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가르침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난행도(難行道)와 이행도(易行道)] 자력과 타력은 별개의 수행인가?

관리자 | 2006.03.14 05:27 | 조회 3657
난행도는 자력에 의하여 수행의 공을 쌓아서 이 세계에서 깨달음에 드는 길을 말하고, 이행도란 깨닫는 경계에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가르침을 말한다. 이 말은 “불법에는 무량한 문이 있고, 세간의 도리에는 어려운 것도 있고 쉬운 것도 있다. 보살의 도도 역시 같다. 혹은 근행정진(勤行精進)의 것이 있고, 혹은 신방편(信方便)의 쉬운 행으로서 빨리 불퇴위(不退位)에 이르는 것도 있다”라고 말한 용수의 「이행품(易行品)」에서 기인한다. 중국의 담란(曇鸞)은 「왕생론주」에서 자력렴막쩜繭遮?말로 난행도와 이행도를 설명하고, 도작(道綽)의 「안락집」에서는 성도문과 정토문으로 나누었는데, 일본 정토종의 시조인 원공(源空)은 「선택집」에서 정토문을 타력이행도라 하고, 성도문을 자력난행도라고 하였다. 후에 이행도는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는다고 하는 쉬운 일로써 불퇴위에 이르러 성불한다는 것에 쓰였는데, 특히 신(信) 뿐만 아니고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름으로써 왕생성불(往生成佛)하는 것도 또 이행이라 하였다. 오늘날에는 정토교에서 아미타불의 타력본원(他力本願)에 의지하는 것을 이행도라 한다. 이와 같은 불교의 두 가지 실천 수행의 입장은 대립된 것으로 이해되기 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지나치게 어느 한쪽에만 치우친다면 믿음이 결여된 학문 불교, 사변철학의 범주에 빠지게 되거나, 기복적 신앙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단순한 믿음에 의해서만 구제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믿음의 대상이 가르치는 바를 실천하려는 스스로의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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