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부처님이야기─세간살이를 보이다(18)

관리자 | 2007.04.09 10:21 | 조회 926
세간살이를 보이다 부처님의 교화는 바다와 같이 위로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군왕으로부터 아래로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삶을 유지하는 가난한 사람에게까지 그 자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이라고 한다. 중생의 근기와 개성이 각각 다르고,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각기 다름을 의미한다. 즉 중생의 업력이 다르듯이 그 업력을 정화하는 방법도 다양함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전해진 법이 없는 것을 이름하여 아뇩다라삼약삼보리라고 한다. 그렇지만 수천 갈래이 강물이 각기 흐름을 달리 하더라도 바다에 들어가면 한 맛이듯이 법문(法門)을 통해 얻어 누리는 깨달음의 경지는 하나인 것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사업가로서 가야할 길이 보이시고, 근로자에게는 임금을 받는만큼 성실하고 창의적으로 일해야 할 근로정신을 일깨우셨다. 부모로서 자식을 바르게 가르쳐야 할 부모의 책임을 말씀하시는가 하면, 자식은 자식으로서 부모를 대해야 할 효도의 길을 열으시기도 하였다. 남편의 길, 아내의 길이 있으며, 시부모를 모시는 며느리의 마음 자세를 설하시기도 하셨다. 스슬이 제자를 가르치는 사도를 보이시고, 제자가 스승 앞에 정성을 다해 공경해야 할 제자의 도리를 일러 주셨다. 친구와 친구간에 지켜야 할 의리와 믿음을 낱낱이 말씀하셨으며, 일가 친척끼리 나누어야 할 마음가짐을 말씀하시기도 하였다. 부처님의 말씀이 이렇게 다양해지는 것은 부처님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 누구이냐에 따라 그 사람이 바르고 옳게 살아가는 중도(中道)의 길을 보이시기 때문이다. 진리란 출가자에게만 열려 있는 것도 아니며 재가자에게만 보임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가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구도의 다양한 과정을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善財童子)가 53명의 선지식을 골고루 방문하여 맨 마지막에 보현보살의 10가지 큰원을 듣고,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왕생하므로 법계에 들어감(入法界)을 엿볼 수가 있다.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시작하여 보현보살의 행원으로 끝을 맺고 있다는 것은 '아는 것'<智)으로 시작하여 마침내 아는 것만큼 '실천하는 것'(行)으로 종교적 구도행이 성취된다는 것을 보이시는 것이다. 또한 53선지식을 골고루 방문하는 것은 깨달음의 길은 중생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마다 전개되는 것이지 특수한 장소나 특정한 사람에게 어느 한 시기에 열려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라도 얻어지는 길임을 상징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상적으로 백성을 다스려 정치하는 사람을 전륜성왕이라 말한다. 출가한 수행자의 상징을 법왕으로서 부처님이라면 세간의 상징으로서는 전륜성왕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탄생하실 때 이 두 가지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였다. 전륜성왕이 가야할 길에 대하여 부처님은 여러가지로 말씀하셨으나 모두가 <법에 의하여 법답게 백성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법에 의하여 다스리고 임금이라 할지라도 그 법을 어겨서는 안된다'고 하시니, 만약 법을 넘어서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폭군이요, 독재를 초래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다만 바른법으로 다스릴지언정 편견과 독단에 빠지지 않아 나라안에 법답지 못한 행동이 없게 하라'고 하시는가 하면 '자비로 백성을 길러 어버이가 아들을 살피듯이 하여야 백성 또한 임금을 어버이 모시듯이 할 것'이며 임금이 바르게 정치할 때 나라는 풍성하여지고 재산을 감추지 않을 것이므로 임금은 반드시 10선행(十善行)을 닦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위 사람이 모범을 보여야 아래 사람들이 본받는 것이지 자기들은 편의대로 하면서 아래 사람들한테만 잘하라는 것은 하나의 요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 세상에는 탐욕심에 의하여 사유재산의 소유에 관한 경쟁심이 자연스럽게 생겼으나 점차 이기심으로 흘러 사유재산에 대한 침범자가 발생하게 되었으므로, 여기에서 발생하는 싸움을 공평하게 처리하여,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하여 시민적 합의에 의하여 덕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선출하여 지도자로 삼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선출된 사람은 평등하게 일을 처리하여야 한다는 뜻에서 평등주(平等主)라고 이름하며, 이 평등주의 생활은 자기를 선출해 준 사람들이 내는 세금으로 생활한다. 이 평등주를 선출하고서 대중이 모여 평등주를 향하여 말한다. "우리들이 지금 당신을 평등주로 세우고자 하는 것은 인민(人民)을 잘 보호하여 착한 자를 상주고 약한 자를 벌주라는 것이다. 우리들이 함께 할당하여 당신의 생활을 서로 도울 것이다." 이러한 백성들의 요펑을 받아들여 상주어야 될 사람은 상을 주고 마땅이 벌해야 할 사람을 벌할 때 비로소 <민주>라는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법도를 세워야 한다. 그렇다고 편의대로, 새법을 마구 만들라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라에 옛법이 있으면 쉽게 그것을 고쳐서는 안된다'하였으며, 새로운 법을 세울 때라도 반드시 법을 의지하되, 뒷 골목에서 몸파는 여인에서부터 왕자나 대신들은 물론 수행자나 금수에 이르기까지 법으로 법답게 가르치고 보호하여야 한다. 그리고 법을 잘 살펴 마땅히 실행하여야 할 것은 곧바로 실행하고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은 미련을 두지 말고 버려 노인과 고독한 사람들을 잘 받들어야 할 것이며, 가난한 사람이나 어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물리치지 않아야 한다. 법답게 하지 않고 자기의 편의대로 나라를 다스리고 전통과 관습에 의한 옛법을 존중하지 않으면 그 정치가 공평하지 못하여 나라가 원망과 다툼으로 가득하여 백성은 지치고 국토는 피폐하게 된다. 여기서 당시의 정치제도를 간략히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의 정치는 공화정치였다. 의정기관으로서 종족의 전체집회(samiti; sabha)가 있었고, 여기서 선출된 왕이 평상시에는 공화제에 의한 행정을 하고, 전쟁등의 비상시에는 왕이 획일적인 통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신의 불교 교단을 상가(samgha)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합의에 집단'임을 뜻하는 것이었고, 상가라는 것은 불교교단이 생기면서 처음으로 생긴 단체가 아니라 그 이전부터 있었던 이상적인 단체의 모형으로 비쳐진 집단이라 할수 있다.  그것은 때로는 상공업자들의 모임이나 정치단체를 지칭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한 이상적인 단체를 불교에서는 받아들였고 그 이상을 잘 실현해 나간 곳이 불교교단이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중이라는 말을 마하상가(maha-samgha)라고도 하고 마하사바(maha-saba)라고도 하는 것을 보아 상가의 조직이나 운영은 당시의 공화정치제도에 근거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의 결정이나 수계같은 것을 결정할 때 동의안을 말하면 그 안건에 대하여 이의가 없는가를 3회에 걸쳐 대중에게 묻고 이의가 없으면 3번째 말한 것을 결의안으로 삼는 것을 흔히 백사작법(白四作法) 또는 백사갈마(白四褐磨)라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없거나 긴급할 때에는 동의안에 대하여 1회만을 묻고 결정하는 것을 백이작법(白二作法)이라 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율장에 흔히 보이는 것이며 포살의식 때에도 이러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당시의 회의 진행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이다. 법에 의한 정치를 하여야 한다는 생각은 대승불교 경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왕(지도자)은 모순되고 불합리한 법을 없애도록하여 악업의 발생을 막아야 하며, 정법을 등지고 악법으로 다스리면 이는 옳지 못한 법을 만드는 것이 되어 악당이 서로 침해하여 왕위가 오래가지 못한다고 하며, 악법으로 많은 백성이 법답지 못하게 죽어가며, 각료들이 헛된 생각을 품어 비법을 행하고, 그러한 비법자를 사랑하고 보호하면서 옳은 사람들을 고통당하게 하면 시절이 뒤숭숭해지므로, 설사 왕위를 잃고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악법을 멀리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부처님 당시 한때 잘못된 욕심으로 국왕인 아버지 빈비사라왕을 해치고 왕위를 찬탈했던 아사세에게 먼저 웃사람이 모법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시면서 말씀하셨다. "만약 만인의 위에 있는 임금이 올바른 이치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으면 재상들이 법답지 못하게 행동할 것이고, 재상들이 법답지 못하게 될 때 왕이나 태자도 법답지 못하게 행동할 것이며, 태자가 법답지 못할 때 군신들과 모든 관리들이 법답지 않게 행동할 것이다. 관리들의 행동이 바르지 않을 때 나라안의 모든 백성들마저 법답지 않은 행동을 일삼을 것이오, 그리하여 모든 시절 인연마저도 질서가 없어 농사마저 되지 않을 것이오. 그러므로 임금이 올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 나갈 때 재상에서부터 백성 나아가 시절 인연마저도 조화를 이루어 재앙이 빈발하지 않고 나라가 번영하게 될 것이오." 라고 하시면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치 목동이 소떼를 몰고 물을 건널 때 목동이 바르지 않으면 모든 소가 바르게 건너지 못한다. 이는 목동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생들도 이와같아 무리가 있으면 반드시 지도자가 있는 것. 지도자가 법답지 못하면 아래 사람을 말해 무엇하랴. 모든 백성이 고통받는 것은 왕의 정치가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니 백성이 고통받는 것은 왕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위 자리의 왕은 바르게 정치하고 바르게 가르쳐 모든 백성을 편하게 해야 할 따름이니져!"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젊은 바라문 「을사가」라는 사람이 와서 재가 생활을 모범적으로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고 물었다. "바라문이여, 네가지 법을 지켜 재가한 속인으로서 법답게 안주하여 즐겁게 살아야 한다." 고 하시면서 가정을 거느리고 재물을 모아야 할 사람의 마음자세를 말씀하셨다. 농부로서 논밭을 일구든가, 상인으로서 장사하든가, 관리가 되어 공무를 집행하던가, 서기가 되어 남의 재물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어 각기의 지기업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여야 한다. 이것을 방편구족(方便具足)이라 말한다. 자신의 노력으로 법답게 얻은 재물은 관리를 잘 하여야 한다. 세도가나 강도에게 빼앗기지 않아야 하며 화재나 홍수의 피해를 예방하여야 할 것이며, 착하지 못한 사람에게 맡겨 도둑맞지 않아야 한다. 이것을 재산의 지킴이라 한다. 법도를 어기지 않고 게으리지 않으며 남에게 속거나 속이지 않아 근심이 생기지 않게 하고, 근심이 생길때는 빨리 벗어나 기쁨을 잃지 않게 하여야 한다. 이것을 재물에 대하여 잘 아는 것이라 말한다. 소유한 재물의 출납을 잘 관리 하여 세입과 세출을 저울눈 다루듯이 맞게 하여야 한다. 공연히 재물을 낭비하거나 쓸모없이 지출하지 않아야 한다. 더구나 재물을 지키기만 하여 탐욕심에 깊이 빠져 수전노가 되어 남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을 바른 생활이라 말한다. 한때 코살라국 승림원에서 그 지역의 재가불자인 거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양심적으러 벌어 수전노가 되는 사람이 있고, 비양심적으로 재물을 모아 이기주의자가 되는 사람이 있으며, 비양심적으로 벌었으나 재물답게 쓸려는 사람도 있다. 법을 지키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여 적당히 재물을 모아 수전노가 되는 사람이 있고, 적당히 벌었으나 이기주의자가 되는 사람이 있고, 적당히 벌었으나 보람있게 쓸려는 사람도 있다. 비록 양심적으로 재물을 모았으나 수전노가 되는 사람이 있고, 양심적으로 벌었다해서 이기주의자가 되는 사람이 있으며, 양심적으로 벌어 보람있게 쓰려고는 하지만 자신의 명예와 보이지 않는 이익을 바라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재물이란 양심적으로 벌었다 해도 자기와 남을 위해 보람있고 가치있게 쓰되 자기의 선행에 대하여 보상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11종류의 사람 가운데 비양심적으로 벌어 수전노가 되는 사람은 가장 못난 사람이 되고, 적당히 벌어 보람있게 쓸려는 사람은 그래도 욕심의 세상에 사는 사람 가운데서는 좀 낫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양심적으로 재물을 모았더라도 보람있게 쓰면서 보상이나 댓가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가장 훌륭한 사람이요,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된다고 하시면서 게송으로 알려 주셨다. "법답지 않게 재물을 모으거나 적당히 재물을 모아 지키기만 하느라 이웃이나 삼보를 위해 베풀지도 못하고 복받기를 바라는것은 악행이요, 천박한 짓이다. 법답게 땀흘려 재물을 모았다 해도 남을 위해 베풀 줄 알고 공양올려 복을 바라는 것은 덕있는 사람의 훌륭한 길이다.  만약 욕심을 벗어나는 지혜로움을 얻으면 비록 욕심속에 살더라도 재물에는 재앙이 따름을 보아 재물을 쓰되 근검절약하며 만족을 알아 기쁨을 누린다"고 하였다. 경제 생활은 근검 절약하여 빌려 쓰지 않아야 한다.  채무를 지는 것은 하나의 괴로움이다. "남의 돈 빌려쓰는 것은 고통이다. 빌린 돈 이자 늘어나니 괴롭고, 제때에 갚지 못하니 괴로우며, 빛 갚으라고 독촉받으니 괴로우며, 채권자에게 구속당하니 괴로움이다." 재가의 생활에는 반드시 재물을 가져야하는 것이므로 떳떳한 경제새활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분야에 대하여 열심히 공부하여 통달하여야 할 것이고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법을 지키며 재물을 모으되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듯 순리에 따르고, 개미가 집을 짓듯이 부지런하게 하여야 한다. 이기주의에 빠져 탐욕에 치우치지 말고, 지혜롭게 선행을 쌓으며, 자기가 소유한 재물에 대하여 관리를 잘 하여야 한다. 이렇게 모은 재물은 노인이나 ㅓㄹ리 국경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위탁하지 말고, 간교한 사람이나 너무 인색한 사람을 믿고 맡기지 않아야 한다. 재산을 4등분하여 하나는 처자권속들의 생활비로 쓰고 두 몫은 자기의 사업을 경영함에 쓰고, 나머지 한 몫은 저축하였다가 어려울 때 대비하라고 하였으나 부자의 경우는 달리 말씀하셨다. 즉 부호로서 대대로 내려오는 사람은 재산을 4등분하여 한 몫은 항상 이자를 늘려 가업을 번창케하고, 한 몫은 매일매일의 가정 사람에 넉넉히 쓰고, 한 몫은 가난하고 어려우며 고독한 사람들(수행자)에게 베풀어 복덕을 닦고 나머지 한 몫은 일가 친척이나 오가는 나그네를 위하여 쓰라고 하였다. 부처님은 코살라국의 파사익왕에게 "현자는 가난하나 임금은 부귀한것이 있고, 임금은 가난하나 현자는 부귀한 것이 있다'라는 말씀으로 일깨워 주어 스스로 자신이 탐욕스럽고 교만했음을 참회하고 부처님 앞에서 약속하였다. 자기의 창고에 있는 재물을 3등분하여 하나는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받들어 공양하고 보시하며, 하나는 사위성 안의 모든 가난하고 의탁할 곳이 없는 고독한 사람들에게 베풀어주며, 나머지 하나는 나라에 쓰겠다고 하였다. 보통 사람들이 재산을 늘리지 못하고 점점 줄어가는 것은 술에 탐익하고, 장기 바둑등의 오락에 빠지고 그리고 게으름이라 하시면서 재물을 쌓아감에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중요시하여야 할 것'이라 하시며 마치 벌이 많은 꽃을 오가면서 꿀을 모으는 것처럼 나날이 늘리되 낭비가 없어야 한다고 하셨다. 사위성에서 많은 대중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가난이 괴로움이다. 가난에서 오는 고통이 가장 무거우므로 죽는 괴로움과 가난의 괴로움은 다를 것이 없다. 차라리 죽는 괴로움을 받는다 생각하고 힘써 노력하여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셨다. 사람이 부자로 되는 길은 남들이 보시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기뻐하고 보시하기를 좋아할 때 부귀를 누리는 곳이고, 남이 보시하는 것을 못하게 하거나 스스로 보시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빈천으로 가는 길이므로 '마땅이 보시를 배워 탐욕에 빠지지 말라'고 하였다. 보시를 하되 때를 가리지 말고 수시로 하며, 받는 사람의 더럽고 깨끗함을 가리지 말고, 자기의 손으로 직접하여 교만한 마음을 없게 하며, 대가를 바라지 말고 버리듯하며, 죽은 다음에 천상의 과보를 받을 것이라고 매달리지 말고, 자기를 위하기보다는 모든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서원하며 보시할 때 가장 뛰어난 보시가 되며, 불보살의 칭찬을 누릴 것이며, 살아서 과보를 받을 것이며, 죽은 다음에 하늘의 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고 하셨다. * 용화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4-0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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