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식/교리문답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사찰의 어원 및 성립

관리자 | 2006.04.10 11:57 | 조회 1438


                              
                            사찰의 어원 및 성립


산스크리트어로 상가람마(Saṃgha-ārāma) 이다.
이를 소리나는 대로 옮겨 승가람마라 하였고, 줄여서 가람(伽藍)이라 하였다.
상가(saṃgha)는 무리․ 모임․집단의 뜻을 가진 말이고,아라마(ārāma)는 정원  또는 담장을 두른 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수행자들이 모여 수행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중원(衆園)․승단(僧團)․승원(僧院)이라 하였다.
인도에서 상가람마로 일컬어졌던 수행자들의 거주처를 중국에서 사(寺)․사찰(寺刹)․사원(寺院)이라 한 것이 우리나라에까지 유래되었으며,한반도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이다.

  1. 고구려에 불교가 처음 전해진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에 전진의 왕 부견(符堅)이 승려 순도(順道)를 시켜 불상과 불경을 전했다.
374년 승려 아도(阿道)가 왔다. 왕은 이듬해 성문사(省門寺)를 세워 순도를 머물게 하고, 또 이불란사(伊弗蘭寺)에 아도를 머물게 하였는데, 이것이 한반도 최초의 사찰이다. 

   2. 백제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고구려보다 12년 뒤인 침류왕 1년(384년)에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滅難陀)가 동진(東晉)에서 바다를 건너 백제로 들어오면서 전래되었다.

 
  3.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눌지왕(419~458)때 고구려를 거쳐온 묵호자(墨胡子)에 의해 불교가 전해졌다.묵호자는 신라의 서북경 지방인 일선군(一善郡)에 들어와 모례(毛禮)의 집에서 불법을 전하 여 모례는 신라인으로서 최초의 신도가 되었다.
당시에 중국사신이 향을 신라에 가지고 오자 묵호자는 법흥왕의 딸 성국공주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향을 사루고 기도를 드리어 완쾌시켰다.
이로써 왕실에서도 불교를 알게 되었으나 홍포되지는 않았다.
그 후 법흥왕은 불교를 수용하려 했으나 고유 신앙을 받들던 귀족들의 반대로 실패했다.그러나 불교로써 왕권을 확립하려 했던 법흥왕(14년)은 527년에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배척하던 귀족들의 세력을 누르고 불교 공인을 선포하였다.  

   ◆ 사찰을 절이라고 부르는 유래

첫째 :신라시대 묵호자스님이 모례라는 집에서 머물렀기 때 문에 모례라고 하는 발음을 할 때, 털례→철례→절례  →절 이와 같이 변형되어 나중에는‘례’자가 생략되어 ‘절’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둘째:절에 가면은 자꾸 절을 한다고 하여 절이라고 하는 설도있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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