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식/교리문답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조계종의 역사(1)

관리자 | 2006.07.18 11:39 | 조회 1130
  [조계종의 역사] 대한불교 조계종은 종헌에서 밝히고 있듯이 조계종의 종조는 가지산문의 개산조인 도의 국사다. 도의국사는 서기 821년에 당나라로 부터 귀국하여 40여년간 선문의 발전을 이룩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기 때문에 조계종의 기원은 지금으로 부터 1200여년 전인 9세기 후반이 된다. 조계종의 명칭은 도의 국사가 선종의 6대 조계의 혜능조사 증법손인 서당 지장선사로 부터 심인을 받은 것에서 유래된다. 이후 조계종 명칭은 고려를 거쳐 계속 이어져 왔으며 세종6년인 1424년 선종으로 바뀔때 까지 유지된다. 고려시대 보조국사가 제종을 포섭하여 조계종의 종지를 선양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청허 휴정 스님과 부휴선사가조계종의 법맥을 계승한다. 이후 조계종은 근대에 이르기 까지 1899년 경허스님의 결사와 용성 스님의 선풍진작. 1902년 원흥사 창건 1911년 임제종 설립을 통한 한국불교의 전통수호 1921년의 선원중심의 선학원창립등 법맥을 유지노력 했으며 1941년 일제치하에서도 조선불교 조계종이란 이름으로 수행승 중심의 조선 불교 조계종 출범으로 그 전통과 맥을 이어온다. 1954년 대한불교 조계종이란 이름으로 종헌을 제정 하고 55년 8월 전국 승려대회를 기점으로 비구승중심의 조계종단으로 재 편성이 되어 오늘의 대한불교 조계종 성립의 단초가 되었다. <좀더 자세히> 현재 한국불교에는 조계종을 제외하더라도 많은 불교 종단이 있다. 각 종단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법을 근본으로 삼지만, 각 종단마다 독특한 종지(宗旨)와 종풍(宗風)을 갖고 있다. 종단의 명칭은 종지와 종풍에 따른 경우가 많다. 조계종(曹溪宗)의 종지는 선(禪)을 그 본체로 한다는 것이다. 조계종헌 제2조에 나와있는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말은 선종(禪宗)에서 근본으로 삼는 것이다. 조계종에서 말하는 조계(曹溪)라는 단어는 중국 선종의 6대 조사(祖師)로 추앙받는 혜능선사가 설법을 하던 지명을 말한다. 때문에 혜능대사를 일컬어 '조계(曹溪) 혜능(慧能)'이라고도 합니다. '조계'라는 명칭을 쓰고 있는 곳이 우리나라에도 있는데 순천 송광사를 일러 조계산(曹溪山) 송광사라 하는 이유도 여기에서부터 비롯된다. 즉, 명칭에서 유래하듯이 조계종은 선종의 초조(初祖)인 달마대사로부터 6조 혜능 대사에 이르러 구축된 선종(禪宗)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중국에서부터 출발된 선종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현재의 대한불교 조계종」이라는 종단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 조계종헌 제1조에 "본종은 신라 도의국사(道義國師)가 창수(創樹)한 가지산문(迦智山門)에서 기원하여 고려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중창을 거쳐 태고(太古) 보우국사(普愚國師)의 제종포섭(諸宗包攝)으로서 조계종이라 공칭"한다고 하였다. 즉, 우리나라에 전래된 선종은 도의국사가 개산(開山)하여 보조국사, 태고 보우국사에 의해 중창되어 현재의 조계종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외에도 많은 스님들이 선(禪)을 종지로 하여 불교를 이끌어 왔음은 물론이다. 중국에서 발전된 선종(禪宗)은 신라시대 말기에 이르러 우리나라에 전래된다. 신라 말 혜공왕 이후로 국가가 혼란해졌다. 사회가 혼란해지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세력과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게 된다. 선종은 이 시기에 중국 당나라로부터 전래되어, 교학 위주였던 신라교단에 불교계에 커다른 충격을 주면서 등장한 것이다. 이 때부터 고려 초기에 이르기까지 선을 표방하는 9개의 선문(禪門)이 개창되었는데.이를 일컬어 구산선문(九山禪門)이라 합니다. 이중에 해동(海東) 조계종조(曹溪宗祖)로 추대되는 도의국사는 가지산문(迦智山門)을 개산하였다. 도의국사는 중국 선종 6조의 법통인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 서당지장(西堂智藏)의 법을 이어받아 신라에 선을 전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의 불교계는 화엄·법상 등 교학불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선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도의국사는 설악산 진전사(陳田寺)에 은거하면서 법을 이어가게 된다. 지금도 양양 지역에 도의국사가 머무르셨던 진전사 절터와 도의국사 부도탑이 남아 있다. <보조 지눌> 도의국사에서 시작된 선종은 고려시대 보조지눌 스님에 이르러 그 종지(宗旨)가 명확히 이어진다. 지눌 스님은 고려 의종 시대에 활동하였는데. 당시 불교계는 왕권과 결합하여 교단이 혼란스러웠으며, 교종(敎宗)과 선종(禪宗)의 극심한 대립이 있을 시기이다. 보조 지눌은 뿌리깊은 선과 교의 갈등과 피폐한 교단의 상황을 직시하고 승가의 수행가풍을 되살리기 위해 스스로 선과 교를 폭넓게 수학하는 정혜결사(定慧結社)운동을 일으켰다. 보조 지눌은 "세존께서 설하신 말씀은 곧 교(敎)이며 조사들에게 마음으로 전한 것이 곧 선(禪)이다"라는 확신을 갖고 화엄사상과 간화선(看話禪)을 회통(會通)하여 한국불교의 사상적 척도를 한층 높이는 초석을 마련하였다. 태고보우(1301-1382) 선사는 오늘날 한국 선종 법맥과 전통을 대표하는 대한불교 조계종 법맥의 원류에 위치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보우선사는 임제의현(臨濟義玄)의 선사상과 법맥을 수용하여 고려 시대에 접어들어 분열과 갈등을 보이던 구산선문(九山禪門)을 통합하였다. 당시 구산선문을 통합하여 하나의 선문으로 일치시킴으로서 선문을 중흥하고 선가(禪家)의 청규(淸規)인 「백장청규」의 정신으로 돌아가서 간화선 중심의 산문을 확립하였다. 혜능 이후의 선법을 이어간 임제의현의 선사상과 법맥을 고려 선종에 도입하여 창조적인 발전을 이루어 낸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간화선(看話禪), 화두선(話頭禪)의 선맥을 해동(海東)에 확립한 것이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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