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식/교리문답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사(寺)의 유래

관리자 | 2006.07.20 07:56 | 조회 916

 

       사(寺)의 유래는 ? 

일상 한문의 '사(寺)'는 절을 의미하는 글자로 새기고 있다. 그러나 이 글자는 본래 절을 뜻하는 글자는 아니었다.

궁궐 안에서 대신 들이 밤늦게까지 회의를 한다든지 하여 집에 갈 수 없을 때 누워 자는 곳, 요샛말로 하면 기숙사 같은 방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본래는 절을 뜻하는 글자가 아니고 궁궐 내의 고관들이 자는 숙소를 말한다.

중국의 역사책에 나타난 불상에 대한 기록으로 역시 후한의 명제(明帝) 때인 영평 10년, 즉 A.D.67년에 명제가 대월지국에 사신을 보낸 지 3년 뒤에 섭마등(攝眠)과 축법란(竺法蘭)이 사십이장경과 불상을 흰 말에 싣고 와서 '백마사(白馬寺)'에 모셨다 하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섭마등과 축법란 등이 불상을 모시고 오니 마땅히 모실 데는 없고 궁궐 한 구석, 대신들이 쉬는 곳에 모셨다고 한다.

그것이 유래가 되어 나중에 따로 절 을 지어 불상을 모셔도 '사(寺)'자를 그대로 같은 의미로 표기하게 되었 다는 것이다. 그것이 영평 10년의 일이다. 이때 중국에서는 정식으로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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