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식/교리문답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스님의 옷을 승복(僧服)이라 하는 것은?

관리자 | 2009.02.15 05:33 | 조회 1658
      승복이란 승려가 입는 의복으로서 승의(僧衣) 또는 법의(法衣)라고도 하는데, 법의(法衣)라는 말은 일찍이 당나라의 도의(道宜)가 지은 “석문장복의 제의석명편(釋門章服儀 制意釋名篇) 에 나오는 말로써 근래에는 대개 가사와 장삼(長衫)만을 가르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승복이란 "불제자(佛第子로서 그 교리를 믿고 지키며 포교하는 스님의 복식(服食)"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승복(僧服)이란 원래 불교도만이 갖는 가사(袈裟, kasya)를 가리키며, 인도에서는 Ti-Civara 즉 삼의(三衣)였던 것이 후대에 와서는 이 외에 가사 안에 입는 옷까지도 이 승복에 포함되게 되었다. 물론 인도에서도 후대에는 여러 가지 사정 아래 안에 입는 옷들이 생겼지만 차츰 추운지방인 중국 등지로 불교가 전래되면서 특히 승려가 국가의 관직을 맡을 때는 그 관직에 맞는 복장(관복) 위에 가사를 드리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가사가 인도에서는 단순한 옷이었는데 상징과 양식을 위한 하나의 피착물(被着物)로 바뀌면서 가사 안에 입고 있는 그 나라의 정식복장(正式服裝)이나 혹은 새로이 고안된 복장 따위가 후대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점차로 하나의 형식을 만들며, 승복 속에 포함되게 되었고, 나아가서는 그 안에 입는 옷을 비롯하여 바지, 모자 등 승려가 몸에 걸치는 모든 것을 다 승복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흔히 이 가사와 그 안에 입는 옷, 바지, 모자 등을 제외하고 옷으로서는 맨 겉에 입는 옷만을 “장삼(長衫)”이라 하며, 이를 법복(法服) 즉 승복이라고 넓은 의미로 칭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개 이 때에는 가사, 장삼하고 병칭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남방불교에서는 우리 나라처럼 가사 장삼의 구별이 없고 삼의(三衣)와 안에 입는 옷 즉 내의(內衣)를 모두 포함하여 승복, 법의(法衣)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승복이란 불교도 특유의 복장인 모든 옷으로 외형적으로 보아 불자임을 식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 승복 안에 포함되는 것이다. 부처님은 원래 승복으로 가사(袈裟)를 제정하여 기본으로 하였다. 당시 인도에서는 가사 하나로 사철을 지나던 승복이었는데 중국에 전래되어 와서 기후와 옷 입은 관습에 따라 상의(上衣)로서 편삼(偏衫) 위에다가 걸치게 되었던 것이다. 이 편삼은 중국 북위(北魏) 때에 혜광(慧光)이 승지지(僧祗支)에다 편수(偏袖)를 붙이고 옷섶을 단 윗옷인데 중국의 선가(禪家)에서 사용하여 내려 온 것으로 편삼에 군(裙)을 합쳐 장삼(長衫)이라 한다. 우리 나라에는 삼국의 중엽 이후부터 고려말까지 약 천년동안 불교문화시대에 법의인 흑장삼(黑長衫)과 붉은 가사가 중국으로부터 전래하여 전통적인 우리 옷 위에 착용하게 된 것이다.   가사(袈裟)는 범어로 kasaya 또는 가사야(袈裟野)라고 한다. 가사는 수행승이 입는 법의(法衣)의 하나로 애초에는 사람이 내버린 옷, 죽은 사람의 옷을 백팔염주를 본 떠서 백팔장(百八張)을 모아 불규칙하게 꿰맨 것이었다. 청, 황, 적, 백, 흑의 오정색(五正色) 이외의 잡색 으로만 물들여 쓰도록 규정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승복의 재료를 의체(衣體) 또는 의재(衣財)라고 한다. 여러 개의 천을 직사각형이 되게 붙여서 만든다. 네 귀에는 일(日), 월(月), 천(天), 왕(王)이라는 수를 놓고 양쪽에는 끈이 달려 있으며 겹으로 하여 사방에 통로를 내었는데 이것을 통문(通門)이라고 한다. 콩알을 넣어 사방으로 굴려서 통해야 하며 만일 막힌 곳이 있으면 다음 생에 맹인보(盲人報)를 받는다고 한다. 가사를 입을 때에는 장삼을 입은 다음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끈으로 매어 고정시킨다. 그 규격에는 오조(五條, 一長日短)로 만든 것을 안타회(安陀會)라고 하고, 칠조(七條, 二長一短)으로 만든 것을 울다나승(鬱多羅僧), 구조(九條)· 십일조(十一條)십삼조(十三條, 모두 이장일단), 십오조·십칠조· 십구조(삼장일단), 이십일조·이십삼조·이십오조(사장일단)를 승가리(僧伽梨)라 한다. 이 삼의(三衣)는 본래 부처님이 더운 지방에 사는 이를 위하여 만든 법의(法衣)로서 이것만으로 몸을 가리기 때문에 의(衣)라고 하였으나, 우리 나라, 중국, 일본 등지에서는 추운 날씨 관계로 가사 아래 장삼을 입어 가사와 구별하였다. 후세에 이르러서는 가사를 만드는 재료가 풍부하고 다양해 짐으로써 다소 화려해 지는 등 법규에 어긋난 점도 없지 않았다. 신라의 법흥왕이 입었다는 피방포(被方袍) 역시 가사였는데, 그 후 승통(僧統)의 확립과 법계제도의 정착으로 승의제도(僧衣制度)도 확립되었고 승복도 화려해졌다. 불교를 국교로 했던 고려에서는 위로는 금란가사에서부터 아래로는 거사의 백저착의(白紵窄衣)까지 다양하였다고 한다. 백저착의는 원효대사가 속복으로 입었던 일과 차득공(車得公)이 시의(베옷)를 입었던 일과 같이 속복을 입은 거사들이 많았다. 고려시대의 승의제도를 살펴보면 국사(國師)와 율사(律師)는 장수편삼(長袖偏衫)을 입고 가사를 걸치고 자상(紫裳)을 하였고, 대덕(大德)은 단수편삼(短袖偏衫)에 황토색의 괘의를 입고 황상(黃裳)을 하였으며, 비구는 황토색 포의(布衣)나 자의(紫衣) 또는 납의(衲衣, 누비옷)을 입었고, 재가신도는 백저착의에 검은 비단의 허리띠를 둘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승복제도는 별 차이가 없었는데, 다만 세종때 금령(禁令)으로 회색옷을 입지 못하게 하여 삼베의 빛깔인 시색의 승복을 착용하도록 했다. 이것은 회색이 옥색에 가깝고 고려시대의 구색(鳩色)과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오늘날 다른 우리 고유의 의상들은 사라졌지만 승복만은 오랜 전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법의(法衣)는 승려의 의복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규정한 불자에게 적합한 의복이다. 곧 여법의(如法衣), 응법의(應法衣)의 뜻으로 법복(法服), 승복(僧服), 승의(僧衣) 등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옷을 말하며 부처님이 정하신 의복에는 삼의(三衣), 오의(五衣) 등이 있다. 원래 이것을 법의라고 했는데, 중국 우리나라, 일본 등에서는 기후와 풍토관계로 삼의가 형식화 되고, 또 가사 속에 옷을 입게 되어 가사와 옷도 합해서 법의라고 했으며 옷도 법의라고 했다. 또 선종에서는 법을 전하는 표시로 주는 금란의(金란衣)를 법의라고 하는 수가 있었다. 인도에서는 비구는 승가리(僧伽梨) 울다나승(鬱多羅僧), 안타회(安陀會)의 삼의, 비구니 이상의 승기지(僧祇支), 궐수나(厥修羅)를 더하여 오의를 입도록 정해지고, 여기에 츤의(속옷)를 입는 것을 허용했다고 한다. 삼의는 지벌나(支伐羅, 범어 civara의 음역으로 옷이라 번역)로 총칭되고, 또 그 염색을 가사(不正色, 아름답지 않은 탁한 빛)라 하고, 혹은 복전의(福田衣) 등이라고도 한다. 삼의의 승가리(僧伽梨)는 대의(大衣), 중의(重衣), 잡쇄의(雜碎衣), 고승의(高僧衣), 입왕궁위락의(入王宮聚落衣)라고도 불러 거리에 나갈 때나 입궐을 할 때 입고, 아홉조각 내지 스물 다섯 조각의 천을 이어 합해서 만들고 천의 조각수는 아홉 종류가 있기 때문에 구품대의(九品大衣)라고도 한다. 울다나승(鬱多羅僧)은 칠조의(七條衣), 상의(上衣), 중가의(中家衣, 삼의의 중의에 해당하기 때문), 입중의(入衆衣)라고도 하여 예송, 청강, 포살 등을 행할 때 입고, 일곱 조각의 천으로 만든다. 안타회(安陀會)는 오조의(五條衣), 내의(內衣), 중숙의(中宿衣)라고도 하고, 일상의 작업이나 취침시에 입고 오조의 천으로 만든다. 옷을 만드는 법에 대해서는 십송율권이십칠(十誦律卷李十七)이나 사분율권사십(四分律卷四十) 등에 규정이 있어서 처음에는 작은 헝겊으로 나누고 뒤에는 이것을 꿰매어 만든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른 곳에 유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와 같이 하여 의복에 대한 욕심을 버리게 하고, 또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 인 듯 하다고 한다. 규정대로 만든 옷을 할절의(割截衣, 그렇지 않은 곳을 만의)라고 하고, 세로로 꿰매는 것을 수조(竪條), 가로로 꿰매는 것을 횡제(橫堤), 이에 따라 나눠진 모양이 밭과 같기 때문에 전상(田相)이라고도 한다. 꿰매는데도 법식이 있어서 직봉(直縫)을 금하고 천바탕이 얇은 경우에는 겹쳐 꿰매는 회수가 정해져 있었다. 색은 청, 황,적, 백, 흑의 오정색(五正色) 및 비(緋),홍(紅), 자(紫), 연(緣), 벽(碧)의 오간색(五間色)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천, 니(泥), 목란색(木蘭色)의 세 가지 색만 허락하여 이것을 삼여색법(三如色法)이라 한다. 단, 일성에는 청, 황, 적, 흑, 목란을 오여색법(五如色法)이라고 한다. 또한 착용법에도 규정이 있어 평상시에는 양끝을 어깨 위에서 겨드랑이 아래로 끌어서 끈을 걸지만, 좌선 등을 할 때 양 쪽 어깨를 덮는 것을 허락하고, 예불 등의 때에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되어 있다고 한다. 또 입지 않고 휴대하고 다닐 때에는 의낭(衣囊)을 쓰고, 후세에는 삼의거(三衣거)도 썼다고 한다. 현재 삼의거는 경전 등을 넣는 거적(接僧匣)을 가리킨다. 삼의 외에 삼의 속에 입고 왼쪽 어깨 및 양 겨드랑이를 덮는 승기지(僧祇支, 보통 祇支라고 하는데 비구니의 다섯 가지 옷 중의 하나이다. 비구도 입는 수가 있는데 겨드랑이를 가리는 장방형의 속옷으로서, 가슴과 유방을 덮기 위한 것이며 왼쪽 어깨에서 허리 아래까지 이른다)이나 허리에 걸치는 궐수나(厥修羅), 등 여러 가지의 옷이 있었다. 출가한 사람은 평생 분소의만 입고 살아야 한다고 한다. 분소의는 다 쓰고 버린 헝겊 조각을 모아서 만든 옷으로 탐심(貪心)을 여의기 위해 검소함을 닦는 뜻으로 입는 법복(法服)이다. 이것이 비구가 입어야 할 본래의 의복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율장의 의건도에는 시체를 싸서 화장터에 내다버린 총간의(塚間衣)를 분소의로 들고 있는데 비구들이 서로 다투어 취하였기 때문에 공평하게 나누어 입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또 비구들에게 “분소와 시장에 떨어져 있는 헝겊은 원하는 만큼 갖도록 하라”고 한 기록도 있다. 이는 상점의 문 밖에 버려진 헝겊도 분소의와 같은 범주에 속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겠다. 또한 비구들 중에는 귀족, 부호 출신도 많았는데, 그 비구가 주워가기 쉬운 곳에 헝겊을 두고서 주워가도록 하는 일까지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일들은 후대에 생긴 일들이며, 처음에는 출가의 원칙적인 의생활은 분소의에 의지하는 것이었다. 승가의 최초기에 붓다가 우루벨라에서 배화교도의 우두머리인 우루벨라 등 가섭 3형제를 설복, 교화한 일을 기록하는 가운데 부처님의 분소의를 얻어서 이를 세탁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이때 석제환인(釋帝桓因)이 붓다를 위하여 석지(石池)와 장소를 마련했다고 한다. 즉 성도 직후 부처님의 옷은 분소의 였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비구의 옷은 한 벌의 삼의(三衣), 즉 단삼의(單三衣)이다. 부처님이 비구의 옷을 단삼의로 정한 것과 옷의 재료에 대한 규정의 예외사항으로 보시를 받는 경우에는 비단 옷을 지어도 좋다고 한 전후 사정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분소의라고 하더라도 형식만 그럴 뿐 실제로는 새옷에 가까운 것도 그 비율이 상당했던 것 같다. 의건도에 의하면 시체를 화장터에 내버릴 때 비구에게 공양할 목적으로 지은 고급의복으로 덮은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파사익왕의 부인이 값비싼 옷을 찢어서 부정한 것을 바른 뒤 특정 비구에게 주었다는 등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면, 분소의 대신 시의를 입게 된 것은 상당히 일찍부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의건도에 의하면, 부처님이 이질을 치료한 의사 기바는 치료를 위해서 부처님의 분소의를 시비포(尸毘布)로 바꾸어 드리면서, 비구들도 거사의 옷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한 일이 있었다. 기바의 간청이 받아들여 짐으로써 여러 가지 옷, 견의(絹衣) 등을 보시받게 되었다. 사의법 중 분소의의 예외로서는 아마의(亞麻衣), 금의, 야잠의, 갈의, 지의 등 다섯 가지의 옷을 들고 있다. 단삼의라는 것은 비구의 옷으로는 하의(安陀衣, antaravasa), 상의 및 외의의 삼의 한 벌(단삼의)을 갖고 있어야 하며 그 이상을 소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의는 치마 모양의 옷인데, 청소 및 잡무를 할 때는 이것만 입는다. 상의는 하의 위에 입는 옷으로 실내에서 좌선을 하거나 강의를 들을 때 입는다. 그리고 외출을 할 때나 정장차림을 할 때는 상의, 하의 위에 다시 외의를 착용한다. 삼의 중에 외의는 2중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삼의를 다 착용하면 전부 네 가지를 입게 되는 것이다. 의건도가 전하는 바로는, 부처님이 바이샬리의 고타마묘에 머무르고 있었을 때, 눈 내리는 추운 겨울 밤 동지의, 8 일제와 8 일제 사이 15일 동안을 노천에 앉아 지내면서 추위에 견딜 수 있는 의복의 정도를 시험해 보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아무리 추운 경우라 하더라도 네 겹의 옷이면 충분하다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그런 까닭에 한 벌 삼의 이상을 갖고 있으면 장의(長衣)라고 하였던 것이다. 장의를 열 벌이상 소유하고 있으면 장의계를 범하는 것이 되고, 또 하룻밤 동안이라도 삼의 중 어느 하나를 지니지 않으면 이의숙계(離衣宿戒)를 범하게 된다. 그런데 교단이 대정사를 갖게 되자 사정이 달라지게 되었다. 걸식만으로 생활하고 분소의를 입는 것으로 산림에 은둔하여 물자를 희사받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비구라든가, 혹은 분소의를 입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정 된 것 같다. 그러한 사람들은 출가행의 원칙을 지키는 사람으로서 찬탄되었다. 예컨대, 불멸 후 100 년이 지나 제2 결집에 인도 전역에서부터 700의 대비구가 모였는데 그들 중 최고위원으로서 또 장로로서 존경받았던 사람들은 모두 걸식을 하고 분소의를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대정자가 있는 승가에서는 신자로부터 옷이나 옷감을 받는 수납(受納)비구, 그 저장을 책임지는 수장(收藏)비구, 창고로 지정된 건물과 그 창고를 지키는 수고(守庫)비구가 있었다. 그리고 옷감을 분배하는 분의(分衣)비구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승가 전체 중에서 그러한 일을 행할 능력이 있는 비구로서 선출되었던 것이다. 신자로부터 받은 시의를 사용하게 되면 새로 지은 옷, 화려한 옷이 된다. 그래서 분소의에 가까운 색으로 괴색(壞色)하여 쓰게 되었다. 비구의 옷을 가사(袈裟, kasaya)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괴색이라는 의미이며 가사로 한다는 것은 천한 색으로 물들이는 것으로 이를 색천(色賤)이라고 한다. 색천할 때 색의 배합은 율장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표현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모란색(木蘭色), 니색(泥色) 또는 천색이었다. 오늘날 남방불교 비구의 옷은 황색인데, 이는 색천의 색 중 천색 계통이 아닐까 한다. 또 분소의는 원래 조각조각 찢어진 천을 붙여서 만든 것이다. 시의의 경우도 그와 유사하도록 만들어서 착용했다. 긴 헝겊과 짧은 헝겊으로 잘라서 서로 잇대어 깁는다. 이를 색천에 대하여 도천(刀賤)이라 한다. 즉 도천은 길고 짧은 헝겊조각을 계속 잇대어서 조포(條布)로 만들고, 그것을 몇 조각이든 가로로 잇대어 깁는다. 그렇게 해서 다 만들어진 옷은 조의 수에 따라서 몇 조라고 칭한다. 예컨대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삼의 중에서 하의를 긴 헝겊 한장과 짧은 헝겊 한 장을 1조로 하여 다섯 조를 합하여 5조 가사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상의는 대게 7조, 외의는 9조에서 25조까지인데, 7조 등의 각 조는 양장일단(兩長一短)이 아니면 삼장일단을 만들고 있다. 이 도천의 방식은 부처님이 논에 심어진 벼의 정연한 모습을 보고서 정한 것이라고 한다. 갠지스강 유역에는 논농사가 발달해 있었으므로 어쩌면 그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는 도천이나 색천으로 미루어 볼 때, 비구 본래의 삼의가 분소의였다는 점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율장에는 옷감으서의 가치를 없게 하여 보는 사람들이 도심(盜心)을 일으키지 않도록 삼의에 색천과 도천을 하였다 한다. 또한 부처님은 분소의가 내버려진 것이므로 ‘얻기 쉽다’고 하는 호용성을 서술하고 있으며 “분소의거나 시의거나 만족할 줄 알면 된다.”고 하였다. 중국에서는 삼의를 형식화한 여러 가지 가사가 만들어 졌으며, 속에 있는 법의도 가지각색을 사용함으로써 옷 천이나 색채가 차츰 화려하게 되었다. 가사에는 안타회(安陀會)의 변형으로서 오조가사(五條袈裟), 첩오조(疊五條), 두타대(頭陀袋) 그 변형인 윤가사(輪袈裟) 등을 비롯해서 괘자(掛子), 위의세(威儀細), 종자가사(種子袈裟), 결가사(結袈裟), 삼서가사(三緖袈裟), 소오조(小五條) 등이 있다. 울다나승(鬱多羅僧)은 칠조(七條), 승가리(僧伽梨)를 구조(九條)라 하고 이에는 평가사(平袈裟), 갑가사(甲袈裟), 원산가사(遠山袈裟), 납가사(衲袈裟) 등의 종류가 있다. 우리는 스님의 옷을 승복(僧服)이라 한다. 승복이란 승려가 입는 의복으로서 승의(僧衣) 또는 법의(法衣)라고도 하는데, 법의(法衣)라는 말은 일찍이 당나라의 도의(道宜)가 지은 “석문장복의 제의석명편(釋門章服儀 制意釋名篇) 에 나오는 말로써 근래에는 대개 가사와 장삼(長衫)만을 가르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승복이란 ”불제자(佛第子로서 그 교리를 믿고 지키며 포교하는 스님의 복식(服食)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승복(僧服)이란 원래 불교도만이 갖는 가사(袈裟, kasya)를 가리키며, 인도에서는 Ti-Civara 즉 삼의(三衣)였던 것이 후대에 와서는 이 외에 가사 안에 입는 옷까지도 이 승복에 포함되게 되었다. 물론 인도에서도 후대에는 여러 가지 사정 아래 안에 입는 옷들이 생겼지만 차츰 추운지방인 중국 등지로 불교가 전래되면서 그 나라의 풍토에 알맞은 승복이 고안되었을 뿐 아니라 특히 승려가 국가의 관직을 맡을 때는 그 관직에 맞는 복장(관복) 위에 가사를 드리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가사가 인도에서는 단순한 옷이었는데 상징과 양식을 위한 하나의 피착물(被着物)로 바뀌면서 가사 안에 입고 있는 그 나라의 정식복장(正式服裝)이나 혹은 새로이 고안된 복장 따위가 후대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점차로 하나의 형식을 만들며, 승복 속에 포함되게 되었고, 나아가서는 그 안에 입는 옷을 비롯하여 바지, 모자 등 승려가 몸에 걸치는 모든 것을 다 승복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흔히 이 가사와 그 안에 입는 옷, 바지, 모자 등을 제외하고 옷으로서는 맨 겉에 입는 옷만을 “장삼(長衫)”리아 하며, 이를 법복(法服) 즉 승복이라고 넓은 의미로 칭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개 이 때에는 가사, 장삼하고 병칭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남방불교에서는 우리 나라처럼 가사 장삼의 구별이 없고 삼의(三衣)와 안에 입는 옷 즉 내의(內衣)를 모두 포함하여 승복, 법의(法衣)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승복이란 불교도 특유의 복장인 모든 옷으로 외형적으로 보아 불자임을 식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 승복 안에 포함되는 것이다. 부처님은 원래 승복으로 가사(袈裟)를 제정하여 기본으로 하였다. 당시 인도에서는 가사 하나로 사철을 지나던 승복이었는데 중국에 전래되어 와서 기후와 옷 입은 관습에 따라 상의(上衣)로서 편삼(偏衫) 위 에다가 걸치게 되었던 것이다. 이 편삼은 중국 북위(北魏) 때에 혜광(慧光)이 승지지(僧祗支)에다 편수(偏袖)를 붙이고 옷섶을 단 윗옷인데 중국의 선가(禪家)에서 사용하여 내려 온 것으로 편삼에 군(裙)을 합쳐 장삼(長衫)이라 한다. 우리 나라에는 삼국의 중엽 이후부터 고려말까지 약 천년동안 불교문화시대에 법의인 흑장삼(黑長衫)과 붉은 가사가 중국으로부터 전래하여 전통적인 우리 옷 위에 착용하게 된 것이다. 우리 나라의 장자(長子) 종단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승복은 가사와 장삼, 장삼안에 입는 옷(평상복), 행전, 모자 또는 관, 신과 버선, 주장자와 불자(拂子), 두루마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가사는 대가사, 칠조가사, 오조가사로 나누고 있다. 대가사는 위의대가사(威儀大袈裟)라고도 하는데 samghati(승가지 또는 승가리)로서 9 조에서 25 조까지로 되어 있는데 이는 승려의 법계(法階)에 따라 구분하여 착용한다. 주로 대법요시(大法要時)에 착용하되 인도에서 와는 달리 통견(通肩, 양 어깨를 덮는 것)하지 않고 편단우견(偏袒右肩,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쪽으로 두르기 때문에 오른쪽 어깨는 들어내 놓는 착용법)하며, 가사가 흘러내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고리와 매듭을 가사에 달았다. 가사는 주로 겹가사인데 여름철에는 홑가사를 사용하며, 가사에는 일(日) 월(月) 등의 첩상(貼相, 부착물)이 없고 네 귀에는 가사가 터지지 않도록 첩(帖)은 있지만 가사와 같은색일 뿐 예전처럼 천(天) 왕(王) 또는 옴(Om) 자는 없다. 칠조가사(七條袈裟)는 의식복가사(儀式服袈裟)라고 하는데 인도의 중의(中衣, Uttarasanga)로서 원래의 크기는 대가사와 비슷하였는데, 지금은 길이와 폭을 줄였으므로 반가사(半袈裟), 략가사(略袈裟)라고도 부른다. 여기에는 두종류가 있는데 윗쪽에 끈을 달아 대가사처럼 편단우견(偏袒右肩)하는 것과 오조(五條)가사처럼 위 양쪽을 끈으로 연결하여 왼쪽 어깨에 둘러 메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형식은 우리나라에 없었고, 일본의 오조가사를 본받은 것이라고 한다. 이 칠족사는 낮은 법계(法階)에 속하는 스님은 착용하지 못하며, 사찰 주지 이상의 법사(法師)가 설법시에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오조가사(五條袈裟)는 Antaravasa(안타회)로서 하의인네 승원내의 일을 할 때 입었으나 당나라의 칙천무후가 이 오조가사를 작고 네모지게 하고 선종스님에게 준 것이라고 하는데 위쪽에 띠를 달아 목에다 걸고 두 어깨를 통하여 가슴 앞에 걸치는 것이므로 이름을 괘(掛) 혹은 자라고 한다. 이 자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하지 않던 것인데 해방후 인본의 선종계통의 임제종의 것을 본받은 것이라고 한다. 이런 가사의 색상은 갈색(褐色)인데 1962년 문공부에 등록한 이후에 새로 제정한 것이며, 종래에는 지금 태고종에서 사용하고 있는 적색가사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갈색이라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빛깔이 아니라고 하여 남방불교에서 사용하는 주황색의 가사를 입기도 한다. 그리고 재료는 일반적으로 합성섬유를 사용하지만 일부에서는 견(絹)을 사용하기도 한다. 장삼(長衫)은 중국의 심의(深衣)나 표의(表衣)인데 예복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이것은 편삼과 군(裙)을 당대에 직철(直綴)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편삼은 울다나승(鬱多羅僧)인 칠조와 복견의(覆肩衣)가 합쳐진 것이며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는 반면, 이 장삼은 두루마기처럼 오른 쪽으로 여미는 것이 다르다. 그러나 이것은 삼(衫), 즉 적삼이라는 뜻이다. 다시말해 편삼이 아래로 길게 느려졌다는 뜻에서 장삼이라고 하는 것이다. 직령교삼(直領交衫)의 대구수(大口袖)로서 허리 부분은 군(裙) 즉 치마(裳)를 이어 붙인 형태인데 이 치마 부분은 커다란 주름이 앞 뒤쪽에 8개 잡혀 있고 깃은 허리부분까지 이르고, 오른쪽 깃 끝과 왼쪽 겨드랑이 안에 고름을 달아서 매도록 되어 있으며, 겉에는 가는 고름을 달아 묶도록 되어 있다. 옛날에는 세조대(細條帶)를 달아서 가슴 부분에 묶었다고 하는데 오조락자(오2條絡子)를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약 8㎝ 넓이 정도의 장삼과 같은 색의 띠를 매도록 되었다고 한다. 이 띠는 대가사나 칠조가사를 입을 때는 가사 안에 매고, 오조락자의 착용시에는 밖으로 묶어 락자(絡子)를 고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장삼의 색상은 근래에 와서는 적갈색의 장삼을 입는 스님도 있다. 이는 1958년 세계불교도대회에서 불교색으로 권장된 색이라고 한다. 장삼의 재료는 합성섬유가 주이지만 여름에는 마포(摩布), 저포(紵布)에 먹물을 드려서 입기도 한다고 한다. 장삼안에 입는 옷은 평상복이라고도 하는데 장삼을 겉옷 또는 외의라고 한다면 그 안에 입는 옷은 마땅히 내의(內衣)라고 해야 하지만, 종래에는 츤신의라고 하여 속옷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이 속옷은 인도와는 달리 전통적인 한국복장인 저고리와 바지를 입는다. 얼마전까지는 조끼를 입었으나 근래에는 조끼 대신 저고리에다 호주머니를 달아 입는다. 색상은 주로 회색인데 근래에는 장삼처럼 적갈색으로 지어 입기도 한다. 재료는 합성섬유인데 여름철에는 마나 모시를 이용하기도 하고 겨울철에는 누비옷을 입기도 한다. 행전(行纏)은 승복의 일부분은 아닌데 조선시대에 관복이나 예복 또는 군복의 바지에 보행 등의 활동에 편리하도록 무릎 아래의 정강이에 꿰어 매는 일종의 각반(脚絆)이다. 행전은 조선중엽이후 불교수난기에 승려들이 군인대신 성을 지키고 성을 쌓는 등 온갖 잡역을 떠맡아 할 때에 착용한 것이 운수행각을 하기에도 편리하므로 지금까지 전승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행전의 색은 바지 색과 같은 회색이거나 적갈색이며, 재료는 주로 합성섬유이다. 모자(帽子)나 관(冠)은 옛날에 송낙이나 승관(僧冠)을 썼으나 근래에는 쓰지 않는다. 다만 종정취임식 등에 최고법계자들이 비로관(毘盧冠)을 섰다고 하지만 요즘엔 보가 드물다. 일반 승려들은 제정된 모자가 없으므로 여름의 외출시에 밀짚모자를 쓰고, 겨울철에는 털실로 승관처럼 짜서 머리를 보호하고 다닌다. 스님의 신이나 버선은 1940년대까지는 짚신에 버선을 신었다고 하는데 해방이후에는 검정 고무신에 버선을 신었으며, 근래에는 흰 고무신에 양말이나 운동화 종류를 신고 있다. 주장자를 불가(佛家)에서는 선종에서 설법시 사용하던 것이며 불자는 사용하지 않는다. 주장이라는 것은 스님이 외출 할 때 사용하는 지팡이로 선종(禪宗)에서 사용하는 것은 아래에서 2자 정도 부분에 작은 가지가 붙어 있으며, 주장자의 상단을 정두(淨頭)라고 하고 하단을 촉두(觸頭)라고 하며 소지(小枝)는 개울을 건널 때 물의 깊이를 재는데 사용하므로 심수(深水)라고도 한다. 두루마기는 평상시 외출할 때 겉에 입는 옷으로서 두루마기를 입는다. 장삼은 법의이기 때문에 법회나 예불을 드릴 때가 아니면 입지 않는 것으로 두루마기는 한복의 기본형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도포는 소매가 길고 넓은데 반하여 두루마기는 소매가 좁다. 또한 도포에는 락조대를 매었는데 두루마기에는 띠가 없고 옷고름으로 대신한다. 두루마기의 색상은 회색이며 재료는 합성섬유이고 여름에는 마나 모시를 사용하고 겨울에는 누비 두루마기를 입는다. 그러나 한국 불교에는 여러 종파가 있어서 각 종단 마다 각기 다른 형식의 승복을 취하고 있다. 그것은 각 종파 표방하는 교리에 따라 스님들이 입는 옷의 모양도 달라진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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