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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布施)의 공덕

관리자 | 2006.10.28 04:13 | 조회 1355

 

◈ 보시(布施)의 공덕◈ 

보시의 의미

보시는 자비심으로써 다른 이에게 조건 없이 베푸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보시에는 크게 재시(財施)·법시(法施)·무외시(無畏施) 등의
세 가지가 있다. 재시(amisa-dana)는 물질적인 베풂을 말하고,
법시(dhamma-dana)는 가르침의 베풂을 말하며,
무외시(abhaya-dana)는 두려움이 사라지게 해주는 베풂이다.
이 외에도 남방불교에서는 편안하게 해주는 베풂이라는
안온시(安穩施, khema-dana)를 추가하기도 한다.

대장부론(大丈夫論)에서는 재시와 법시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재시는 중생의 사랑하는 바가 되고, 법시는 중생의 공경·
존중하는 바가 된다. 재시는 어리석은 사람의 사랑하는 바가 되고,
법시는 슬기로운 사람의 사랑하는 바가 된다. 재시는 재물의 빈궁함을
깨고, 법시는 공덕의 빈궁함을 깬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보시를
누가 공경하고 존중하지 않겠는가? 재시는 현실적인 즐거움을 주고,
법시는 천도(天道)와 열반의 즐거움을 주는 것인바,
자비롭기를 원하는 자는 능히 온갖 중생을 사랑할 것이며,
온갖 중생을 사랑하는 자는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된다"라고 했다.

우바새경에서는 보시하는 목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이 모든 것을 보시하는 것은 보은(報恩)을 위함도 아니며,
일을 구하기 위함도 아니며,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을 지켜 줌도
아니다. 천인(天人) 속에 태어나 즐거움을 받기 위함도 아니며,
착한 명성의 유포(流布)를 위함도 아니며,
삼악도의 괴로움을 두려워함도 아니다.
남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함도 아니며,
남보다 낫기를 위함도 아니며,
재물을 잃기 위함도 아니다.
많이 있기 때문도 아니며,
가법(家法) 때문도 아니며,
친근하기 때문도 아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보시는 연민(憐愍) 때문이며,
남을 안락하게 해 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모든 성인의 도(道)를 실천하기 위해서이며,
온갖 번뇌를 깨고자 해서며, 열반에 들어 생존을 끊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만약 천상에 태어나기 위해 보시를 행한다던가,
명성(名聲)을 구하거나 돌아오는 과보를 바라거나 두렵거나 하기
때문에 보시를 행할 때는, 얻어지는 과보가 청정치 못하다"라고
분별업상경(分別業相經)에서 말하고 있다.

선가귀감(禪家龜鑑)에 이르기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수대로
나누어 주라. 한 몸처럼 가엾이 여기면 이것이 참 보시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보시는 대비심(大悲心)에서 나오는 것이다.

보시의 공덕

월등삼매경(月燈三昧經)에서는 보시의 열 가지 공덕을 나열하고 있다.
이 경전에 의하면,
보시는 아끼고 탐하는 마음을 쳐부수는 전초 진지이며,
바른 도에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이 이 보시행을 행하면
열 가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열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는 아끼는 인색한 마음을 항복 받는다.
       보살행을 닦는 사람이 보시를 행하면 인색하여 아끼는 마음을
       자연히 항복 받게 된다.
       그러므로 다시 인색한 마음이 싹트지 않는다.

둘째는 베푸는 마음이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는다.
       보살이 보시를 행함에 비록 재물이 다하여 없을지라도 기쁘게
       재물을 베풀어주고자 하는 마음이 끊어지지 않는다.

셋째는 재산에 대한 소유욕이 없다.
       보살은 베푸는 마음이 한량없어 모든 중생과 나를 다르게 보지
       않으므로 가진 바 재산을 평등하게 수용하기 때문에
       내 것 네 것이라는 소유욕이 없다.

넷째는 부호(富豪)의 집에 태어나게 된다.
       보살은 일체의 재물을 항상 베풀고 싶은 마음만 있을 뿐
       인색하여 아끼는 마음이 없으므로,
       내생에는 반드시 부호의 집에 태어나 재물과 보배가 구족하여
       수용함에 궁함이 없게 된다.

다섯째는 나는 곳마다 베풀고자 하는 마음이 여전하다.
         보살이 금생에 보시를 행하였으므로 사후에도 나는 곳마다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자 하는 마음만 있을 뿐 인색한 마음은
         전혀 없다.

여섯째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즐거워한다.
         보살은 이미 항상 베풀고자 하는 마음만 품기 때문에 아끼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즐거워할 뿐 미워하거나 원망함이 없다.

일곱째는 대중과 함께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보살은 이미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즐거워하므로
         대중과 함께 할지라도 스스로 두려워하거나 겁내는 마음이
         없다.

여덟째는 훌륭한 이름이 널리 퍼진다.
         보살은 이미 구하는 바 없이 보시만 행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게 되며, 그 이름이 널리 퍼진다.

아홉째는 손발이 유연해 진다.
         보살이 보시를 시작하여 사람들의 어려움을 건져주므로
         손과 발이 유연 하는 등 32 호상과 80 종호의 원만 상호를
         구족하게 된다.

열째는 선지식을 여의지 않는다.
       보살이 스스로 처음 발심하여 보시를 행한 이후
       항상 모든 불보살과 선지식을 만나 친히 법문을 듣는다.
       그러므로 제불보살과 선지식을 여의는 일이 없다.

이상의 열 가지가 보시의 공덕이다.
아무런 바램 없이 또 그 어떤 상(相)에도 집착함이 없이 꾸준히
보시행을 하다 보면 자연적으로 얻게 되는 이익인 것이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열 가지 이익을 얻겠다고 보시한다면,
이것은 이미 얻겠다는 상(相)에 걸리는 것이므로 진정한 보시가 되지
못한다. 다만 아무런 바램 없이 베풀다 보면 위에 열거한 열 가지
이익이 자기도 모르게 성취된다.
이것이 바로 참 보시의 정신이며,공덕인 것이다.

한편 존나경(尊那經)에서도
다섯 가지 보시의 공덕에 대하여 밝히고 있다.

경전의 내용을 읽어보자.

세존께서 대존자(大尊者) 존나(尊那)에게 이르셨다.
만약 사람이 있어서 위대한 과보를 얻고자 하면,
이 공덕에 다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명성은 널리 미쳐 있고,
뜻은 자못 깊고 넓은 바가 있다.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진실한 마음을 일으켜 능히 이것을 갖추어
지닌다면 이 사람은 사위의(四威儀) 중에 끝없는 공덕을 항상 발전시켜
가는 것이 될 것이다. 다섯 가지란 무엇인가?
만약 큰 신심(信心)을 일으켜 원림(園林)과 못을 보시하여
사방의 스님들의 거니는 곳에 충당한다면,
이는 첫째의 끝없는 공덕이어서 위대한 과보가 있을 것이다.
만약 큰 신심을 일으켜 저 숲속에 정사(精舍)를 세워 많은 스님들로
하여금 편안히 머물게 한다면,
이는 둘째의 끝없는 공덕이어서 위대한 과보가 있을 것이다.
만약 큰 신심을 일으켜,
저 많은 스님들의 정사 안에 의자·담요·옷과 이불 등의 갖가지
쓸 물건을 보시한다면,
이는 셋째의 끝없는 공덕이어서 위대한 과보가있을 것이다.
만약 큰 신심을 일으켜,
저 정사 안에 재물과 곡식을 보시하여 많은 스님들을 공양한다면,
이는 넷째의 끝없는 공덕이어서 위대한 과보가 있을 것이다.
만약 큰 신심을 일으켜,
오고 가는 많은 스님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항상 보시한다면,
이는 다섯째의 끝없는 공덕이어서 위대한 과보가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이와 비슷한 내용이
우바새소문경(優婆塞所問經)에도 기술되어 있다.
"세속 사람으로서 마음에 인색함이 없어서,
늘 의복·침구·약품·집·의자라든가,
내지는 도향(塗香)·말향(末香)을 모든 사문에게 보시하는 경우,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죽은 뒤에는 선취(善趣)에 태어나 천인의 몸을
받게 되며, 천중(天中)에서의 과보가 다해 인간계에 태아난대도,
태어나는 곳마다 부귀를 마음껏 누리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한편 화엄경에서는 보시의 공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제어(制御)하기 어려운 인색한 마음을 제어하여,
재물을 풀되 꿈과 같이 하고 뜬구름같이 해야 한다.
보시하는 집착 없는 마음을 키우는 경우,
이로 인해 지혜가 완성된다"라고 했다.

광명경(光明經)에서는 "보시하는 힘을 수행(修行)해 완성하면,
이 보시하는 힘으로 인하여 성불할 수 있게 된다"라고 했으며,
{유마경}에서는 "보시가 보살의 정토(淨土)다. 보살이 성불할 때,
온갖 것을 능히 베푼 중생이 그 나라에 태어난다"라고 했다.

따라서 모름지기 "인색과 탐욕에 집착하면,
사람들과 신들이 천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응당 보시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노지장자인연경(盧至長者因緣經)에서 설파하고 있다.

육취윤회경(六趣輪廻經)에서
"만약 경전의 가르침과 세속의 문전(文典)을 보시하면 박학한 큰 지혜를
과보로 받게 된다. 의약을 보시하면 편안하여 공포를 떠나게 된다.
밝은 등을 보시하면 그 눈이 항상 맑아진다. 음악을 보시하면 그 목소리
가 아름다워진다. 침구를 보시하면 편안하고 즐겁게 자게 된다.
하인을 보시하면 시종(侍從)이 항상 주위를 에워싸게 된다.
좋은 밭을 보시하면 창고가 가득차게 된다"라고 했다.

금강경에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집착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보살이 상에 집착함이 없이 보시한다면,
그 복덕은 헤아릴 수 없는 까닭이다"라고 했다.

끝으로 인과경(因果經)에서는
"만약 가난한 사람이 있어서 보시할 재물이 없을 경우에는,
남이 보시를 행할 때에 수희심(隨喜心)을 일으켜야 한다.
수희하는 복보(福報)는 보시와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것은 아주 행하기 쉬운 일이다.
누구든지 실천 가능한 것이다"라고 했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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