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식/교리문답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세상을 건지는 옷, 가사

관리자 | 2006.07.30 07:20 | 조회 1035
세상을 건지는 옷, 가사 서재영 / 논설위원.동국대 불문연 연구교수 싯다르타 태자가 처음 출가했을 때 그의 옷차림은 황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복장이었다. 세속에서라면 그것은 부와 권위의 상징이 되었겠지만 수행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 때 태자는 남루한 옷차림의 사냥꾼을 발견하고 “저 옷이야말로 참사람(眞人)의 옷이요, 세상을 건지는 자비의 옷”이라고 생각하고 그와 옷을 바꾸어 입었다. 부처님이 세속의 인연을 끊고 구도의 삶을 시작하는 순간에 대한 경전의 기술은 이처럼 옷을 갈아입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출가는 세속적 삶을 벗는 것이자 해탈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출가자는 화려한 속세의 옷을 벗고 잿빛 승복을 입는데 그 기원은 남루한 사냥꾼의 옷으로 갈아입은 부처님의 일화로 거슬러 간다. 청빈한 출가정신 상징 수행자의 복식에 대한 관행은 이후 더욱 엄격해져서 분소의(糞掃衣)로 정착되었다. 분소의란 더러운 오물이 묻었거나 낡아서 버린 천 조각을 주워 만든 옷이다. 따라서 한 벌의 가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연히 여러 조각의 천을 이어 붙일 수밖에 없었다. ‘기워 만든 옷’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납의(衲衣)’ 또는 ‘납가사(衲袈裟)’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5조니 9조니 하는 가사의 조각도 이 같은 수행 전통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물론 수행자를 ‘납자(衲子)’나 ‘납승(衲僧)’, 또는 ‘야납(野衲)’이라 부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세속적 관점에서 보자면 누더기를 입은 출가자의 모습은 초라하고 궁핍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출가의 삶은 세속적 가치를 뛰어넘은 곳에 있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형색을 통해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영가현각(永嘉玄覺) 스님은 “궁색한 부처님의 제자가 가난하다고 말하지만 실로 몸이 가난할 뿐 도는 가난하지 않다(窮釋子口稱貧 實是身貧道不貧)”고 했다. 누더기 가사를 입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세속적 가치로 따질 수 없는 무가보(無價寶)를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누더기를 걸치고도 풍요로운 마음을 갖는 것, 물질적 소유가 아니라 인간의 본래적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이 출가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가사란 청빈한 출가정신을 드러내는 의례이며, 수행자의 종교적 지향성을 표상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수행자의 삶과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가사가 시중에서 사고파는 물건처럼 되었다. 청빈을 통해 지고한 가치를 지향했던 가사가 돈을 주고 사고파는 상품이 된 것이다. 만약 가사를 돈으로 거래한다면 납의에 담긴 수행정신과 종교적 상징성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소재 선택부터 전과정이 ‘불사’ 그런데 앞으로는 종단에서 가사원을 설립하여 가사불사를 주관한다는 소식이다. 모든 가사를 종단에서 통일적으로 제작하고 배포하는 것은 물론 시중에서 함부로 거래되지 않도록 한다고 한다. 가사에 담긴 숭고한 의미가 갈수록 쇠퇴해 가는 상황에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가사에 담긴 본래적 정신과 종교적 상징성이 되살아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형식적 틀을 맞추기 위해 멀쩡한 천을 오려붙이는 상품생산의 공정이 아니라 가사불사 자체가 종교적 의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사의 소재를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바느질 하는 작업에 이르기까지 전체 과정이 출가정신을 담아내는 수행이자 의례로 승화될 때 가사는 세상을 건지는 옷으로 빛나리라 믿는다. [불교신문 2238호/ 6월21일자]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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