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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경(看經)의 공덕

관리자 | 2006.10.28 04:11 | 조회 1003

 

◈ 간경(看經)의 공덕 ◈ 

간경의 의미

간경은 경전을 보고 읽는 것을 말한다.
경전은 삶의 바른 길을 제시하는 지혜의 창고다.
경전을 읽고 외우며 몸에 지님으로써 얻게 되는 공덕은 무량하다.
그래서 간경은 대승불교에서 수행의 한 방법으로 정착이 되었다.

원래 경전은 중생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널리 펴고자 하여 만들어진
것이다.그래서 처음에는 경전을 통해 깨달음을 이해하고 그와 같이
실천하기 위해 읽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읽고 외우는 그 자체가 하나의
수행법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부처님 앞에서 경전을 읽고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며 원하는 일이 속히 이루어지도록 발원하기도 하고,
또는 죽은 자를 위해 독경해서 그 공덕으로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바라며 명복을 빌기도 하였다.

간경은 뒤에 경전을 읽는 모든 행위를 일컫게 되었다.
풍경(諷經)·독경(讀經)·독송(讀誦)이라 하기도 하였다.
이들의 의미를 구별해 쓰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구별 없이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독경·예배 등을 부지런히 한다고 하여 근행(勤行)이라고도 한다.

불교에서 경전은 부처님의 말씀이요 교훈이며,
진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경전은 부처님 열반 이후 정법을 전하는
보고(寶庫)로 여겨졌고, 신행의 지침으로 삼게 되었다.

한편 불교경전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부처님의 진신사리로서,
불상이나 불탑과 같이 예배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뿐만 아니라 책이
귀하던 옛날에는 경전 한 권이 갖는 의미는 각별했으며,
경전을 통하여 모든 교육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경전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었다. 예로부터 우리 선인들이 경전을 통한 수행의
한 방법으로 간경에 지극한 정성을 보인 까닭도 이 때문이다.

간경의 공덕

금강경(金剛經)에서는 "만일 어떤 사람이 경을 듣고 받아 가져 읽고
외우며 쓰고 남을 위하여 설하게 한다면 그 공덕은 갠지스강의
모래알과 같은 삼천 대천 세계에 가득한 칠보(七寶)를 보시하고 내지
갠지스강 모래알 수와 같은 몸을 보시할지라도 경을 듣고 받아 가지고
읽고 외워 쓰고 남을 위해 설해 주는 공덕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칠보로서 보시하고 몸으로서 보시하는 것은 복이 한량없이
많기는 하지만 이것은 모두 유위법(有爲法)이라 결국 생사 윤회를
면치 못한다. 하지만 경을 읽고 외우고 쓰는 것은 마음을 깨우치는
일이라 생사 유전을 벗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엄경에 "만일 갠지스강과 같이 많은 칠보 탑을 쌓을지라도
잠시동안 제 마음을 관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칠보 탑은 결국 부서져
티끌이 되지만 마음을 관하는 것은 마침내 부처가 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안 보이는 무위(無爲)의 공덕보다는 눈에 보이는
유위(有爲)의 공덕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경전을 읽고
외우면 어떤 공덕이 있는가.

공덕경(功德經)에서는 열 네 가지 공덕을 들고 있다.
즉 "경전을 큰소리로 읽고 외우며
부처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공덕이 있다.
첫째는 능히 잠이 오는 것을 쫓는다.
둘째는 천마(天魔)들을 두렵게 한다.
셋째는 음성이 온 세계에 두루 퍼진다.
넷째는 지옥·아귀·축생의 고통을 쉬게 한다.
다섯째는 밖의 소리가 안으로 침입하지 못한다.
여섯째는 생각이 흩어지지 않는다.
일곱째는 용맹정진 할 마음이 생긴다.
여덟째는 모든 부처님들이 기뻐한다.
아홉째는 삼매를 얻게 된다. 열째는 정토에 가서 나게 된다.
열한 번째는 진리를 체득한다.
열두 번째는 법을 전하고 중생을 제도하게 된다.
열세 번째는 상호가 원만하여 진다.
열네 번째는 정신에 밝은 빛을 얻는다"라고 하였다.

열 네 가지 가운데 앞의 열 가지는 염불의 공덕에서 다룬 것이다.
염불과 독경을 같은 신행으로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보충 설명하자면, 즐겁고 맑은 마음으로 경전을 읽으면 얼굴에서 빛이
나고 상호가 원만해 지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경전 읽는 소리를 듣고
즐거워하는 이는 저절로 제도되어 법을 전한 것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일념으로 독경하다 보면 저절로 삼매를 얻게 되고,
나아가 정토를 현현(顯現)하게 되며, 진리를 저절로 체득하게 된다.

이처럼 독경을 하면 중생이 기뻐하는데 모든 부처님들이 기뻐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며, 용맹한 마음으로 선행을 쌓아 가면 악을
즐기는 악마들은 저절로 두려운 생각을 낼 것이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밖의 소리가 안에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한 생각으로 전념하여 주의한다면, 그 소리는 전파를 타고 시방세계에
두루 하여 능히 삼도의 고통을 쉬게 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덕 외에도 법화경(法華經)에서는 "이 경을 갖는 사람은
첫째는 온갖 재난이 소멸되고,
둘째는 무명(無明) 번뇌가 소멸되며,
셋째는 소원을 성취한다"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의 온갖 재난이 소멸된다고 하는 것은 불경을
진실로 가져 읽고 외우는 이에게는 불도 능히 태우지 못하고,
물도 능히 빠뜨리리 못하며, 독도 능히 해치지 못하고,
칼도 능히 상하게 하지 못하며, 악한 귀신이 엿보지 못하고,
맹수도 침입치 못하며, 원수도 능히 보복치 못하는 것이다.

불 속에 있으면서도 불을 보지 못하고, 물 속에 있으면서도 물을 보지
못하며, 독과 칼, 악귀, 맹수의 저격을 받으면서도 그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의 무명 번뇌를 소멸한다는 것은 음욕이 많은 사람이 불경을 읽으면
음욕심(游欲心)이 없어질 뿐 아니라 그 마음이 도리어 청정심으로
변하게 된다. 진에심(瞋?心)이 많은 사람이 경전을 읽으면 진에심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 마음이 자비심으로 변하게 된다.
어리석음이 많은 사람이 경전을 읽으면 도리어 그 어리석음이 변하여
지혜심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은 일과 이치에 대한 진리를 잘 모르고
오류를 범하며 그로 인해 생각이 캄캄하기 때문에 야기되는 것이다.
그런데 경전을 읽고 외워 그 뜻을 소상히 알게 되면 저절로 지혜가
생겨 신견(身見)·변견(邊見)·계금취견(戒禁取見)·사견(邪見)·
견취견(見取見)의 여러 가지 견혹(見惑)과 탐욕·진에·우치·아만·
의혹 등 사혹(思惑)은 물론 팔만 사천의 번뇌 무명의 혹(惑)이
모두 소멸된다.

셋째의 소원을 성취한다 한 것은 부처님이 되고 싶은 사람이 경을 읽고
그렇게 발원하면 부처님이 된다.
벽지불을 원하며 읽으면 벽지불이 된다.
아라한이 되기를 원하고 읽으면 아라한이 된다.
기타 대범천왕(大梵天王)·제석천왕(帝釋天王)·
전륜성왕(轉輪聖王)을 원하면서 경을 읽으면 그렇게 된다.
오래 살기를 원하면 오래 살고, 건강하기를 원하면 건강해 지며,
부자가 되고 지혜롭기를 원하면 부자가 되고 지혜로워질 수 있다.
신통·무병·장수·재주·정토·자녀 얻기를 원하면 각각 다 그렇게
된다.

왜냐하면 불법은 모두 한 생각을 다스리는 것인데,
그들 모든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과 빈부귀천(貧富貴賤)이
모두 이 한 생각 가운데서 조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불경은 모든 부처님의 본체를 가리킨 길이고,
우리 마음의 체(體)와 상(相)과 용(用)을 밝혀 놓은 희망의 태양이요,
용기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독경을 하면,
첫째는 제 마음을 관달(觀達)하여 매사에 자재를 얻게 하는
       좋은 방편이 된다.
둘째는 무료한 인생을 즐겁게 하여 삶의 의의를 찾게 만든다.
셋째는 우주 인생의 본령(本領)을 밝혀 사마(邪魔) 미신의 장난에
       떨어지지 않고 양심 속에서 일생을 유유히 흘러가는
       물처럼 살 수 있는 지혜를 얻는다.
넷째는 전통적 의식을 살려 인류문화에 한 점 홍옥(鴻玉)을 발견한다.
다섯째는 불법을 널리 펴 빛나게 하므로 인류 역사에 굳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읽어온 사람은 더욱 분발하여 독송을 게을리 말고,
또 나만 읽고 외우고 쓸 것이 아니라, 읽고 외우고 쓰지 못한 사람들에
게 읽고 외우고 쓰도록 계도할 것이며, 아직 읽어보지 못한 사람은
비로소 마음을 내서 유전(流轉) 생사(生死)의 길을 등지고 열반(涅槃)
피안(彼岸)에 나아가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간경의 방법

예로부터 경전을 읽기에 앞서 먼저 몸을 깨끗이 하고 단정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몸을 깨끗이 하는 과정을 통해 마음을
추슬러 경전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뿐만 아니라 경전을 읽는 자세도 중요하다. 정좌하여 마음을 가다듬어
읽어야만 한다. 경전을 드러누워서 보거나 엎드려 보는 그러한 태도는
올바른 것이 아니다. 경전을 읽기 전에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가다듬어 읽어야만 비로소 경전의 말씀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경전을 읽을 때에는 마음속으로 의미를 이해하면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경전을 염불처럼 소리를 내어 읽기도 하는데,
이때는 염불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소리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경전은 글자로 읽어서는 안되며, 마음으로 관조하면서 읽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서산(西山)스님은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경을 보되 자기 마음속으로 돌이켜 봄이 없다면
비록 팔만대장경을 다 보았다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어리석게 공부함을 깨우친 것이다. 마치 봄날에 새가 지저귀고
가을밤에 벌레가 우는 것처럼 아무 뜻도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경전의 내용과 의미를 모르고 소리로만 읽는 것은 새의 지저귐이나
벌레 우는소리와 다를 바 없다는 가르침이다.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그리고 경전을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반드시 주위의
스님이나 선지식을 찾아서 그 뜻을 물어서 이해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른 경전 읽기 방법이며, 또한 구법행(求法行)인 것이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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