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식/교리문답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불교는 기도의 종교

관리자 | 2009.05.23 06:53 | 조회 1463
[불교는 기도의 종교]   불자는 기도를 해야한다. 몸과 마음을 던지는 바른 기도를 해야한다! 불교는 기도의 종교다. 참선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고, 염불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야한다. 도대체 기도를 빼고 종교가 성립할 수 있는가! 기도는 순간에 영원을 사는 작업이며, 기도는 견고한 신심의 구축이며, 기도는 법력의 배양이며, 기도는 성실한 참음이다. 우리 불교인들은 왜 기도를 않는가? 왜 기도를 게을리 하는가? 불교교리만 가지고 불교가 되는가? 참선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참선만을 강조한 나머지 얻어낸 것이 무엇인가? 불교는 번영의 가르침이며 번창의 가르침이다. 물질적으로 번창해야 하고 정신적으로도 승화돼야 한다.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공덕을 지으라 하면서 한편으로는 현상계를 지극히 백안시하는 풍조는 과연 올바른가? 그 모두가 지극한 성찰을 거쳐 여과돼야 한다. 불교가 대단한 어려움에 봉착돼 있는 현대! 불교의 쇠미상이 극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현대! 자! 우리 사부대중들이여! 기도를 올리자, 몸을 던져 절을 하자! 소리높여 부처님을 부르자! 관세음보살을 외치자! 원효대사·보조국사 ·서산대사의 가르침을 잊었는가? 『부처님께서는 탐욕과 성냄이 없으시거늘 우리가 어찌 그럴 수 있으며, 부처님은 지옥을 연화세계로 변화시키되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쉽거늘 우리는 업력으로 항상 지옥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 하거니와 더구나 연화세계로 변화시키는 일이 다능할 것인가? 부처님께서는 무한세계를 눈앞의 일처럼 보시지만 우리는 한 겹의 벽만 막혀도 볼 수 없지 않은가? 이같이 사람마다 성품은 비록 부처지만 그 행동은 중생이니 현실적으로는 하늘과 땅 차이로다. 마명과 용수, 다 높으신 조사이시면서 항상 염불을 전하셨거늘 네가 무엇이길래 염불을 않겠다는 것이냐?』 서산대사님의 질타를 잊었는가?   대도사들 모두 기도를 통해 불보살의 가피력을 얻고 현세의 액난을 소멸할 뿐만 아니라 견성의 경지를 증득하지 않았던가?  자!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마음을 다가듬자. 소리높여 기도를 하자! 기도는 내가 나를 이기는 작업이며, 기도는 감사의 생활화이며, 기도는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이며, 기도는 부처님과 하나되는 작업이다. 나의 기도는 분명히 성취된다 나는 새벽의 문을 여는 파수! 이 여새를 몰아 오늘 하루도 좋은 일이 되리라! 오늘 하루도 부처님의 위대한 사업을 이룩하는 진보의 화신이 되리라! 오늘 하루 열심히 몸과 마음을 다해 부처님을 노래하리! [기도 성취의 요결]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기도는 목표가 확실해야 한다. 기도는 마음의 개혁이다. 기도는 확신에 찬 극복이며 성실한 참음이다. 기도는 진심으로의 참회이다. 기도는 헌신적인 참회이다. 기도는 감사의 생활화이다. 기도는 무조건의, 무제한의 용서이다. 기도는 교만심의 타파이다. 기도는 매일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작업이다. 기도는 업장소멸이며 선근의 증장이다. 기도는 내가 나를 이기는 작업이다. 기도는 하나되는 작업이다. 기도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대화이다. 기도는 법력의 배양이며 추진력의 배양이다. 기도는 적극성의 배양이다. 기도는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기도는 불퇴심의 양성이다. 기도는 견고한 신심의 구축이다. 기도의 성취는 간절함에 달려있다. 기도의 성취는 확신과 투철한 신념에 달려있다. 기도의 성취를 위해서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기도성취의 원동력은 자비요, 사랑이다. 증오는 잔인한 파괴자, 사랑은 위대한 승리자. 기도의 성취를 방해하는 요인은 성취여부에 따르는 두려움이다. 의심이다. 기도하는 마음은 효도하는 마음이다. 기도하는 마음은 지계청정한 마음이다. 기도하는 마음은 이해하는 마음이다. 포용하는 마음이다. 기도하는 마음은 한없이 베푸는 마음이다 [기도하는 의미와 방법] 종교의례가 다분히 집단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 대하여 기도는 오히려 개인적인 경향이 강하다. 기도는 자신의 마음 속에 숨겨 있는 문제를 생각나는 대로 마음 가는 데까지 낱낱이 드러내 보일 수 있다. 결국은 부처님에게 대한 절대적 신뢰를 전제로 하여 자유스럽게 행해지면서 부처님에 대해서 자신을 전적으로 내맡기는 행위이다. 「기도는 온갖 괴로움을 안은 중생과 이를 구원함을 본원으로 삼는 불보살님의 현격한 차이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고리와 같은 것이다.」 불완전하고 고통에 가득한 중생은 기도를 통하여 불보살의 자비의 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불자는 기도를 통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의 가르침으로 받아 들일 수 있으며, 일상속에서 불교인의 삶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기도를 통하여 불보살의 자비는 발견되는 것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이 생명력을 가지고 실현되는 것이다. [기도하는 절차] 첫째, 합장하고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 합니다(절).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 합니다(절). 거룩한 스님들게 귀의 합니다(절).' 라는 삼보에 대한 삼귀의를 합니다. 둘째, 모든 중생과 자신의 허물을 참회하고 큰 보살의 원을 세우며, 자신의 원하는 바를 불보살님께 원합니다. 셋째, 독경을 합니다. 천수경, 관세음보살보문품, 반야심경 또는 불교성전을 읽되 전체가 아닌 부분만 읽어도 되며, 또 반복해서 읽어도 됩니다. 넷째, 일심으로 염불(정근)합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지장보살>, <나무 아미타불>......, 등의 불보살의 명호를 시간따라 원력 따라서 지극정성 염불하면 됩니다. 다섯째, 감사의 염송입니다. 부처님의 은혜가 가득히 부어지고 자기 소망이 모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삼보님전에 감사하며 스스로 은혜가 충만하여 소원이 이루어진 것을 마음으로 느끼면서 간직하는 것입니다. ※ 이 기도방식을 때와 장소에 따라서 절차를 변경하거나 달리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의 마음가짐] 첫째, 불보살의 한량없고 자비하신 위신력이 자신과 온 누리에 넘치고 있는 것을 깊이 믿고 감사하며 일심으로 독경, 염불합니다. 둘째, 매사에 자비한 마음을 먹고 자비한 행동을 합니다. 분노를 일으키면 마음에 불길이 일어나서 온갖 닦은 공덕을 모두 불살라 버리게 되고 증오와 대립심을 가지면 마치 검은 구름이 덮인 것과 같아서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받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무량한 자비를 굳게 믿으며 지극히 감사한 생각이 스스로 체험된다면 이는 기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기도성취에 차별이 있는가? ] 기도는 무한한 절대 자비의 활용이며 창조입니다. 불보살님의 크신 위신력과 덕행은 근본적으로 보든 중생에게 평등합니다. 이러한 위덕을 끌어내는 능력이 바로 지혜이며 기도의 힘입니다. 그러나 이 능력은 없던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본래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것을 기도를 통하여 끌어 내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러한 능력이 사람따라 인연따라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제불보살과 일체중생이 차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무한한 능력(불성)을 잘 가꾼 사람은 기도의 힘이 속히 크게 성취되고, 미혹해서 잘 가꾸지 못한 자는 구름에 가리워서 못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왜 감사해야 하는가?] 감사할 줄 모르면 기도는 성취할 수 없습니다. 감사는 부처님의 대자대비에 대한 감사이며, 대지혜, 대위신력으로 항상 은혜롭게, 조화롭게, 완전하게, 우리를 가호해 주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받지 않았으니까 감사기도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받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우리들 측에서 하는 말이고, 불보살님께서는 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우리 중생에게 주셨지만 모르고 있다가 일심정성으로 기도함으로써 부처님께서 주신 은혜는 더욱 구체적으로 뚜렷하게 현실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노력없이 받고 있는 수 많은 은혜가 있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가운데서 수행해 갈 때 감사한 내용은 더욱 가까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실로 감사함으로써 부처님의 공덕을 만나며, 감사함으로써 진리가 자신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참회는 필수적이다. 참회는 근본적으로 나(我)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말끔히 비우는 것을 뜻합니다. 나에 대한 집착 때문에 대립하고, 그 사이에서 미워하고 원망하고 노여움도 갖습니다. 참회해서 그 마음을 말끔히 비울 때, 거짓된 나에 대한 집착이 없게 됩니다. 여러 가지 허물 등이 하늘의 구름처럼 마음에 덮여서, 첫째는 자신이 어둡고 고통스러운 환경을 맞게 하고, 또 부처님의 태양 광명같은 은혜를 알지 못하고, 등지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회함으로써 지난 날의 허물이 드러나고 소멸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본래 허물이 없는 진면목인 자성(自性)이 환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기도와 욕심] 자기 이익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남을 해치고 자기 이익을 도모한다거나, 게으르고 불성실하고 노력하지 않고 우엇인가 얻으려 하는 것이 나쁜 것이지, 자기가 잘되고 뜻을 이룬다는 것은 곧 내 집안, 우리 사회가 더 밝아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 되고 더 나아가 이웃과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욕망을 크게 일으켜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맹목적이고 안일한 해결법이 아니라, 진리에 순응해서 진리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기도성취는 진리다운 목표를 세워서 진리에 비추어 보아 진리에 어긋난 마음과 행돌을 버리고 진리다운 참된 행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므로써 진리의 광멸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수를 알아야 합니다. 분수란 청빈이나 내핍 생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부처님의 무량공덕을 윈래로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그것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원만하게 수용하는 것이 분수입니다. 아무것도 갖고 있지 못하고 줄 것도 없는 것을 결코 자랑할 것은 못됩니다. 기도는 결코 어리석은 중생의 끝없는 탐욕을 충족시키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무한한 능력의 소유자인 자신에 대한 자기실현이어야 될 것이며, 약동하는 삶의 원동력이러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삽시다. 늘 기도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부처님과 하나가 됩시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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