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경전비유설화 ─자주 설법을 청해 듣는 이익

관리자 | 2007.07.13 08:50 | 조회 1067
      자주 설법을 청해 듣는 이익 부처님이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부처님은 수행자들에게 자주 설법을 청해 듣는 이익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다. “자주 설법을 청해 들으면 다섯 가지 이익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 공덕인가. 첫째는 일찍 듣지 못한 것을 들을 수 있다.(未曾聞者便得聞之) / 둘째는 이미 들은 것은 외울 수 있다.(鎰聞者重諷誦之) / 셋째는 소견이 삿된 곳으로 기울어지지 않는다.(見不邪傾) / 넷째는 여우처럼 의심하던 것이 사라진다.(無有狐疑) / 다섯째는 깊고 깊은 뜻을 바르게 이해하게 된다.(卽解甚深之義) 자주 설법을 청해 들으면 이와 같은 다섯 가지 공덕을 얻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자주 설법을 청해 듣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라. 이렇게 하는 것이 바르게 수행하는 길이니라.” <증일아함> 28권 청법품(聽法品) 제1경 법문 들으며 자기 돌아봐야 그릇된 생각에 기울지 않아 ‘가르침’ 이해하는 지혜 늘고 바른길 걷고 엉뚱한 짓 안해 경전에 보면 자주 ‘다문제자(多聞弟子)’라는 말이 나온다. 설법을 많이 들어 아는 것이 많은 제자라는 뜻이다. 여기서 ‘많이 안다’는 것은 단지 지식이 많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설법을 많이 들어서 삿된 소견에 기울지 않고 지혜가 많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다문제일 (多聞第一)은 아난다(阿難)였다. 그는 부처님이 55세가 되던 때부터 열반할 때까지 25년간 항상 지근거리에서 시봉하면서 가장 많은 설법을 들었다. 그런 만큼 그는 번뇌가 적고, 삿된 소견에 기울지 않았으며, 교법을 바르게 이해하는 지혜가 뛰어났다. 부처님이 열반에 든 후 경전을 편찬할 때 아난존자의 다문과 뛰어난 기억력은 큰 역할을 했다. 대부분의 경전은 그의 기억을 되살려서 재구성된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이런 의문을 제기할 지도 모른다. ‘설법만 자주 듣고 경전만 많이 읽어서 아는 것이 많다고 과연 번뇌가 적어지고 열반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많이 아는 것과, 아는 것만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아는 것이 적어도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 많다. 그런가 하면 아는 것이 많아도 인품이 보잘 것 없는 사람도 많다. 지식과 인품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일부 특수한 경우를 일반화하는 것은 균형 잡힌 사고가 아니다. 만약 많이 배우고 지식이 많은 것이 인격을 도야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그토록 독서와 교육을 강조할 이유가 없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나쁜 짓을 더 많이 한다는 말은 기대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지 평균적으로 더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교육을 많이 받고 종교를 믿는 사람일수록 더 나쁘다면 이 세상에서 교육이나 종교를 없애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억지주장이다. 무식의 악덕은 모든 훌륭한 공덕을 무너뜨린다. 무식한 사람일수록 억지를 쓰고 힘에 의지하려고 한다. 남에게 해를 끼치고 죄만 짓는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주 듣고 업보론의 교리를 제대로 안다면 그런 인생을 살겠는가. 설법을 많이 듣고 경전을 자주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바른 길을 가게 된다. 지혜가 있으므로 삿된 생각과 엉뚱한 짓을 하지 않는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려면 북쪽으로 가야지 남쪽이나 동쪽 서쪽으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리석은 중생이다. 오늘 착하다가도 내일 다시 나쁜 짓을 할 지 모른다. 그런 일은 반복하지 않으려면 자주 설법을 들어야 한다. 법문을 들으면서 자기를 돌아보아야 한다. 평생을 수행한 큰스님도 왜 매일 예불하고 자주 경전을 읽겠는가.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홍사성 〈불교평론〉 편집위원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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