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경진비유설화─전쟁의 참상과 그 결말

관리자 | 2007.07.10 09:48 | 조회 1184

      전쟁의 참상과 그 결말 *** 인과로 인해 계속되는 살육 석가족 멸망 전쟁 과보 증명 뮤지컬 오페라로 공연하면 교훈 얻고 포교성과도 클 것 부처님이 바라나시 사슴동산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그 무렵은 부처님도 성도한지 얼마 안 되었고 코살라국의 파세나디 왕도 새로 왕위에 오른 직후였다. 왕은 이웃나라와 친교를 맺기 위해 카필라국에 사신을 보내 청혼을 했다. 청혼을 받은 카필라는 곤경에 빠졌다. 순수한 혈통을 지키려면 왕족을 보낼 수 없고, 청혼을 거절하면 보복이 두려웠다. 이때 카필라의 왕족인 마하나마에게는 여종과의 사이에서 난 비사바카티야라는 처녀가 있었다. 마하나마는 그녀를 아름답게 단장시켜 시집을 보냈다. 그녀는 곧장 임신을 해서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름을 비루다카(毘琉璃)라도 했는데 얼굴은 단정하고 머리는 총명했다. 비루다카는 8세쯤 되었을 무렵 무술을 연마하러 외가인 카필라로 갔다. 그때 카필라에서는 강당을 새로 짓고 부처님을 초청하여 설법을 들으려고 했다. 아직 철부지였던 비루다카는 시종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가 놀다가 부처님이 앉을 높은 사자좌에 앉았다. 이를 본 카필라 사람들은 화를 내며 ‘역시 종년을 자식이라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비난했다. 비루다카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것도 충격이었지만 ‘종년의 자식’이라며 모욕을 당한 것이 더욱 분했다. 파세나디 왕이 죽자 비루다카가 왕위에 올라 군사를 일으켰다. 이 소식은 곧 부처님에게도 전해졌다. 부처님은 비류왕이 카필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마른 나무 밑에서 명상을 하고 있었다. 비류왕이 ‘잎이 무성한 니그로다 나무도 있는데 마른 왜 마른 나무 밑에 앉아 계시냐?’고 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친족의 그늘이 남보다 낫기 때문이요.” 왕은 부처님의 뜻을 알고 군사를 돌렸다. 그러나 얼마 뒤 다시 군사를 일으켰다. 부처님은 다시 비류왕을 만류하고 군사를 되돌리게 했다. 그 뒤 왕이 다시 군사를 일으키자 부처님은 ‘전생의 업보란 하늘로 옮길 수도, 쇠그물로 덮을 수도 없다’고 한탄했다. 비류왕은 군사를 몰아 카필라를 공격했다. 수많은 카필라 사람들이 코살라의 군사들이 몰고 온 코끼리에 밟혀 죽였다. 참극을 보다 못한 카필라의 왕은 비류왕에게 ‘내가 연못에 들어가 있는 동안은 살육을 멈춰 달라’고 했다. 당시 카필라의 왕은 부처님의 사촌동생이자 비류왕의 외할아버지인 마하나마였다. 왕은 연못 속에 들어가서 나무뿌리에 머리를 묶고 시체가 떠오르지 못하게 해다. 그 사이에 많은 석가족이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카필라를 멸망시키고 돌아가던 비류왕은 니그로다 동산을 지나가다가 도망친 카필라의 여자들을 만났다. 왕은 술에 취해 그중 한 여인을 불러 희롱하려고 하다가 거절당했다. 화가 난 왕은 숨어있던 카필라의 여자들을 다 죽이고 말았다. 전쟁에서 승리한 비류왕은 드디어 개선했다. 그런데 궁으로 돌아와 보니 제타태자는 유흥을 즐기고 있었다. 비류왕이 힐책을 하자 태자는 ‘차마 사람을 죽일 수 없어서 전쟁에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화가 난 왕은 칼을 빼서 그 자리에서 왕자를 베고 말았다. 하지만 비류왕의 이런 악행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전쟁이 끝 난 뒤 시녀들을 데리고 아틸라 강에서 연회를 하던 왕은 갑자기 비가 내린 비로 홍수를 만나 물에 빠져 죽었다. 벼락이 쳐서 궁궐은 불에 타고 말았다. 개선하지 이레만의 일이었다. 살육의 과보였다. <증일아함> 26권 등견품(等見品) 제2경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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