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식/교리문답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금강계단과 적멸보궁

관리자 | 2006.08.04 03:07 | 조회 1002

     
     금강계단과 적멸보궁
      (양산 통도사의 금강계단)

1. 금강계단

금강계단은 사찰에서 금강보계(金剛寶戒)로 일컫는 불사리(佛舍利)를 설해 놓고 수계의식(授戒儀式) 등을 행하는 곳을 말하며, 금강보계란 다이아먼드처럼 보배로운 계(戒)를 말한다.
불사리에서 부처의 현신(現身)을 믿는 데서 온 것이다. 한국에서는 양산군 통도사(通度寺)에 있는 금강계단이 잘 알려져 있다. 643년(선덕여왕 12)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唐)나라에서 돌아오면서 가져온 사리와 정골(頂骨) 등을 안치, 금강계단을 만들고 이 통도사를 지었는데, 절은 그 뒤에 여러 차례 개수되었고, 금강계단도 여러 차례에 걸쳐 개수되었다. 



 2. 적멸보궁

 
             (태백산 정암사의 적멸보궁)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전각을 말한다.
보궁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최초의 적멸도량회(寂滅道場會)를 열었던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 금강좌(金剛座)에서 비롯된다.

《화엄경(華嚴經)》에 따르면, 깨달음을 얻은 부처는 처음 7일 동안 시방세계(十方世界) 불보살들에게 화엄경을 설법하기 위한 해인삼매(海印三昧)의 선정에 들었다 한다. 이 때 부처 주위에 많은 보살들이 모여 부처의 덕을 칭송하였고, 부처는 법신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한몸이 되었다.

따라서 적멸보궁은 본래 두두룩한 언덕 모양의 계단(戒壇)을 쌓고 불사리를 봉안함으로써 부처가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법을 법계에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던 곳이었다. 진신사리는 곧 부처와 동일체로, 부처 열반 후 불상이 조성될 때까지 가장 진지하고 경건한 숭배 대상이 되었으며 불상이 만들어진 후에도 소홀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에서 적멸보궁의 편액을 붙인 전각은 본래 진신사리의 예배 장소로 마련된 절집이었다.
처음에는 사리를 모신 계단을 향해 마당에서 예배하던 것이 편의에 따라 전각을 짓게 되었으며, 그 전각은 법당이 아니라 예배 장소로 건립되었기 때문에 불상을 따로 안치하지 않았다.
다만 진신사리가 봉안된 쪽으로 예배 행위를 위한 불단을 마련하였다.

한국에는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부처의 사리와 정골(頂骨)을 나누어 봉안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양산 통도사(通度寺), 강원도 오대산 중대(中臺)의 월정사(月精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적멸보궁이 그것이다

통도사는 금강계단에 진신사리를 봉안해 계율 근본도량 불보종찰(佛寶宗刹)이 되었는데, 부처가 안치되어야 할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고 불당 내부에 동서로 길게 불단만 놓여 있다.
또 불상이 안치되어 있어야 할 자리는 창으로 훤히 뚫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월정사 적멸보궁(강원유형문화재 28)은 불사리를 안치한 정확한 장소를 알 수 없고, 다만 전각 뒤쪽의 작은 언덕에 부처의 정골사리[佛頭骨一片)를 모셨다는 기록이 있는 세존진신탑묘(世尊眞身塔墓)가 상징적으로 서 있을 뿐이다.

설악산 봉정암에는 부처의 불사리를 안치한 석가사리탑(강원유형문화재 31)이 있는데, 뇌사리를 안치하였다 하여 불뇌보탑이라고도 한다.

태백산 정암사 적멸보궁(강원문화재자료 32)은 다른 네 곳과는 달리 임진왜란 때 유정(惟政)이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 통도사의 진신사리를 나누어 봉안한 곳으로, 산 위에 수마노탑(보물 410)이 있다.

사자산 법흥사에는 진신사리가 안치된 보탑과 자장이 도를 닦았다는 토굴이 있다. 이들 5대 적멸보궁은 불교도들의 순례지이자 기도처로서 가장 신성한 장소로 신봉된다.

그 밖에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비슬산(琵瑟山) 용연사(龍淵寺), 경상남도 사천시 다솔사(多率寺) 등에도 적멸보궁이 있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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