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은 네 가지를 좋아한다. 젊음과 건강과 장수와 은애를 좋아한다. 또 네 가지를 싫어한다. 늙음과 병듦과 죽음과 은애가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누구도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 사실을 깨닫고 거룩한 계율과 삼매와 지혜와 해탈의 도를 배우면 생로병사의 뿌리를 끊고 다시는 후생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나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는 고요한 열반을 성취하도록 하여야 한다.”
<증일아함 18권 ‘사의단품(四意斷品)’ 제6경>
인간은 낡고 부서진 수레처럼 누구든 생로병사 피할 수 없어 속절없이 지나가는 허무한 삶 후회 없는 인생으로 가꿔가야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하는 농담 가운데 하나. “나이 50이 넘으면 배운 여자나 못 배운 여자나 똑 같다. 60이 넘으면 화장한 여자나 안한 여자나 똑 같다. 70이 넘으면 남편 있는 여자나 없는 여자나 똑 같다. 80이 넘으면 돈이 있는 여자나 없는 여자나 똑 같다. 90이 넘으면 죽은 여자나 산 여자나 똑 같다….”
이 농담은 은근하게 여성들의 미모나 성적 매력에 관한 것을 주제로 삼는 것이어서 점잖지는 않다. 농담의 대상을 여성에게만 적용하는 것도 객관적 진실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의 경우도 이 비유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농담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인생의 나이 듦과 삶의 허무’에 대한 것이다.
시간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고 한다. 10대의 시간은 10km로 가지만 20대는 20km... 50대는 50km, 70대는 70km로 달린다는 것이다. 이런 비유는 나이든 사람일수록 실감한다. 세월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달려서 이르는 종착역은 무덤이다. 부처님조차도 당신의 늙은 육신을 바라보며 ‘낡고 부서진 수레’에 비유하는 장면은 우리를 쓸쓸하게 한다.
문제는 이렇게 늙음과 병듦과 죽음에 직면한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처럼 계속 미워하며 욕심 부리며 살아갈 것인가, 화해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것인가. 살아갈 날은 적고 죽을 날은 가깝다. 각자가 알아서 결정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