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식/교리문답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수륙재(水陸齋)란?

관리자 | 2006.08.12 07:16 | 조회 990
수륙재(水陸齋)는 어떤 의식인가 물과 육지에서 헤매고 있는 외로운 혼령들에게 법과 음식을 베풀어 구제하는 의식이다. 이 의식은 중국 양나라 무제에 의하여 시작되었다고 한다. 양무제는 평생 수백 채의 절과 수만 구의 불상을 조성하고 매일 수천 명의 스님들에 반승을 하였는데, 유주무주의 고혼들을 위해 수륙제를 지내면 큰 공덕이 있다는 말을 듣고 금산사에서 큰 재를 베풀었다. 그 뒤 송나라 때에 동천(東川)의 <수륙문(水陸文)> 3권이 나와 더욱 성행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 갈양사(葛陽寺)에서 광종 21년(970)에 처음 베풀었다. 선종 때에는 태사국사 최사겸(崔士兼)이 <수륙의문(水陸儀文)>을 송나라에서 들여와 보재사(寶齋寺)에 수륙당을 열었고, 혼구(混丘)는 <신편수륙의문(新篇水陸儀文)>을 찬술하여 더욱 성행하였다. 조선시대 숭유배불 정책으로 불사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태조는 진관사(津寬寺)를 나라의 수륙재를 여는 사사(寺社)로 지정하고 견암사.석왕사.관음굴 등에서 고려 왕씨들을 위한 수륙재를 베풀었다. 이 수륙재는 유신들의 많은 폐지 상소에도 불구하고 매년 2월 15일에 거행되었으나, 태종 15년(1415)부터는 1월 15일로 바뀌어 종종 10년(1515)까지 시행되다가 결국 유생들의 반대로 폐지되었다. 성할 때는 효령대군이 시주가 되어 한강에서 개설하였고, 선조 39년(1606)에도 창의문 밖에서 행하였는데 양반과 평민이 길을 가득 메워 인산인해를 이루는 무차대회를 이루었다고 한다. 수륙재의 절차는 <범음집(梵音集)> <산보집(刪補集)> <작법귀감(作法龜鑑)> <석문의범(釋門儀範)> 이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그 취지는 같다. <석문의범> 에서는 수륙무차평등재의(水陸無遮平等齋儀)라고 하여 모든 영혼을 평등하게 천도받게 한다고 한다. 그 내용은 재를 지내는 동기를 밝히는 소가 있고, 영혼들이 불보살님께 설법을 들어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키게 해 주며, 다음으로 명부사자를 초청하여 분향공양을 하고 축원을 한다. 이어 오방신장과 명부사자 호법선신께 공양하고 영혼을 목욕시킨 뒤 불보살께 나아가 법문을 듣고 불공 축원한 후 시식을 베풀어 유주무주 고혼을 천도한다. 이때 의식은 범패와 법무가 중심이 되고 태징.요령.목탁.북.피리.젓대 등 다양한 소리가 조화를 이루어 높은 예술성을 느끼게 한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