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식/교리문답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포대화상 은?

관리자 | 2006.08.12 07:18 | 조회 1026


포대화상은 우리 말로 표현하면 "복스님"이고 영어로는
"해피 붓다(Happy Buddba)라고 할 수 있다.


스님은 당나라 명주 봉화현 사람으로 법명은 契此(계차)이다.
뚱뚱한 몸집에 얼굴은 항상 웃으며 배는 풍선처럼 하고 다녔다.
화상이란 덕높으신스님을 일컫는 말이고 포대는 자루이다.
쌀이나 밀가루 같은 것을 넣어두는 자루이다.


포대스님은 늘 어깨에 자루하나 덜쳐메고 다녔기 때문에
세인들이 그렇게 부른것이다. 스님은 자루하나 가지고
시장이나 부자집을 다니면서 여러가지 시물을 구걸 하였다


식료품가게, 문구점, 과일가게, 약국등 모든 상점에가서
한 두개씩 보시를 받아 가난하고 굶주린 마을을 찾아다니면서
구걸한 물품을 자루에서 꺼내어 나누어 주었다.


스님은 일년 열두달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부나
자루속에 중생들의 행복을 담아 가지고 다녔는데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먼저 어린아이들이 달려나와
스님에게 메달리고 보챈다. 스님은 자루속에서
아이들이 필요한 것을 꺼내어준다.


아이들은 스님을 좋아했으며 스님 역시 어린아이들을
무척 좋아하였다. 스님이 정자 나무아래에 쉬고 있으면
아이들이 귀를 만지고 코를 만지고 배곱을 손으로 후볐다.
스님은 아이들을 귀여워하며 웃을뿐 아이들을 멀리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중국의 모든 사찰의 입구에는 해피 붓다의 포대화상이 안치되어
있다. 그들은 포대화상이라하고 미륵불이라 말하기도 한다.
왜 포대화상이 사찰의 초입에 있을까?
내가 중국사원을 참배할때마다  떠오르는 궁금증이다.


나는 크게 두가지 의미로 해석해 본다.
첫째는 불교의 친밀감과 친화력을 보이기 위해서이다.
불교는 이웃과 함께하며 고뇌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불교는 자비와 사랑을 통하여 중생구제의 종교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포대화상은 보현보살의 행원처럼
일생을 배고픈 중생의 곁에서 동고동락을 하신 분이다.


둘째는 중국불교의 자기화 선언 내지 완성을 표방하는 것 같다.
인도 불교와의 차별성을 가지며 중국 불교의 정체성을
표방하는 것이다. 중국불교의 사찰을 유심히 보면 염불하고
신앙을 하는 사찰인데 꼭 선禪이라는 한문을 사용한다.
그러니까 정토사淨土寺하면 되는데 정토선사淨土禪寺라하여
선禪이라는 글자를 굳이 강조하고 있다. 


아무튼 포대화상은 위대한 분이다.
포대화상은 철저하게 현실을 생각하였고 대중을
인식하였다. 서민의 역사를 인식하였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를 알아주는 사람은
많이 없었다.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은 모두 외로운가보다.


포대스님은 고독한 사람이었고 외로운 분이었다.
그의 시에서도 고독함이 절절이 묻어난다.
그는 이런 게송을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


一鉢千家飯           바릿대 하나들고 천 집에 밥을 빌며
孤身萬里遊           외로운 몸은 만리를 노닌다
靑目覩人小           나를 알아보는 이 별로 없음이여!
問路白雲頭           다만 떠도는 흰 구름에게 길을 묻노라.


彌勒眞彌勒           미륵 참 미륵이여!
分身千百億           천백 억의 몸으로 나투어
時時示市人           때때로 세상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이나
市人自不識           세속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하더라.


我有一布袋           나에게 하나의 포대가 있으니
虛空無과碍           허공에도 아무런 걸림이 없다.
展開편宇宙           열어 펴면 우주에 두루 하고
入時觀自在           오므려 들일 때도 자재로움을 보노라.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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