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경진비유설화─사랑은 슬픔을 만드는 병

관리자 | 2006.09.05 11:19 | 조회 1102



    ■사랑은 슬픔을 만드는 병■


부처님이 사위성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한 바라문이 부처님을 찾아왔다. 그는 외아들을 잃은 슬픔 때문에 음식도 먹지 못하고 옷도 추스르지 못해 마치 미친 사람과 같았다. “그대를 보니 본정신이 아닌 것 같구나.”
“저는 날이면 날마다 아들의 무덤에서 울기만 했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렇다. 사랑이란 그렇게 슬픔과 근심, 번민과 괴로움을 생기게 하느니라.”

그러나 그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사랑이 생기면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이지, 사랑이 슬픔과 괴로움을 생기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바라문은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고 정사를 나오다가 마침 도박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도박꾼들과 어울려 부처님과의 대화를 털어놓고 그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들도 바라문과 같은 생각이었다. 도박꾼들과 바라문의 대화는 이내 사위성에 널리 퍼져 많은 사람들의 화제가 되었다. 그 소문은 파세나디 왕과 말리카 부인에게까지 들어갔다.

왕과 왕비는 부처님의 말씀이 옳으니 그르니 옥신각신하다가 부처님께 직접 여쭈어보기로 했다. 왕은 부처님께 사자를 보내 이 문제를 물어보았다. 부처님은 왕의 사자에게 이렇게 답했다. “만일 어떤 사람의 어머니가 목숨을 마쳐 죽으면 그는 미친 듯이 슬퍼한다. 만일 어떤 사람의 아버지 형님 누나 동생 며느리가 죽으면 또한 미친 듯이 슬퍼한다.

이는 모두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생기는 슬픔과 근심, 번민과 괴로움이다. 그래서 사랑은 슬픔을 만드는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자가 돌아와서 사실대로 아뢰자 말리카 부인이 물었다. “대왕은 진정 나를 사랑하시는지요?” “나는 진실로 왕비를 사랑하오.” “그렇다면 내가 하루아침에 죽으면 대왕은 어떻게 하겠나이까?” “나는 반드시 울며 근심하고 슬픔에 잠겨 괴로워할 것이오.” “그렇다면 부처님 말씀이 옳은 것이 아닙니까?” 왕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부처님이 말씀한 참뜻을 이해했다.

- 중아함 60권 216경〈애생경(愛生經)〉


- 영원할 것 같은 사랑과 행복에는 슬픔과 불행도 언제나 따라다녀 〈유마경〉에 이런 비유가 있다. 어떤 사람이 길상녀라는 아름다운 처녀에게 장가를 들었다. 즐거운 피로연이 끝나자 신랑은 초례를 치르려고 신부 곁으로 갔다. 그런데 참으로 괴이한 일이 생겼다. 아름다운 신부 곁에 소름이 끼치도록 못생긴 처녀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자기 아내인 길상녀의 동생으로 이름을 흑암녀라고 했다. 신랑은 동생에게 ‘나는 언니와 결혼했으니 동생은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흑암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가라면 나가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가면 언니도 이 집에서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형제인 까닭입니다. 그러니 언니와 살려면 나도 데리고 살고, 나를 내보내려면 언니도 함께 내보내셔야 합니다.” 결국 그는 아름다움 언니와 못생긴 동생을 함께 데리고 살아야 했다나 어쨌다나.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행복의 뒤끝은 불행이다. 사랑의 뒤끝은 슬픔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행복은 영원해야 하고 사랑도 영원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만은, 우리 가족만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행복과 불행은 샴쌍둥이와 같다. 둘은 언제나 붙어서 다닌다. 지금 행복의 절정에 있는 사람, 불행의 절정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 뒤에 와있는 다른 모습을 미리 보아둘 일이다.
           -홍사성/ 불교평론 편집위원-

             

* 용화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4-0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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