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은적사의 유래

비슬산 은적사는 신라 55대 경애왕 3년<고려 태조8년>에 창건된 유서깊은 천년고찰로써 대구지역 불자들의 정신적인 귀의와 기도처로 유명하다.

후삼국시대 말 후백의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여 국운이 위태롭게 되자 경애왕은 고려왕건에게 청병하였다. 왕건은 구원병을 이끌고 달구벌(현 대구)에 입성하여 공산전투에서 견훤에게 대패한 후 왕건은 명장 신숭겸의 지략으로 구사일생 비슬산으로 피신하여 이곳 은적굴에 3일간 숨어 지냈다.
마침 3일간 짙은 농무로 굴의 자취를 찾기 힘들었고, 굴의 입구는 거미들이 줄을 쳐주어 안전하게 피신한 왕건은 훗날 김천 황악산을 경유해 강원도 철원으로 회군하였다.
그 뒤 왕위에 오른 왕건은 자신이 숨어 3일간 보낸 굴이 있는 곳에 당시의 고승 영조대사에게 명하여 이곳에 사찰을 건립하고 자신이 숨어 생명을 건진 곳이라하여 숨을 은(隱)자, 자취 적(跡)자로 명명하였고 이후 은적사는 많은 불자들의 소원을 성취한 기도영험사찰로써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