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부처님이야기─기원정사(14)

관리자 | 2007.04.09 10:16 | 조회 860
기원정사 부처님은 드디어 정반왕을 교화하여 삼보에 귀의케 한 다음에 다시 마가다국 왕사성의 죽림정사로 오셨다. 이때 코살라국 사위성의 거부 장자이며 무역상인 수달다장자가 무역거래차 왕사성에 오게 되었다. 자기가 묵고 있는 집안 사람들이 밤을 세워가며 잔치준비하는 것을 보고 주인에게 물었다. "혹시 혼인이나 임금을 청하여 공양을 내게 되었습니까?" "혼인날도 아니고 임금을 청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큰잔치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거룩하신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공양을 올리려고 청을 올렸으니 같이 마중가지 않겠습니까?" "나도 부처님이 출현하셨다는 소문은 들은 것 같은데 정말로 부처님을 청하였습니까? 혹시 딴 사람을 청한 것은 아닙니까?" "아니오, 부처님을 청하였습니다." 그날 밤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지내고 이튼날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위엄을 갖추시고 오시는 길로 마중을 나갔다. 수달다는 부처님을 처음 보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부처님께서는 수달다를 보자마자 "수달다여, 잘왔소이다"라고 하시면서 자기의 가문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하셨다. 자기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수달다는 더욱 환희심을 내게 되었다. 공양을 받으시고 여러 가지 법을 설하시는 것을 듣게된 수달다장자는 그 자리에서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았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코살라국의 사위성에도 오실 것을 청하였다. "부처님과 제자들께서 우리나라 사위성에 오셔서 여름 안거를 지내셨으면 합니다." 세 번씩이나 청을 하여도 대답을 하시지 앉자 다시 한번 청을 올리니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그곳에서 여름장마를 피하여 머물 수 있는 조용한 곳이 있느냐?" "세존이시여, 그러한 장소를 선택하실 비구 한 사람과 동행하게 해 주십시오." "너는 누구하고 가기를 원하느냐?" "사리불 존자와 동행하였으면 합니다." 수달다장자는 사리불과 동행하여 사위성으로 되돌아 갔다. 사위성에 가서 부처님과 제자들이 머물기 적당한 장소라고 선택한 곳은 바로 코살라국의 파사익왕의 아들 기타태자의 소유로 되어 있는 동산이었다. 수달다는 그 땅을 사들이기 위하여 기타태자에게 청하였다. 그러나 별로 팔려는 마음이 없었던 태자는 그저 해보는 소리고 내 땅을 살려거든 그 땅위에 금을 깔으라고 하였다. 정말로 금을 깔로 있는 수달다장자의 진진한 모습을 본 태자는 놀라면서 팔 의사가 없다고 거절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분쟁이 생겼다. 수달다 장자는 재판을 신청하였다. 그 결과 처음에 약속한 것이므로 태자는 땅을 팔아야 한다고 결정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가지고 온 금이 모자라 어느 정도의 금이 더 필요하겠는가를 계산하고 있는 수달다장자에게 태자가 은근히 물었다. "수달다장자여, 후회가 되거든 말하시오." "나는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창고의 금을 꺼내 와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부처님과 제자들을 위하여 이렇게 많은 재물을 쓰고 있다는데 정말로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거룩하신 부처님과 제자들을 모시고 법문을 듣고 공양올리고 정사를 지어 헌납하는 것은 결코 아까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달다장자의 굳은 믿음과 환희하는 모습을 본 태자도 감탄하면서 더 이상의 돈을 낼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건물은 수달다장자가 짓고 숲은 자기가 희사하기로 하되 정사의 이름을 '기원정사'로 명명하자고 하였다. 이렇게 합의한 두 사람은 많은 건물과 사용할 물건들을 준비하고, 태자가 지은 정문에 현판하였다. 즉 '기수급고독원'이었다. 기타태자의 숲에다 수살다장자가 고독한 사람들을 위하여 정사를 지었다는 의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정사는 부처님께서 가장 오랫동안 머무신 정사가 되었다. 또한 가장 시설이 완벽하였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이 기원정사에 계실 때 수보리를 제자로 삼았다. 수보리는 원래 성질이 사나워 그와 맞서 싸울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인상이 대단히 험악하였다. 험악한 인상 때문에 그 누구도 어울릴 수가 없어 산으로 출가하였다가 부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기원정사로 찾아왔다. 그는 부처님을 보자 그 거룩한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환희심을 내고 부처님 앞에 예배하였다. 부처님의 전생인과에 대한 법문을 듣고서 깊이 참회하고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얻게 되었다. 부처님의 10대제자 가운데 해공제일(解空第一)의 제자로 불리우게 되었다. 기원정사에 계실 때 부처님의 위력을 두려워한 많은 외도들의 시기와 모함, 도전도 받게 되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출가한 지도 오래되지 않은 사람이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하였을 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에는 아무리 작더라도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 넷이 있다. 임금의 아들, 무서운 독사, 불씨, 그리고 비구는 비록 작더라도 가벼이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고, 코살라국의 임금인 파사익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통력을 겨루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모함과 시비가 진실이 아님을 알게된 파사익왕이 "오늘 이후로는 외도이학(外道異學)들이 국경을 출압하는 것도 허락지 않을 것이며 항상 부처님과 그 제자들만을 궁궐에 모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공양 올리겠다"고 하였을 때 부처님은 오히려 축생들에게 보시하는 것도 복이 되거늘 그들에게 공양하지 않아서야 되겠느냐고 만류하시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악법을 따르지 말고 정법과 선행을 닦아야 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자비한 마음으로 백성들을 외아들 대하듯이 살피시오. 핍박하지도 말고 해치지도 마시오. 사견을 멀리하고 올바른 길을 걸으시오. 교만하지 말고 남을 얕보지 마시오. 임금으로서 너무 권력만을 믿지말고, 간신들의 소리를 듣지 마시오. 임금으로서 너무 권력만을 믿지말고, 간신들의 소리를 듣지 마시오. 왕이라 해도 법을 어기지 마시오. 그리고 법답지 못한 것을 항복받으시오. 단 열매를 따내려면 반드시 좋은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심지 않으면 열매를 딸 수가 없소이다. 선행을 닦지 않으면 훗날 즐거움을 기대할 수가 없으니 스스로 반성하여 악행을 삼가시오. 자기가 지은 것은 반드시 자기가 거두어야 하는 것이므로 자기가 저지른 과보는 이 세상 어디를 가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오. 목숨이 있는 한 죽음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므로 항상 바른 법을 닦아 나아가야 죽음에 이르러 두려움이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소이다. 이 세상은 멈추어 있지 않고 무상하며, 부귀영화와 권력이라는 것도 아침 이슬 같은 것이거늘 어찌 법답지 못한 악행을 일삼을 시간이 있으리오." 파사익왕의 왕비 말리부인도 '애착 때문에 근심걱정과 번뇌망상이 생긴다'는 법문을 듣고 삼보에 귀의하였으며 아유사국의 왕비로 출가한 딸 승만부인도 어머니 말리부인의 권유에 의하여 불법에 귀의하게 되었다. 코살라국의 임금인 파사익왕은 부처님과 나이가 같고, 같은 크샤트리아족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고, 불교의 외호자로서 큰 기여를 하였다. 많은 작고 큰 나라들이 세력을 서로 다투고 있었는데 이런 나라의 임금들이 서로간의 이해관계를 넘어 한자리에 모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다. 이러한 점들을 살펴보면 부처님께서 교화의 중심지로 하셨던 곳은 깊숙한 산속 인적이 끊어진 곳이 아니라 그 당시로서는 문화의 중심지며, 상공업의 중심지, 정치의 중심지인 대도시였다는 사실이다.    * 용화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4-07 14:09)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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