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부처님이야기─석가족의 출가 (13)

관리자 | 2007.04.09 10:15 | 조회 1055
  난타의 출가 세존인 부처님이 도저히 왕위를 계승할 뜻을 보이지 않자, 정반왕은 이복 동생인 난타를 즉위시키려 하였다. 난타는 왕위를 좋아하기도 하였을 뿐 아니라 사랑하는 처녀 「손타리」도 있었다. 그는 출가보다는 세속적인 부귀영화와 아름다운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이 좋게만 느껴져서 출가할 뜻이 전혀 없었다. 어느 날 부처님은 난타에게 은근히 출가할 것을 청해 보았으나 난타는 자기는 세속에 살면서 삼보에 열심히 보시공양이나 올리고 살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방편을 써서 그를 출가시키기 위하여 니그로다 숲으로 이끌고 갔다. 부처님은 난타가 출가의 뜻이 없다는 것을 알고 태자궁으로 갔다가 난타의 권유로 공양을 받게 되었다. 난타가 부처님의 바루를 받아 음식을 담아드리자 부처님은 바루를 받으시지 않으시고 자리를 일어나 나가셨다. 난타는 부처님의 바루를 어찌할 수가 없어 그것을 들고 부처님의 뒤를 따라 궁궐을 나섰다. 곧바로 니그로다 숲으로 가시지 않고 성안의 이곳저곳을 들려 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난타고 출가하려는 것으로 알게 되었다. 난타는 몇 번이고 바루를 부처님께 드리고 되돌아오고 싶었으나 그러지를 못하고 끝내 숲에까지 가게 되었다. 숲에 도착하여 바루를 부처님께 드리고 왕궁으로 되돌아가려 하였으나 부처님의 만류로 머물러 부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출가의 공덕과 과보에 대하여 설법을 들은 난타는 싫지만 거절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출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난타는 화려한 궁궐 생활과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손타리에 대한 애착을 끊을 수가 없었다. 난타의 애착심이 깊다는 것을 아시고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난타를 깊은 산 속으로 이끌고 가서 숲속에 살고 있는 500마리의 원숭이들이 산불이 나서 털이 타버려 흉한 모습을 하고 있는 가운데 손타리를 나타나게 하였다. “난타야, 저 원숭이들과 손타리와 누가 더 아름다우냐?” 대답을 못하고 있는 난타를 데리고 이번에는 500명의 천녀(天女)가 어울려 놀고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손타리를 500명의 천녀 가운데 나타나게 하고 물었다. “손타리와 500명의 천녀는 누가 더 아름다우냐?” “원숭이와 손타리를 비교할 수 없었던 것처럼 천녀와 손타리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저 아름다운 500명의 천녀들과 살고 싶지 않느냐?”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난타야, 그렇게 할 수 있으나 지금 범부의 몸으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나의 가르침대로 청정범행을 닦으면 내가 너를 천녀와 살 수 있게 하여 주마.” 이렇게 하여 난타는 열심히 청정범행을 닦는 비구 수행자가 되었으나 여러 차례의 번민이 계속되기도 하였다. 구족계를 받은 난타는 승가의 질서에 따라 먼저 수계한 비구에게 절을 할 때 문제를 일으켰다. 다른 사람에게는 다 절할 수 있어도 우바리에게만은 못하겠다고 반발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의 태도 또한 완강하였다. “난타야. 불법은 많은 강물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바다와 같다. 바다는 모든 강물을 받아들여도 그 맛은 언제나 하나다. 우리 승가도 계를 받은 순서에 따를 뿐 출가하기 전의 신분이 무엇이었느냐에 귀천은 없다. 사대(四大)가 합해졌을 때 몸이라 이름하지만 그 몸이란 무상하고 텅비어 있어‘나’라고 고집할 것이 없다. 다만 진실하고 성스러운 법만을 생각하고 교만하지 말라.” 부처님의 설득에 난타도 교만심을 꺾고 우바리 앞에서 예배하니 천지가 진동하였다. 정반왕은 둘째 아들이었던 난타의 출가로 또 한번 마음의 충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정반왕도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몰두하여 아픈 상처를 잊으려고 하였다. 그래도 손자인 라후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라후라의 나이가 15살이었다. 라후라는 아버지인 부처님을 따라서 니그로다 숲을 자주 놀러갔다. 그때마다 부처님께서는 라후라를 극진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부처님은 라후라에게 물었다. "라후라야, 너는 나를 따라 출가하지 않을래."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구들아, 나는 이제 사리불을 스승으로 라후라를 출가시키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미 교단의 규율로 만 20세가 되지 않으면 구족계를 주지 못하도록 정하였기 때문에 이제 15살밖에 되지 않은 라후라를 비구로 출가시킬 수가 없었다. 제자들이 의심하고 있는 것을 알고 계시는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모든 비구들아 잘 들어라. 15살에 출가하는 라후라를 사미로 한다.” 불교교단 최초로 사미승은 바로 부처님의 아들인 라후라가 된 것이다. 한편 때가 되어 정반왕은 손자인 라후라가 된 것이다. 한편 때가 되어 정반왕은 손자인 라후라를 찾았으나 궁궐 안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정반왕은 부처님이 있는 니그로다 숲에 사람을 보내어 라후라가 그곳에 있는가를 알아보게 하였다. 심부름을 다녀온 사람의 말을 들은 정반왕은 너무도 충격을 받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한동안 시간이 지나간 다음 다시 정신을 차린 정반왕은 부처님이 있는 니그로다 숲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부처님께 인사를 하고는 호소하다시피 말하였다. “옛날 태자가 태어날 때 아시타 선인이 와서 전륜성왕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출가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나는 항상 걱정을 하였었다. 그러나 태자는 끝내 출가하여 돌아오지 않자 난타를 왕으로 계승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난타마저 출가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손자인 라후라뿐이라서 라후라에게라도 왕권을 이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제 라후라마저 출가하였으니 누구에게 대를 잇는단 말이냐?” 정반왕은 이제 모든 것이 할 수 없는 일이니 앞으로는 부모가 있는 어린 사람들은 출가는 반드시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만 출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하였다. 부처님은 정반왕의 말씀을 따르겠다고 약속을 하고 제자들에게 앞으로는 어린 사람의 출가는 반드시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며 자기 자신이 출가하겠다고 온 사람일지라도 부모의 생존여부를 물어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제자들을 향하여 부모의 은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마땅히 알라.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갚기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부모가 있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또한 오늘이 있기까지 키워주셨다. 그러므로 모든 자식은 부모의 은혜를 갚는데 힘써야 한다.” 부처님께서 키필라국에 머무는 동안 사촌인 발제, 아나율(아나뭇다)난제, 아란(아난다), 그리고 제발달다가 출가하여 정반왕과 석가족을 놀라게 하였다. 그런데 오직 제발달다가 출가하려고 했을 때 부처님은 처음에 출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재가 신도로 있으면서 재산이나 많이 모아 보시로서 공덕이나 지을 것이지 출가하지는 말라고 하였다. 또한 아란이 출가하려 할 때도 부처님께서는 쉽게 허락하지 않으셨다. 아란의 어머니가 출가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뒷날 아란은 부처님을 제일 가까이서 모시는 제자가 되어 다문제일(多聞第一)의 제자가 되었는가 하면, 반대로 재발달다는 부처님을 해치려고 음모를 꾸미는 사람이 되었다. 아나율은 출가하고서도 게으르고 잠을 많이 잤기 때문에 부처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많이 듣고는 두 번 다시 눈을 감지 않으려고 노력하여 끝내 실명을 하였으나 천안(天眼)을 얻게 되었다. 또한 부처님을 어릴 때 키워주셨던 이모 마하파자파티와 아쇼다라도 출가를 원하였으나 부처님을 거절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불교 근본 교설- * 용화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4-07 14:09)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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