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가르침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3. 천태

관리자 | 2006.03.14 05:16 | 조회 1033

3. 천태


천태종

1) 천태종의 성립 천태종의 초조는 혜문(慧文)인데, 자세한 전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6세기 중엽에 수백 명의 무리를 엄격하게 지도한 사람이고, 『대지도론』에 의지해서 선관(禪觀)을 닦았다고 한다. 2조는 혜사(慧思: 515~577)이다. 그는 혜문의 제자이고, 『법화경』을 독송하고 좌선을 매우 충실하게 해서, 결국 법화삼매(法華三昧)라는 경지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3조 지의(智剡: 538~597)는 실제로 천태종을 일으킨 인물이다. 지의는 23세 때 혜사의 문하에 들어가 법화삼매를 배웠으며, 그의 대표적 저술은 『법화문구』, 『법화현의』, 『마하지관』이다. 천태대사 지의 이후에 천태종은 다소 부진한 편이었으나 당나라 중기에 들어서면서 담연(湛然 : 711~782)에 의해 새롭게 등장하게 된다. 담연은 화엄종과 선종에 대항해서 천태종을 다시 일으키려고 하였다. 그리고 송나라에 들어서서 천태종은 산가파(山家派)와 산외파(山外派)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한국은 천태종이 비교적 늦게 성립된 편이었다. 고려 초에 체관(諦觀)이 중국에 들어가서 천태종을 연구하여, 『천태사교의』라는 천태학의 명저를 남겼으며, 의천(義天 : 1055~1101)에 이르러 비로소 한국에 세워졌다. 이런 천태종의 흐름은 요세(了世 : 1163~1245)의 백련사결사에 와서는 실천적 성격을 띠게 되었고, 이 결사는 원나라 간섭기에 활동한 운묵(雲默)에 의해서 그 근본정신이 더욱 발휘되었다. 2) 천태교학의 중심 사상 천태교학의 중심 사상에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실상론(實相論)이라고 불리는 일념삼천설렝絿?銓喚?구체적 수행법으로서 십경십승관법을 검토해 보자. 일념삼천설(一念三千說)과 일심삼관(一心三觀) ‘일념삼천설’은 사람의 한 마음에 삼천 가지의 가능성이 간직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여기서 ‘삼천’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삼천은 전체를 의미하는 숫자라고 한다. 따라서 ‘일념삼천설’은 사람이 무한한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현실의 사람은 가능성으로는 부처도 될 수 있고,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지만, 현실에는 인간의 세계에 머물고 있다. 이것이 ‘일념삼천설’에서 말하는 인간의 구체적 모습이다. 이 ‘일념삼천설’의 내용은 천태대사 지의의 『유마경현소』에 따르면 관조할 대상이고, 관조할 내용은 ‘일심삼관’이라고 한다. 그러면 일념삼천설과 일심삼관의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자. 일념삼천은 일념 가운데 삼천의 세계가 갖추어 진다는 것이다. 삼천의 숫자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십법계(十法界)가 십법계를 갖추고, 다시 일법계가 십여시(十如是)를 머금어서, 백법계(百法界)ㆍ천여시(千如是)가 되고, 여기다 세 종류의 국토(三種國土)를 곱하면 삼천이 된다. 우선, 십법계는 지옥(地獄), 아귀(餓鬼 : 전생에 악업을 짓고 탐욕을 부린 자가 아귀로 태어나 배고픔과 목마름에 괴로워한다),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 고대 인도에서는 싸움을 일삼는 악신으로 생각했다), 인간(人間), 하늘,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 불(佛)이다. 앞의 여섯 가지는 6도(六道)라고 하는데 윤회하는 세계이고, 성문, 연각, 보살은 대승불교의 삼승(三乘)이다. 천태대사 지의는 여기다 불계를 더 보태서 십계를 만들었다. 이는 불교사상에 근거해서 세계에 대해 가치를 매긴 것이다. 이 십법계가 다시 십법계를 머금는다. 그래서 인간계도 십계가 존재하고, 지옥계도 십계가 존재하고, 불계도 십계가 존재한다. 이는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선심(善心)과 악심(惡心)이 존재하고,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선심과 악심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가능성으로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일법계가 십여시를 갖추고 있다. 십여시는 여시상(如是相), 여시성(如是性), 여시체(如是體), 여시력(如是力), 여시작(如是作), 여시인(如是因), 여시연(如是緣), 여시과(如是果), 여시보(如是報), 여시본말구경등(如是本末究竟等)이다. 상(相)은 바깥의 모습이고, 성(性)은 내면의 본성, 체(體)는 사물의 주체, 역(力)은 잠재적인 힘과 작용, 작(作)은 드러난 힘과 작용, 인(因)은 직접적인 원인, 연(緣)은 간접적인 원인, 과(果)는 직접적인 원인의 결과, 보(報)는 간접적인 원인의 결과, 여시본말구경등(如是本末究竟等)은 형상에서 결과까지 통괄하는 평등의 원리이다. 그리고 삼세간(三世間)은 오음세간(五陰世間), 중생세간(衆生世間), 국토세간(國土世間)인데, 오음세간은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인 물질이고, 중생세간은 거기에 안주하는 인간과 생물이며, 국토세간은 그 인간과 생물이 살고 있는 환경이다. 앞에서 소개한 ‘일념삼천설’은 관조할 대상에 속하는 것이라면, 일심삼관(一心三觀)은 관조할 내용에 속하는 것이다. 천태대사 지의가 말하는 일심삼관은 공(空)럭?伽)려?中)이 한 마음 같이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공(空)이라고 보는 것은 대승불교의 일반적 이론이다. 이 공을 가장 단순하게 접근하자면 내면의 집착하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 집착의 대상인 객관세계도 집착하는 것 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도불교에서도 공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이 중국불교로 넘어오게 되자 상황이 바뀌게 되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이 사바세계를 초월하자는 이야기로는 중국인의 마음에 맞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래서 공의 세계에 철저히 파고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세계는 우리가 집착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존재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하였다. 그것이 가(伽)이다. 현실의 대상은 범부가 집착하는 것처럼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도 아니라고 보는 것이고, 여기서 현실을 중시하는 중국인의 실용주의적 관점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공(空)과 가(伽)의 두 관점을 종합하는 것이 중(中)이다. 이는 공(空)이라고 해서 없다는 쪽에 치우치지도 말고, 가(伽)라고 해서 있다는 편에도 비중을 두지 말자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극단을 넘어서는 것이 바로 중도(中道)이다. 그래서 일심삼관의 의미는 공(空)ㆍ가(伽)ㆍ중(中)의 의미가 한 마음 같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공(空)의 의미를 가(伽)를 통해서 분명히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십경십승관법(十境十乘觀法) ‘십경십승관법’은 깨달음을 이루는 방법을 설명한 것이다. 가령, 수행을 하는데 번뇌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수행 중에 병이 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혹시 수행하다가 적은 것을 얻고서 완전한 도를 얻었다고 잘못 생각하면 어떻게 하는가? 이런 점 때문에 천태대사 지의는 10경(十境)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십승관법은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는 10가지 방법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의 경지가 아무리 숭고한 것이라 할지라도 방법이 명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므로 그 방법에 대해 열 가지로 정리해서 말하는 것이다. 이 십승관법의 의미는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바른 진리의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지식 또는 지혜만 가지고는 곤란하고 자비심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지관을 닦아야 하고 넷째, 자기가 어느 정도 수행이 익었는지 알아야 하며 다섯째, 진리에 대한 애착마저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이 중에서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넷째와 다섯째 내용이다. 넷째 내용은 보통 수행자가 조그마한 경지를 얻고서 쉽게 만족해 버리는 것에 대한 경고이다. 한국 선종의 풍토는 대체로 이론적인 것을 분별 집착으로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최소한 자기가 어느 정도 수행이 완성되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교학(敎學)의 지식은 필수적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다섯째 내용은 불교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불교의 궁극경지에 이르러서는 불법에 대한 집착마저 버려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십경십승관법에서 ‘십경’은 지관(止觀)의 대상이 되는 10가지 경계를 말하는 것이고, ‘십승’은 지관을 닦는 사람이 행하는 10가지 방법이다. ‘십승’이라고 한 것은 이것이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마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십경의 하나 하나에 대해서 십승관법을 행하는 것이 십경십승관법이다. 십경(十境) _ 관찰할 대상 십경은 『마하지관』에서 관조할 대상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 중에서 처음에 말하는 음계입경(陰界入境)이 중심이 되고, 나머지 9가지 경계는 생길 때마다 관조하는 대상이다. 그 내용을 살펴본다. 첫째, 음계입경(陰界入境)이다. ‘음(陰)’은 오음(五陰)이고, ‘계(界)’는 십팔계(十八界)이며, ‘입(入)’은 십이입(十二入)이다. 이 ‘음계입경’이 맨 처음에 제시된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늘 눈앞에 펼쳐 있어서 항상 관조할 대상이 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경전에서 음계입경이 맨 처음에 관조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번뇌경(煩惱境)이다. 이는 오음(五陰)의 과(果)를 관찰할 때 번뇌가 발동하는 것이다. 보통 때에도 우리 마음 속에 번뇌가 움직이고 있지만,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다가 오음을 관찰할 때, 그 속에서 번뇌가 활동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음계입경’ 다음에 ‘번뇌경’이 일어나는 것이다. 셋째, 병환경(病患境)이다. 병을 이루는 요소를 살펴보면,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의 4대(四大)는 몸의 병을 이루는 것이고, 탐(貪)ㆍ징(瞋)ㆍ치(痴)의 3독(三毒)은 마음의 병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들이 평소에는 잘 섞여 있어서 느끼지 못하다가 ‘번뇌경’으로 인해서 4대가 어지럽게 날뛰게 되어 맥과 장기에 충격을 주게 되면 병환이 생기는 것이다. 넷째, 업상경(業相境)이다. 이는 병환이 제거되어서 몸이 튼튼해지면, 선(善)을 행하기도 하고 악(惡)을 행하기도 해서, 결국 업을 짓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병환경’ 다음에 ‘업상경’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업상경’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업(業)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마사경(魔事境)이다. 이는 도(道)를 가로막는 경계이다. 앞의 ‘업상경’에서 수행자는 악(惡)이 생기면 없애려고 하고, 선(善)이 생기려고 하면 더욱 확장하려고 한다. 이 때 마(魔)는 그러한 수행자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유혹의 모습을 나타내 보인다. 그래서 ‘업상경’ 다음에 ‘마사경’을 말하는 것이다. 여섯째, 선정경(禪定境)이다. 이는 정신 통일된 삼매의 경지에서 생기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마사경’을 넘어서면 공덕이 생기게 된다. 이미 마(魔)의 유혹을 이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러 선정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선정은 과거의 생(生)에 닦은 수행의 힘에 근거해서 생기기도 하고, 금생(今生)의 수행에 의지해서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선정에 들어가는 모습도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고 매우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일곱째, 제견경(諸見境)이다. 이는 ‘선정경’에서 삿된 지혜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때 수행자는 사물을 잘못 보게 되어서 뒤집어진 생각, 곧 전도망상(顚倒妄想)을 하게 된다. 이처럼 삿된 생각이 넘쳐흐르는 것을 ‘제견경’이라고 한다. 여덟째, 증상만경(增上慢境)이다. 이는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앞의 ‘제견경’에서 생긴 치우친 견해가 잘못된 줄 알아서 집착을 그치면 탐욕과 성냄이 일어나지 않지만, 근기가 둔한 사람은 이 탐욕과 성냄이 없는 상태를 불교의 최고 경지인 열반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래서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잘못 생각해서 교만한 마음을 낸다. 이것을 증상만경(增上慢境)에 빠졌다고 하고, 이런 부류의 사람을 ‘증상만인(增上慢人)’이라고 한다. 아홉째, 이승경(二乘境)이다. 이는 2승의 견해에 떨어지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제견경’과 ‘증상만경’을 넘어서서 마음이 고요한 경지에 들어갔더라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세(過去世)에 익힌 소승(小乘)의 기질이 생겨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승(大乘)의 마음을 일으킨다고 주장하지만, 결국에는 2승의 경지에 떨어지고 만다. 이것이 ‘이승경’이다. 열째, 보살경(菩薩境)이다. 이는 보살이 떨어지지 쉬운 경계이다. 원래 보살이라면 서원(誓願)이 있기 때문에 공(空)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방편을 중시하기 때문에 유혹에 떨어질 수 있다. 더구나 보살에도 수준 차이가 있기 때문에 미혹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유혹을 넘어서기 위해서 ‘보살경’을 말하는 것이다. 십승관법(十乘觀法) _ 관찰하는 방법 첫째, 관부사의경(觀不思議境)의 내용은 앞에서 소개한 ‘일념삼천설’과 ‘일심삼관’이다. 둘째, 발진정보리심(發眞正菩提心)이다. 앞에서 말한 ‘부사의경’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실하고 바른 보리심을 일으킨다. 그 내용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사홍서원(四弘誓願)으로 정리된다. 이는 모든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것, 모든 번뇌를 끊겠다는 것, 모든 가르침을 배우겠다는 것, 완전한 깨달음을 얻겠다는 것이다. 셋째, 선교안심(善巧安心)이다. 이는 지관(止觀)으로 진리의 본성인 법성(法性)에 안주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원(願)을 세우고 지관수행을 뜻하는 실천에 힘쓰는 것이기도 하다. 넷째, 파법편(破法遍)이다. 이는 중생이 전도(顚倒)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것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물론 앞의 ‘선교안심’의 단계에서 지관으로 마음을 편안히 하였다면, 선정과 지혜가 열리어 다시 번뇌를 깨뜨린다고 말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법성(法性)과 상응하지 못한 수행자가 있다면, 선정을 함축한 지혜를 잘 활용해서 번뇌를 제거해 나가야 할 것이기 때문에 뒤집힌 생각을 깨뜨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섯째, 식통색(識通塞)이다. 앞에서 말한 ‘파법편’이 철저하였다면, 생겨남이 없는 본래의 경지 곧 무생(無生)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인생도 그렇듯이 수행도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이 경우 무생(無生)의 경지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옳고 그르다는 분별의 생각에 막혀서 진리를 분명하게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식통색’에서는 자기가 어디서 막히고, 어디는 통했는지를 돌이켜 보아 수행에 힘쓰는 것이다. 여섯째, 도품조적(道品調適)이다. 이는 37도품(道品)으로 번뇌를 다스리는 것이고 소승의 수행방법을 활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승의 방법으로 깨달음을 얻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소송의 방법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이 안에 숨어 있다. 37도품은 지혜를 얻기 위한 부파불교의 여러 가지 수행방법이다. 일곱째, 조도대치(助道對治)이다. 근기가 둔하고 번뇌가 두터운 사람의 경우, 37도품으로도 공(空)ㆍ무상(無相)ㆍ무언(無願)의 3해탈문(三解脫門)을 곧 열지 못하여 수행의 길을 전념할 수 없게된다. 이 때, 번뇌를 끊는 대치(對治)의 도(道)로써 번뇌의 장벽을 깨뜨릴 필요가 있고, 그러면 해탈문에 편안히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여덟째, 명차위(明次位)이다. 이는 자기가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다. 대승과 소승의 수행방법을 모두 사용하였는데도 크게 진전이 없다면, 자신이 어디에서 막혀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자기가 증득한 것과 증득하지 못한 것을 분명히 알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해 더욱 분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홉째, 능안인(能安忍)이다. 처음 ‘관불가사의경’부터 ‘명차위’의 단계까지 수행해서 장애를 지혜로 바꾸었다고 하자. 여기서도 사람에 따라 처하는 상황이 다를 수 있다. 이 단계에 이르러서도 어떤 사람은 수행단계의 하나인 ‘초품제자위(初品弟子位)’에 들어가지 못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초품제자위’에 들어가서 지혜가 밝고 분명하기도 하다. 초품제자위는 범부가 닦는 다섯 단계의 수행 중 처음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사람에 따라 수행의 내용이 달라진다. 지혜가 밝고 분명한 수행자라면, 마치 큰 코끼리가 무리를 단속하듯이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혜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세상에 나서지 말고 삼매를 닦는 데 전념해야 한다. 왜냐하면 수행이 완성되어서 깨달음의 힘이 드러날 때, 교화를 행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외부의 유혹에 대해서는 사양하고 은둔하고 떠나게 되면 감당할 수 있을 것이고, 내부의 번뇌에 대해서는 공(空)ㆍ가(伽)ㆍ중(中)의 일심삼관의 이치를 관찰하면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열째, 무법애(無法愛)이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法)에 대한 애착(愛着)이 없는 것이다. 위의 9가지 관법을 잘 닦으면, 모든 장애를 넘어서서 참된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9가지 관법을 닦고도 참된 세계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애착해서 거기에 머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더 나아가지 못하고 발전하지 못한다. 이 때에는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애착, 곧 법애(法愛)를 깨뜨릴 필요가 있다. 그것을 깨뜨리면 3해탈에 들어가 진정한 중도를 일으킬 것이고 그 때 자연히 모든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서 불교 최고의 경지인 무생법인(無生法忍)에 머물게 된다. 『법화경』의 해제 불교는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의 삼승(三乘)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이것들이 궁극에는 근본적인 가르침인 일승(一乘)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이 『법화경』 사상의 핵심이다. 삼승이 존재하는 이유는 중생의 소질을 의미하는 근기(根機)가 여러 종류이므로, 거기에 맞추어서 부처님이 설법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가르침의 목적은 중생을 부처가 되게 하는 데 있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일승의 가르침이다. 이점을 『법화경』에서는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아름다운 비유를 살펴본다. 이 이야기에서 말하는 ‘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비유한 것이고, ‘여러 가지 초목’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중생을 비유한 것이다 가섭이여! 삼천대천세계의 산과 강과 계곡과 땅에서 자란 나무와 수풀과 약초가 여러 종류이고 이름과 그 색깔이 각기 다르다. 비를 머금은 구름이 널리 퍼져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에워싸서 한꺼번에 비가 내린다. 그 비가 널리 내리면 나무와 수풀과 약초 중에서 작은 뿌리와 줄기, 작은 가지와 잎, 중간의 뿌리와 줄기, 중간의 가지와 중간의 입, 큰 뿌리와 줄기, 큰 가지와 입을 가릴 것 없이 모두 비를 맞는다. 한 가지 구름에서 생겨난 비에 의해 각각의 나무가 자기의 성질에 맞추어서 자라난다. 그래서 꽃과 열매가 맺어진다. 이렇게 비록 한 가지 땅에서 생기고, 한 가지 비에 의해 적셔졌지만 모든 초목은 다 차이가 있다. 『법화경』 그리고 그와 상응해서 그 가르침을 말씀하시는 부처님도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부처님으로 바뀐다. 그 가르침이 일승이어서 모든 중생을 부처가 되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러한 가르침을 말씀하신 부처님도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나아가 일승의 가르침을 듣는 중생도 모두 부처가 된다. 긴 세월을 두고 본다면, 모두 부처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제바달다’라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해치려고 하였던 극악한 사람도 결국 부처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여인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사가라 용왕의 여덟 살 난 딸을 예를 들어 말하고 있다. 이처럼 일승의 가르침과 그것을 전해 주는 영원히 존재하는 부처님과 궁극에는 부처가 될 수 있는 중생의 존재, 이 삼각관계가 『법화경』의 핵심이다. 한편 이러한 내용으로 이루어진 『법화경』에는 여러 가지 원본이 존재한다. 첫째, 산스크리트어본(여러 가지가 있는데, 사본이 발견된 지방에 따라 네팔계, 카쉬미르계, 중앙아시아계로 구분된다) 둘째, 축법호(竺法護) 번역의 『정법화경(正法華經)』 10권(286년) 셋째, 구마라집(鳩滅什) 번역의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8권(406년) 넷째, 사나굴다(淞那堀多) 등이 번역한 『첨품묘법연화경(添品妙法蓮華經)』 7권 (601년) 다섯째, 티베트어본 등이다. 이 가운데에서 한역경전으로 가장 널리 읽히는 경전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이고, 이것에 일부분을 보충하고 정정한 것이 『첨품묘법연화경』이며, 『정법화경』은 난해한 번역으로 알려져서 잘 읽혀지지 않는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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