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역사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인도불교의 쇠멸

관리자 | 2006.03.14 05:01 | 조회 1619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한 원인에 대해서는 갖가지 학설들이 제시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라다크리슈난(Sarvepalli Radhakrishnan, 1888~1975년)은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게 되는 근본 원인은, 그 당시에 유행하던 비슈누교, 쉬바교, 탄트라 신앙 등과 같은 힌두교의 여러 종파들과 불교가 궁극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있다”고 하였다.
라다크리슈난 라다크리슈난 앉아있는 모습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원인으로서는 불교교단 자체의 쇠진, 왕족을 비롯한 정치적 지배계층의 후원이 감소한 것, 힌두교도의 박해, 이슬람교도의 침입, 교단 내부의 타락과 부패, 분파의 분열로 인한 교단의 쇠미, 재가 신도를 충분히 양성하지 못한 점 등이다. 그 중에서도 첫째로 꼽히는 원인은 이슬람 세력의 인도 침공이다. 10세기 초엽에 터키 무슬림이 인도로 침입하기 시작한 이래로 이슬람교도들이 불교사원들을 파괴했던 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신앙에 의하면 사원의 불상들은 한갓 우상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이슬람교도들이 불교를 박해하였고, 그들이 인도불교의 조종(弔鐘)을 울린 주도 세력이었던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이슬람의 공격에 대해서 불교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로서 불교가 금욕적이며 비폭력적인 종교였다는 점을 꼽기도 한다. 그렇지만 인도 땅에서 불교가 쇠퇴한 이유는 불교 내부에서 찾는 것이 보다 큰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먼저, 초기 불교가 힌두교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제사의식을 철저히 거부했다는 점이다. 붓다는 전법(傳法)의 초기부터 열반을 성취하는 데는 어떠한 의식이나 제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그러한 가르침은 부파시대까지만 해도 교단 내부에서 행해지는 최소한의 의식 외에 특별한 제의를 행하지 않음으로써 잘 지켜져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승을 거쳐서 밀교에 이르면서 불교에서도 의식은 매우 중시되었고, 힌두교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양상을 띠고 말았다. 또한 초기불교에서 부정되었던 유신론적 신앙은 점차로 퇴색되고 각종의 신격들이 불교신앙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더구나 대승의 보살신앙과 다불(多佛)사상은 자력신앙을 중시하던 불교를 타력신앙으로 바꾸어 놓는 결과를 낳았다. 붓다가 최후의 교설에서까지 오로지 강조했던 것은 각자 스스로에게 의지하여 자신을 구원하라는 것이었다. 바로 그러한 구원의 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구원자였던 붓다는, 세월의 변용을 거치면서 붓다 그 자신만이 중생을 구원해 주는 최상의 구원자로 등극하고 말았다. 불교는 그 최초에 그러했듯이 항상 민중의 관심과 더불어 성장 발전해 왔다. 물론 상인층과 지배계급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성장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불교교단과 교의의 핵심은 항상 민중의 마음을 읽는 데 있었다. 중생의 고통에서 눈 돌리지 않고 함께 아파하며 그 고통을 위로하고 없애기 위한 승단의 노력이 퇴색되어 갈수록 민중의 마음도 불교에서 멀어져 갔던 것이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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