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경전비유설화─막무가내로 닥쳐오는 불행

관리자 | 2007.08.05 02:21 | 조회 981

막무가내로 닥쳐오는 불행 부처님의 제자 나가바라(那伽波羅) 존자가 녹야원에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존자와 어릴 적부터 친한 친구였던 바라문이 찾아왔다. 그는 존자와 인사를 나누고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행복한 사람 중에서도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하는가? 혹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나는 지난 이레 전에 아들을 일곱이나 잃었네. 그들은 모두 용맹스럽고 제주가 많았고 지혜는 따를 자가 없던 애들이었지. 엿새 전에는 일꾼 열둘을 잃었네. 그들은 모두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은 사람들이었네. 닷새 전에는 네 형제를 잃었네. 그들은 온갖 기술에 익숙한 아까운 형제들이었네. 나흘 전에는 부모를 잃었네. 나이가 백세가 넘은 분들인데 나를 버리고 먼저 가셨네. 사흘 전에는 두 아내가 죽었네. 그녀들은 얼굴이 아름답고 뛰어난 미인들이었네. 또 어제는 집안에 있는 여덟 개나 되는 보물창고가 다 사라졌네. 내가 최근에 당한 이런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네. 그러나 그대는 그런 재앙에서 일찌감치 떠나서 다시는 근심과 걱정을 하지 않고 오직 도를 닦으며 살아가니 어찌 행복한 사람 중에서도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자네라면 혹 그런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지 않았는가?” “나도 그들을 죽지 않게 하려고, 또 재물도 잃지 않으려고 온갖 애를 다써보았네. 때에 따라 보시도 해서 공덕을 지었고, 하늘에 제사도 지내고, 늙은 바라문을 초청해 공양도 했네. 귀신을 달래려고 주문도 외우고, 별을 보고 점도 쳤고, 온갖 약도 만들어 먹고, 맛난 음식도 곤궁한 이들에게 보시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노력을 다했네. 그렇지만 끝내 그들의 목숨을 건질 수는 없었네. 그래서 묻네. 어떻게 해야 이런 고통을 없앨 수 있겠는가?” 이에 나가바라 존자는 게송으로 대답했다. “은혜와 사랑은 무명의 근본 / 온갖 고뇌와 우환을 일으키나니 / 그것이 사라져 남음이 없도록 하면 / 다시는 고통이 없으리라. (恩愛無明本 興諸苦惱患 彼滅而無餘 便無復有苦)” 그는 이 말을 듣고 비록 늙었지만 출가하여 수행하기를 청했다. 존자는 그의 머리를 깎고 법복을 주어서 집을 나와 도를 닦게 했다. 존자는 그에게 자신의 머리털과 손톱과 이빨과 피부와 골수와 창자와 몸뚱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지에 대해 관찰하도록 했다. 그는 한적한 곳에 가서 시키는 대로 명상을 하여 할 일을 다 마치고 후생의 몸을 받지 않게 될지를 아는 아라한이 되었다. - 증일아함 35권 막외품(莫畏品) 제2경 지난날 돌아보면 부질없는 인생 흐르는 세월앞엔 쓸쓸하고 허망 과도하게 은애에 집착하지 말고 외부 아닌 내면 만족해야 ‘행복’ 이 세상에서 우리 인생처럼 허망한 것이 또 있을까. 나이가 웬만큼 들어 지난날을 돌아보면 부질없기 짝이 없는 것이 인생이다. 한때 우리는 얼마나 젊고 아름다웠는가. 희망은 얼마나 많았는가.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은 또 얼마나 많았는가. 하지만 흐르는 세월, 변하는 세상 앞에 쓸쓸하고 허망하게 무너져가는 것이 또한 우리 인생이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의 뒷면에 불행이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모든 것이 영원할 것으로 믿고, 늙지 않고 죽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한번 잡은 것은 죽어도 놓지 않으려고 집착한다. 거기에서 무리한 일을 생기고 온갖 고통이 만들어진다. 불교가 가르치는 행복의 방법은 무엇이든 과도하게 은애(恩愛)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차피 모든 것은 변해간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그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기란 매우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고는 방법이 없다. 행복이나 불행은 외부적 조건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 만족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 홍사성의 마음으로 읽는 부처님 말씀 -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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