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경전비유설화─ 아지랑이에 집착하는 인생

관리자 | 2007.06.04 09:56 | 조회 561

***아지랑이에 집착하는 인생***

    부처님의 제자 나라타존자가 파탈리풋타에 있는 어느 장자의 숲에 있을 때의 일이다. 그 무렵 문다 왕의 첫째 부인이 목숨을 마쳤다. 부인을 매우 사랑했던 왕은 시신을 기름에 담가 옆에 둔 채 떠나보내지 않았다. 왕은 슬픔에 겨워 할 일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었다. 왕의 신하 중에 선념(善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선념은 왕에게 나라타존자를 소개했다. 왕은 나라타존자를 찾아가 설법을 청했다. 존자는 왕을 위해 이렇게 설법했다. “대왕은 알아야 합니다. 꿈이나 허깨비, 물거품 같이 아무리 붙들어놓으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다섯 가지 있습니다. 유한한 것이 무한하기를 바라는 것, 사라질 것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 늙어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 늙지 않기를 바라는 것, 병들 수밖에 없는 인생이 병들지 않기를 바라는 것,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대왕은 알아야 합니다. 유한한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성현의 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잃은 것은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 없어질 것은 반드시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성현의 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없어진 것은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영원할 것’이란 환상에 빠져 남 속이고, 미워하고, 해치면 인생은 우습고 불쌍한 존재에 불과 또 늙어갈 몸은 반드시 늙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성현의 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늙어가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 병들어갈 몸은 반드시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성현의 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병이 든 것은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 죽을 목숨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성현의 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죽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일은 나에게만 있다고 생각하고 근심하고 걱정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친척들을 걱정하게 하고 원수를 기뻐하게 합니다. 음식은 소화되지 않고 병이 생겨 그로 말미암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근심과 두려움의 가시를 빼면 생로병사에서 벗어나 다시는 재앙과 고뇌에 시달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설법을 들은 왕은 이 설법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존자는 ‘근심 병 고치기’라고 대답해주었다. 대왕은 기뻐하면서 불법에 귀의해 우바새가 되었다. <증일아함> 제24권 선취품(善聚品) 제7경 오랫동안 불교적 사유를 담은 시를 써온 설악산 오현스님이 얼마 전에 절창이라 할 만한 시 한 편을 발표했다. ‘절벽에’라고 제목이 붙은 이 시는 읽을수록 가슴을 친다.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 우습다 /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할 이 절벽에 /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 우습다 /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아옹다옹해온 것은, 그렇게 하다보면 손에 잡히는 영원한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믿으며 집착해왔던 것 중 무엇이 영원한 것인가. 돈인가, 명예인가, 권력인가, 청춘인가, 사랑인가, 아니면 또 다른 그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그런 것은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것을 붙들려고 여태껏 남을 속이고, 미워하고, 때로는 해치기까지 했다면 우리 인생은 얼마나 우습고 불쌍한 존재인가. 홍사성 /〈불교평론〉 편집위원 -불교신문- Anthem Of Love - Silvard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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