다음은 ·‘아라라가난’(阿羅迦迦蘭) 학자와 ‘울타가라마자’(鬱陀迦羅摩子)라는 학자를 찾아서 그들의 수선공부(修禪工夫)의 실제를 보시고 실행하였으나 오도(悟道)의 요결(要訣)이 아님을 아시었다 ·다음은 ‘마갈타국’에 이르러 ‘가야성’곁으로 흘러가는 ‘니련선하’(尼連禪河)의 강언덕과 ‘우루빈라’(優樓頻羅)숲 가운데서 스스로 혹심한 고행을 닦으셨다 *성도:(三十五세 때)12월 8일<성도일> ·태자는 6년간이나 계속해 온 고행주의(苦行主義)의 수도를 버리시고 ‘니련선하’에서 목욕하고 ‘선생녀’(善生女)로부터 ‘우미죽’을 받아 잡수시고 원기를 돌리시였다. 이 때 시봉 ‘교진여’등 5인은 태자가 타락한 것으로 오해하고 태자만 두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홀로 남은 태자는 ‘가야산’앞 ‘필발라수’ 곧 보리수(菩提樹) 아래에 ‘길상초’(吉祥草)를 깔고 앉아서 결사적으로 최후의 <정려사유운심공부(精勵思惟運心工夫)를 하시었다 ·태자는 이렇게 하시기를 7일 7야를 용맹정진 끝에 태자의 나이 35세 되던 12월 8일 새벽에 동천에서 떠 오르는 명성(明星)을 보시고 할연대오 하시어 드디어 성도(成道)하시었다 ·불교에서는 12월 8일을 <성도>기념일로 한다 _()()()_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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