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식/교리문답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절은 왜 하는가?

관리자 | 2006.06.09 09:52 | 조회 1162
사찰에서 절을 많이 하는 이유? 수 많은 종교들의 모습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들 종교적인 행위라 할 수 있는 절하는 모습이다. 이에 불가에서도 3배에서부터 108배, 3000배 등을 하고 있다. 절을 함에 있어서 종교마다 의미부여가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불교에서의 3배의 의미는 3의 숫자가 근본을 뜻하는 숫자이기도 하고, 또한 불·법·승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으로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다. 이처럼 절하는 숫자 즉 3배를 한다거나, 108배를 한다거나, 3000배를 하는 등의 숫자적 개념은 신앙의 형태에서 나와 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불교에서 절하는 숫자를 정해 두고 원칙을 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불교에서 절을 권장하는 이유] 우선 일체의 존재에 대한 겸손한 자세가 되어 대자비심을 발할 수 있고, 또한 마음의 번뇌가 없어짐과 동시에 오롯이 맑은 정신으로 하여금 참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온갖 중생의 습기 배인 몸과 마음을 숙여 일체의 존재를 존중하며, 하심(下心 :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마음)하는 마음을 배우고, 또한 그로부터 우러나게 되는 두루한 덕성이 갖추어질 수 있기때문이다. 하심하는 마음에서 타인을 존중하고 또 자비의 실천을 할 수 있게되며, 넘치지 않는 가운데 내면의 넉넉함을 갖추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참에 대한 지혜는 중생의 실상을 파악하고, 참 불성의 진리에 대한 궁극적인 자세를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절은 단순한 의미의 절이 아니라, 궁극적인 깨달음에 대한 소박한 종교적 행위가 되는 것이며, 바로 깨달음을 향한 진실한 내 마음의 가고자 하는 방향이 되는 것이다. 육신을 수없이 엎드려 절을 하는 동안 다생겁래의 윤회에서 배어진 육체와 마음의 습기, 그리고 알게 모르게 지은 바 수많은 죄업에 대한 참회를 하고, 탐진치의 갖은 탐욕과, 오욕락의 습기를 떨쳐 내게 된다. 절을 하는 동안 혼탁했던 정신은 점점 맑아져서, 중생의 습기가 아닌 참의 힘에 계합되어 지고 내 마음과 진리는 한마음이 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은 마음의 불성 그 하나로 통하게 되고, 혼탁해진 어떤 것들이 떨어져 나간 맑은 마음은 보다 청정한 내 본성으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자연히 진리에 합당한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상 그 혼탁한 것들이라고 해도 그 혼탁함이 나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혼탁함의 실체에 대한 깨달음으로 하여금 그 번뇌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것을 일러서 탐진치의 삼독을 떨치게 된다고 표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떨쳐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달아 알게 되고, 나아가 실천 행을 하는 데에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이루신 이후에 중생들을 향하여 설법하시길 일체 중생에게는 '누구나 다 불성이 다 있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자타일시성불도(모두 함께 부처를 이룰 수 있다.)'의 깨우침을 설하셨다. 모두 성불의 길로 나아가기 위하여 이처럼 절하는 데에도 있음이며, 불교에서 절을 하는 것은 부처님 되는 종교적 실천 행위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절하는 횟수를 생각하기 보다 3배가되든 108배가되든 3000배를 하든 결국은 진리의 깨달음을 향한 지극한 마음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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