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문화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1.가람의 기원과 역사

관리자 | 2006.03.14 05:36 | 조회 1006

1.가람의 기원과 역사

‘伽藍(가람)’은 부처님이 태어나신 인도에서 오래 전부터 ‘절’이란 뜻으로 써오던 말이다.
옛날부터 사용해오던 고대 인도어를 ‘범어(梵語)’ 또는 ‘산스크리트(Sanskrit)’라고 하는데 ‘가람’은 바로 산스크리트의 ‘상가람마(Sam·gha-ra-ma)’를 소리나는 대로 한자어로 번역한 ‘승가람마(僧伽藍摩)’를 줄인 말이다. 즉 ‘승가’는 ‘대중’을 의미하며, ‘람마(藍摩)’는 ‘원(園)’이란 뜻인데 이를 줄여 ‘가람’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가람은 승가[大衆佛子]들이 한데 모여 불도를 닦는 사찰(寺刹)을 의미하며, 승원(僧園)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초기의 사찰은 부처님께서 생전에 기거하시던 기원정사(祇園精舍)나 죽림정사(竹林精舍)였다고 볼 수 있으며, 부처님이 입적하신 뒤에는 부처님의 탑을 중심으로 불교 가람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커다랗고 둥근 탑과 탑을 두른 담장 그리고 사방의 탑문 등, 웅장한 규모와 성스러운 장식으로 세워졌다. 사방의 탑문에는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나 생전의 행적을 일러주는 여러 가지 조각 그림이 등장하고, 담장 안의 탑 둘레에는 계단과 탑돌이 길을 마련하여 그 당시부터 ‘우요삼잡(右繞三餓)’ 즉, 탑을 오른쪽으로 세 번 도는 관습이 생겨났다.
그리고 탑은 사찰의 중심건물로 계속 세워지면서 하나 둘씩 부속건물을 갖추어 이른바 가람을 형성했다. 탑과 가람의 형태도 불교를 받아들인 지역과 나라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했다.

직지사 대웅전앞 삼층석탑 선정사 낙가사 극락전

이렇게 탑과 승원이 어우러진 종합 사원이 형성되었으며, 탑과 승원이 복합된 형식은 대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원래 승원만 있던 곳에 불탑을 조성한 경우와 원래 불탑이 세워진 곳에 승원을 덧붙인 경우, 그리고 처음부터 탑과 승원을 함께 설계해서 완전한 종합 불교사원으로 건립한 경우이다.
후대에는 처음부터 종합 사원으로 출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반드시 탑이 있어야만 가람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라 말부터 특히 산지의 가람에서는 탑 없이 배치하다가, 고려 이후 조선시대에는 탑이 사원에서 자취를 감추거나 외곽지대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았다. 탑이 예배의 주요 대상일 때부터 탑은 사원의 중심이 되었고, 그 뒤 불상이 예배 대상으로 출현하자 불상을 봉안한 불전(佛殿), 즉 금당(金堂)도 탑과 같이 중시되어 탑과 금당이 병립했다.
그러나 불상이 불교신앙의 주체로 존숭받게 되면서부터는 금당이 주가 되고 탑은 종이 되는 식으로 사원 형식이 변한다. 가람의 형식을 구분하는 데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은 탑을 이용한 방법이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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