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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윤달

관리자 | 2006.07.28 10:03 | 조회 1032



              불교와 윤달(閏月)

윤달은 하늘을 주관(主管)하는 신들이 휴가(休暇)를 즐기고, 지상의 모든 잡신(雜神)이 쉬는 달이어서 어떤 일을 해도 해가 없고 액(厄)이 없다고 믿었으며 평상시 신(神)들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서 하지 못했던 일을 해도 되는 달로 [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안난다]는 속담(俗談)도 이러한 속신(俗信)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윤달에 무엇이든지 하면 좋다고 하여 가정의 대소사(大小事) 일들을 많이 치르고 불가(佛家)에서도 윤달에 삼사(三寺)를 순례(巡禮)하면 복을 받고 소원을 이룬다고 하여 많은 불자들이 사찰을 찾고 있다.

또 각 사찰(寺刹)에서는 윤달을 맞아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를 봉행하는데 윤달에 생전예수재를 봉행하는 것은 사찰의 전통의식(傳統儀式)의 하나이며 그중에서도 생전예수재가 윤달의 가장 큰 행사이다.



(1) 치윤법(治閏法)

태음력(太陰曆)을 사용하는 농경사회(農耕社會)에서는 계절(季節)과 절기(節氣)의 변화가 농사주기(農事週期)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나 태음력(太陰曆)으로는 1년의 주기를 정확하게 맞출 수가 없어 이를 조절하기 위해 고안된 치윤법(治閏法)에서 윤달이 생겼으며 치윤법에 의하면 4년에 한번씩 윤달을 만들어 1년을 13개월로 하고 여벌로 주어진 달을 윤달이라고 하여 옛부터 사람들은 여벌달, 공달, 덤달 또는 썩은달이라고 불러 가외(加外)의 달로 여겼다.

윤달은 우수(雨水), 춘분(春分), 곡우(穀雨) 등 24절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보통 1달 사이에 2개의 절기(節氣)가 들어가는데 이중 12절기가 들어가지 않는 그해의 가장 빠른 달을 윤달로 삼는다.



(2) 윤달에 관한 문헌 기록(文獻記錄)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849년)>에는 [윤달은 택일(擇日)이 필요없어 결혼하기에 좋고, 수의(壽衣) 만드는데 좋으며, 모든 일을 꺼리지 않는다]라는 윤달에 대한 기록이 있어 윤달이 결혼(結婚)에도 호기(好期)였음을 알려 주고 있으며 적어도 19세기 중엽(中葉)까지는 윤달 결혼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그리고 수의(壽衣)는 꼭 윤달에 장만했고 선조(先祖)의 묘지(墓地) 단장이나 이장(移葬), 집수리나 이사(移徙)도 윤달에는 꼭 날을 받아 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평소 드나들기를 꺼렸던 절은 극락왕생(極樂往生)하기를 비는 불자들로 붐볐다고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문화재청)에 따르면 경기도(京畿道) 지역에서는 [윤달에 세 번 절에 가면 이생의 업장(業障)과 액운(厄運)이 소멸되고 복이 온다]고 하여 사찰(寺刹)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하며 [광주 봉은사(奉恩寺 : 현재의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에는 윤달을 만나면 여인들이 다투어 불공(佛供)을 드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영남지역(嶺南地域)에서는 윤달에 불공을 드리면 업(業)이 소멸된다는 풍습(風習)이 있어 사찰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3) 윤달과 사찰(寺刹)

각종 문헌(文獻)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사찰을 찾는 풍습에 따라 대다수의 사찰이 윤달을 맞아 삼사순례(三寺巡禮)를 준비하고 있는데 윤달(閏月)을 맞아 찾는 사찰은 대개가 지장도량(地藏道場)이며 일반 사찰을 찾더라도 명부전(冥府殿)을 중심으로 사찰을 순례를 진행한다.

또 윤달에는 미리 49재(齋)를 치르면 업장(業障)이 소멸되어 죽어서 극락세계(極樂世界)에 태어난다고 전하며 전국의 각 사찰(寺刹)에서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를 봉행(奉行)하고 있다.

제주(濟州)에서 비롯되었다는 생전예수재는 [사후(死後)에 갚을 빚과 과보(果報)를 미리 닦는다]는 의미로 저승을 관장(管掌)하는 명부전(冥府殿)의 십왕(十王)에게 49일간 기도(祈禱)와 축원(祝願)을 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봉선사(奉先寺) 조실(祖室)의 월운 스님께서는 [윤달에 대한 불교경전의 근거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조선초(朝鮮初) 천측(천측)스님이 중국으로부터 예수재(豫修齋)를 도입하여 전국적으로 행하게 되었는데 이는 명부전의 십대왕에게 자신의 과보를 빌고 앞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삶을 살겠다는 의미]라고 말씀하신다.

즉 십대왕(十大王)이 각자 맡은 달을 관장하는데 공달에는 십대왕이 한곳에 모여 휴가(休暇)를 즐기는 시기이므로 이때 십대왕에게 정성껏 공양을 바침으로서 업장을 소멸받고 향후 남을 위한 생활을 맹세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스님들의 가사(袈裟)를 지어 복을 기원(祈願)하기도 한다.


(4) 윤달과 민속(民俗)

윤달은 효의식(孝意識)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윤달에 환갑(還甲)이 넘은 부모에게 수의(壽衣)를 만들어 드리면 장수한다고 하는데 수의의 한자가 [ 衣]에서 [壽衣]로 바뀐 것도 이러한 연유(緣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윤달은 관장하는 신이 없어 행동의 잘못을 감시 받지 않아서 이사(移徙), 산소 이장(移葬), 혼례(婚禮), 건축(建築) 등이 많이 이루어 지는데 특히 최근에 와서는 화장문화(火葬文化)가 정착되면서 산소에 모셔진 시신(屍身)을 화장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한편 윤달과 관련하여 전라북도 고창(高敞)에서 전해오는 재미있는 풍습(風習)으로 여자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고창읍성(高敞邑城)을 밟으면 무병장수(無病長壽)하고 죽어서 극락(極樂)에 간다는 전설과 독특한 성밟기 풍속이 있는데 이는 원래 윤달 행사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리의 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無病長壽)하고, 세바퀴 돌면 저승길이 트여 극락(極樂)에 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으며 성을 다 밟은 후에는 머리에 이었던 돌을 성 입구에 쌓아두도록 되어 있다.

이 성밟기는 윤달 중에서도 윤삼월(閏三月)에 해야 효험(效驗)이 많다고 하며 특히 초엿새, 열엿새, 스무엿새 등 여섯 수가 든 날은 저승문이 열리는 날이라 하여 더욱 많은 여자들이 모이고 다른 먼 지방에서까지 모여들었다고 한다.

고창읍성(高敞邑城)을 여자들이 쌓았다는 전설(傳說)을 재현(再現)하기라도 하는 듯한 이 성밟기는 겨우내 얼어부푼 성을 다지고 유사시(有事時)에 대비하려는 조상들의 슬기가 밴 풍습으로 요즈음은 매년 음력 9월9일에 열리는 모양성제 때 개최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때부터인가 [윤달에는 저승문이 열리고 액이 낀다], [반달인 윤달에 결혼하면 팔자가 사납다]는 등 근거없는 속설(俗說)이 항간에 나돌아 윤달이 들었던 93년, 95년, 98년에는 결혼기피현상(結婚忌避現象)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2001년에 윤4월이 드는 5월 하순부터 6월 중순사이 예식장(禮式場) 예약률은 예년의 30%에도 못미치고, 신혼여행(新婚旅行),결혼사진(結婚寫眞), 혼수업계(婚需業界)도 덩달아 불황(不況)을 겪은 반면에 수의주문(壽衣注文), 묘지의 석물제작(石物製作), 이장(移葬)을 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었다고 한다.

불교장례단체인 보림회에 따르면 [최근 장의(葬儀) 관련 문의(問議)의 90%가 산소 이장과 관련한 것]이라고 하며 [특히 이장(移葬)보다는 화장(火葬)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또 미혼남녀(未婚男女)의 54%가 윤달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는 한 결혼정보회사(結婚情報會社)의 최근 조사결과(調査結果)는 윤달에 대한 의식이 변해가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민속(民俗)은 생성(生成), 변화(變化), 사멸(死滅)의 변화과정을 걷게 마련이지만 역술인(易術人)도 부정하는 잘못된 인식으로 윤달이 죽음을 준비하는 달로만 고착(固着)된다면 이처럼 아쉬운 일도 없을 것이다.

윤달은 양력(陽曆)보다 약 11일씩 모자라는 음력(陰曆)의 날 수를 메워주는 역할을 하지만 민속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을 꽉 짜인 습속(習俗)의 구속에서 풀어놓아 생활의 여유(餘裕)를 갖게 만든 지혜로운 장치였는데 여기에다 우리가 [결혼하면 안되다]는 굴레를 씌우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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