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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공양(供養)의 공덕

관리자 | 2006.10.28 04:09 | 조회 1129

 

공양(供養)의 공덕

공양의 의미

남에게 무엇인가를 베푼다는 의미에서는 공양(供養)과 보시(布施)는
같은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공양은 나보다 훌륭한 분께 무엇인가를 베푼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고,
보시는 상대방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베풀어준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그 베풂의 내용이 물질적인 것인지 정신적인 것인지에 따라
둘로 구분된다. 즉 물질적인 보시를 재시(財施)라 하고,
정신적인 보시를 법시(法施)라고 한다.
공양도 보시와 마찬가지로 재공(財供)과 법공(法供) 둘로 구분된다.
여기서는 주로 재공의 의미로 사용한다.

예로부터 인도인들은 수행자에게 공양을 베풀면 큰 공덕을 받는다고
믿었다. 특히 물질적인 공양은 일반인들이 복을 지을 수 있는 통로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바라문교에서 비롯되었다.
바라문들은 그들의 전통에 따라 네 가지 주기로 삶을 영위한다.
이러한 전통에 따르면 자신들도 언젠가는 남으로부터 공양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물질적 공양은 자연스럽게 널리 성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인도인들은 위대한 덕을 갖춘 사람에게 음식물이나 의복 등을
공양하면, 그 공덕으로 내세에는 하늘 나라에 태어나 행복한 생활을
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존경과 공양을 받는 상대방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그 보시 혹은 공양의 공덕은 한층 큰 것으로 생각했다.

종교적으로 인도에서 이러한 공양이 베풀어지게 된 배경에는 자신이
행하지 못하는 범행(梵行)을 출가자가 대신 행함에 따라 재가자는
출가자가 필요한 물품, 즉 재시(財施)를 행하는 것이다.
한편 출가자는 자신이 수행하여 증득한 진리, 즉 법시(法施)를 행함으로
써 재시와 법시 두 가지가 동시에 구족되는 것이다.
따라서 상호 작복(作福)과 복전(福田)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덕목보다도 공양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흔히 사사(四事) 공양이라고 하여
네 가지 공양물들이 출가자에게 헌납되었다.
네 가지 공양물이란 승려 혹은 수행자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음식·의복·와구(침구)·의약 등을 말한다.
무소유의 삶을 영위하는 출가자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물품들은 재가자의 시여(施與), 즉 공양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불공(佛供)과 승공(僧供)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불공이라 하고,
스님들에게 올리는 공양을 승공이라고 한다.
초기교단에서는 불공과 승공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처님 열반 후 교단에서는 불공과 승공이 엄격히 구별되었다.
이것은 교단의 경제생활과도 깊은 관련이 있었다.

대승불교 흥기(興起) 당시 불탑,
즉 부처님께 받쳐진 공양물을 스님들이 소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재가자들이 불탑을 관리하였다.
이처럼 불공과 승공은 서로 다르지만 공양의 복덕을 짓는다는
데에서는 그 의미가 동일하다.

현재의 상좌불교국에서는 불공과 승공을 크게 구분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현재 수행중인 승려들에게 공양을 올리며
큰 복덕을 짓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대승불교국에서는 승려에게 공양한다는 의미보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면 스님들이 그것을 받아 가진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불교에서는 불공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불교의 의례도 예불과 권공(勸供) 의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관념의 차이일지 모르나 여기에는 두 불교 전통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공양의 공덕

"선남자 선여인들이여,
만일 마음을 돌려 신앙하고 복을 닦고자 하면
세 가지 복밭[福田]이 있다.
첫째는 불보(佛寶)요,
둘째는 법보(法寶)요,
셋째는 승보(僧寶)이다.
승보를 공양하면 그 복이 백 배로 늘어날 것이요,
법보를 공양하면 그 복이 천 배, 불보를 공양하면
그 복이 만 배가 될 것이다.
이렇게 삼보를 공양하면 무한한 복이 되느니라.

앞으로 세상이 혼탁해질 때,
깨끗하고 좋은 복덕과 세상에 오래살기를 원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어서
삼보를 굳게 믿고, 이에 귀의하여 공양하면,
그 공덕으로 태어날 때마다 사람의 몸을 얻어서 왕위(王位)나
대신의 지위를 얻으며, 복록과 장수를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죽어서는 천상에 태어나 기쁨을 누린다.
또 부처님을 만나 가르침을 듣고, 바른 견해와 바른 믿음을 얻어,
부처님의 바른 지혜를 닦아 성스러운 행을 갖추어 보리를 조속히
증득하여 성스러운 해탈을 이루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 가르침은 섭대승교왕경(攝大乘敎王經)에 나오는 말씀이다.

공양 가운데 불공의 공덕에 대하여 잡비유경(雜譬喩經)에서 부처님이
직접 말씀한 대목이 나온다. 부처님께서 탁발하기 위해 어느 집 대문
앞에서 밥을 빌었다. 그 집의 아내가 밥을 부처님의 바리에 넣고
예배를 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를 심어 열을 낳고, 열을 심어 백을 낳고,
백을 심어 천을 낳고, 천을 심어 만을 낳고,
만을 심어 억을 낳나니,
오늘의 선행으로 인해 진리의 도를 보게 되리라."

그 남편이 믿어지지 않아서 말했다.
"한 바리의 밥을 보시한 것뿐인데,
어떻게 이런 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니구타니(尼拘陀樹)[2]를 보라.
높이가 4-5리(里)나 되고,
해마다 몇만 석(石)의 열매를 떨구어 주지만,
그 씨는 겨자씨처럼 아주 작지 아니하냐?
땅은 아무 의식도 없는 존재이건만 그 과보의 힘이 이와 같거든,
하물며 생명을 지닌 사람일까 보냐?
기뻐하며 한 바리의 밥을 부처님께 바치는 경우,
그 복은 매우 커서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이에 그들 부부 두 사람은 크게 깨달아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었다.
이 경전의 내용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한편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서는 불공의 이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보통 사람을 백 사람 공양하기보다는 한 사람의
선인(善人)을 공양하는 쪽이 공덕이 크다.
선인을 천 사람 공양하는 것보다도 오계(五戒)를 지킨 사람 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낫다. 오계를 지킨 사람, 일만 명을 공양하는 것보다도
한 사람의 수다원(須陀洹)이라고 하는 최하위의 성자를 공양하는 쪽이
더 낫다. 백만 인의 수다원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사다함(斯陀含)
이라는 성자를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천만인의 사다함을 공양하는
것보다도 한 사람의 아나함(阿那含) 성자를 공양하는 쪽이 낫다.
일억의 아나함을 공양하는 것보다도 한 사람의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하는 불제자 최고의 성자를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십억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보다도 한 사람의 벽지불(抗支佛)을
공양하는 쪽이 낫다. 백 억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보다도 한 사람의
정각자(正覺者) 불타를 공양하는 것이 그 공덕이 뛰어나다.

이 설은 쾌 과장된 것이지만 이와 같은 사고가 당시의 인도에서
일반인들에게 유행되고 있었던 듯하다.

불교에서는 최고의 성자를 아라한이라고 하는데,
아라한이라고 하는 것은 '자격 있는 사람',
'공양에 합당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신자로부터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가장 뛰어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다. 아라한의 별명으로 복전(福田, punna-khetta)이라는 말도
쓰이는데, 그것은 아라한이 신자로부터 공양을 받음으로 인해
그들로 하여금 공양의 행위에 대한 복(福)의 결실을 맺게 하는 밭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 복의 밭에 의복과 음식 등의 공양을 비료로
시여하면 그 밭에서 풍성한 복의 수확을 얻게 되며,
위대한 사람일수록 우수한 복전이 된다는 것이다.

초기경전인 여시어경(如是語經, Itivuttaka)에는
"집이 있는 사람[재가자]와 집이 없는 사람[출가자]는 서로 의존한다.
출가자는 재가자로부터 옷, 필요한 물건, 집 그리고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를 받는다. 재가자는 출가자를 만남으로서 진인(眞人)을 믿고
뛰어난 지혜로서 깊은 생각을 하며, 선(善)에 이르는 길인 법(法)을
이 세상에서 실행하며,
하늘의 세계를 누리고 바른 것을 얻어 기뻐한다"라고 했다.

또 대방광여래부사의경계경(大方廣如來不思議境界經)에 보면,
"불에게 공양하는 사람은 대복덕을 얻게 되며,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게 되고,
모든 중생들은 다 안락을 획득하게 된다.
또 법에게 공양하는 사람은 지혜가 증장되며,
법자재(法自在)를 증득하게 되므로 바른 모든 법의 실성(實性)을
요달해 알게 된다. 그리고 승에 공양하는 사람은 한량없는 복덕과
지혜의 자량(資糧)이 증장하여 마침내 불도를 성취하게 된다"고 했다.

이와 같이 현세의 복덕과 공덕을 구함에 있어서 부처님과 수행승에
대한 공양보다 더 수승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재가 신자의
입장에서는 공덕을 쌓기 위하여 교단과 수행승이 없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불·법·승 삼보의 성스러운
존재에 대한 존경의 마음과 공덕을 쌓는다는 관념은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엄밀히 분석하여 말하면 비구승단은 재가인이 공덕을
쌓기 위한 매체의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수많은 훌륭한 수행승을 동시에 한 자리에 모시고 공경과
공양을 베푸는 공덕은 측량하기 어렵다.

말세(末世)를 의미한다.
말세가 되면 세상이 혼탁해진다고 한다.
이러한 말세의 다섯 가지 특징을 오탁(五濁)이라고 하는데,
①겁탁(劫濁, kalpa-kasaya)은 전쟁 질병 기근 등이 많은 것이다.
이를테면 시대적인 환경 사회의 혼탁을 말한다.
②견탁(見濁, drsti-kasaya)은 사상의 혼탁이다.
③번뇌탁(煩惱濁, kilesa-kasaya)은 번뇌가 치성해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악덕이 만연하는 것을 말한다.
④중생탁(衆生濁, sattva-kasaya)은
  사람의 자질(資質)이 저하하는 것이다.
⑤명탁(命濁, ayus-kasaya)은 수명이 짧아지는 것이다.

니구타니(尼拘陀樹)는 용수(榕樹)라 한역하는데,
반얀 나무를 말한다.
인도의 무화과나무로 아주 큰 교목이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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